18년간 연준 의장 역임 …장기 경기 확장기 이끌어
시장 자율조정능력 믿어…“내 판단 30%는 잘못”

미국 경제의 장기 호황을 이끌며 ‘마에스트로(거장)’로 불렸던 앨런 그린스펀 전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 의장이 22일(현지시간) 별세했다. 향년 100세.
블룸버그통신에 따르면 그린스펀 전 의장의 부인인 안드레아 미첼은 이날 성명을 통해 그가 파킨슨병 합병증으로 자택에서 숨졌다고 밝혔다.
그린스펀 전 의장은 1987년부터 2006년 초 퇴임할 때까지 18년간 연준 의장을 지내며 미국 역사상 손꼽히는 장기 경기 확장기를 이끌었다. 재임 기간 미국 증시는 강세를 이어갔고 실업률은 낮은 수준을 유지했다. 그는 4명의 대통령과 7명의 재무장관을 거치는 동안 미국 경제를 떠받친 핵심 인물로 평가받으며 ‘마에스트로’라는 별명을 얻었다.
연준은 성명을 내고 “그린스펀 전 의장의 공적은 연준 내에서 여전히 살아 숨 쉬고 있다”며 “직접 지도를 받은 사람들, 그에게 영감을 받은 경제 학자 및 공무원, 그리고 그가 관여한 정책 틀과 관행 속에 그 영향은 지금도 이어지고 있다”고 밝혔다.
안경이 트레이드마크였던 그린스펀 전 의장은 TV 연설과 의회 증언을 통해 세계 금융시장의 상징적인 존재로 자리 잡았다. 그의 발언은 종종 금융시장을 움직였고 투자자와 기자들은 난해한 표현을 해독하며 중요한 단서를 찾아냈다.
특히 그는 1996년 강연에서 주식시장 거품을 우려하며 ‘비이성적 과열’이라는 표현을 사용해 더 유명해졌다. 해당 표현은 당시 증시를 일시적으로 흔들었지만 머잖아 주가는 상승세를 이어갔다. 이후 인터넷 버블 붕괴를 계기로 널리 사용되며 현재는 주식시장 과열을 상징하는 표현으로 자리 잡았다.
투자자들 사이에서는 증시가 급락할 경우 그린스펀 전 의장이 금리 정책을 포함한 수단을 동원해 시장을 지지해줄 것이라는 믿음이 확산됐다. 손실을 제한하는 투자 기법에 비유해 이른바 ‘그린스펀 풋’이라 불렸다. 이러한 인식은 투자자들의 과도한 위험 추구를 부추기며 도덕적 해이를 낳았다는 비판을 받았다.
그린스펀 전 의장의 재임 기간은 연준 역사상 두 번째로 길다. 그의 임기는 1913년 연준 설립 이후 가장 안정적인 경제 성장기 중 하나였다. 미국 경제는 1991년 3월 경기 침체 종료 이후 2001년 경기침체가 시작될 때까지 10년간 확장세를 이어갔다.
하지만 그의 임기 말기에는 금융 시스템에 대한 압박이 점차 커지고 있었다. 상환 능력을 초과하는 서브프라임 주택담보대출이 확산되고 주택담보대출 관련 증권도 급격히 증가했다. 연준 내부에서는 2005년까지 주택 버블을 인식하고 있었으나 그린스펀 의장은 주택담보대출 금리 상승으로 인해 과열 현상이 억제되고 있다고 판단했다.
그는 연준 의장 재임 시절 금융 업계에 대한 정부의 규제 강화에 반대해왔다. 금융 시스템이 붕괴 직전까지 치달은 사태 이후의 의회 증언과 강연에서 그는 당국에 실수가 있었다고 인정했다. 자신이 주창해 온 자유시장주의에 결함이 있었을 가능성을 시사하면서 금융위기를 “100년에 한 번 올 법한 신용 쓰나미”라고 표현하기도 했다.
그는 미국 의회 금융위기조사위원회(FCIC)에서 “전체적으로 내 판단의 70%는 옳았지만 30%는 잘못됐다”고 말했다.
의장 재임 기간 중 1987년 10월 주가 폭락과 1997년 아시아 통화 위기, 1998년 러시아 위기 등에 대한 대응을 주도했다. 1990년대 중반 많은 경제학자가 인플레이션 억제를 위해 금리 인상을 요구하는 가운데 그는 기술 혁신에 따른 생산성 향상이 임금 상승 압력을 상쇄해 인플레이션 재발을 초래하지 않으며 더 빠른 경제 성장을 가능하게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또한 1994년부터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가 정책 결정을 회의 당일에 발표하는 등 통화정책 투명성 강화에도 기여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