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순수 1t 생산에 원수 4t…용인산단 공급용수 절반이 초순수용

챗GPT로 촉발된 인공지능(AI) 혁명과 반도체 초호황이 세계 산업지형을 뒤흔들면서 물의 전략적 가치가 어느 때보다 높아졌다. '물 먹는 하마'로 불리는 AI 데이터센터는 물론 반도체 생산도 풍부한 양질의 물과 고난도 수처리 기술을 필요로 한다. 석유가 산업화 시대의 핵심 자원이었다면 이제는 물이 새로운 경제안보전략 자산으로 떠올랐다. 정부도 이에 발맞춰 새로운 물 청사진을 만들기에 힘을 쏟고 있다.
14일 본지 취재를 종합하면 AI 시대로의 급속한 전환은 필연적으로 물수요 폭증을 동반한다. AI데이터센터는 AI 연산과 대규모 데이터 학습을 하루 24시간 내내 처리하는 AI 산업 핵심 인프라다. 전력 소모가 막대한 만큼 발열을 제어하기 위한 물 기반의 냉각장치가 포함된다.
실제로 국제에너지기구(IEA)에 따르면 2024년 전 세계 데이터센터 전력 소비량은 415테라와트시(TWh)에서 2030년 945TWh로 2배 이상 증가할 것으로 전망된다. 유엔대학교 물·환경·보건연구소는 이로 인한 2030년 물 사용량은 93억톤(t)에 달할 것으로 분석했다. 945TWh와 93억t은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 인구 13억명이 5.5년간 사용할 전력량, 연간 생활용수 규모에 해당한다.
생성형 AI를 30분 사용하는데 물 616mL이 필요하다는 글로벌 물전문 조사기관 글로벌워터인텔리전스(GWI)의 분석도 있다. 세계은행은 내년 글로벌 AI 물수요가 덴마크 취수량의 4~6배 수준인 최대 42~66억t에 달할 것으로 봤다.
한국 경제를 먹여살리는 반도체 분야에도 물은 필수 인프라로 꼽힌다. 반도체 산업은 전통적인 제조업 대비 평균 4배 이상의 용수가 필요하다. 12인치(300㎜) 반도체 웨이퍼 1장 생산에 7~10t의 물을 써야 한다.
현재 기후에너지환경부와 한국수자원공사는 용인반도체클러스터에 일 107만2000t 규모의 용수공급 시설을 짓고 있다. 총사업비 2조2143억원, 사업기간은 2034년까지다. 용인에 약 1000조원을 투자하는 삼성전자, SK하이닉스의 반도체 생산에 안정적인 용수 공급을 위해서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각각 360조원, 600조원을 들여 용인에 반도체 팹 6기(국가산단), 4기(일반산단)를 지을 계획이다.
통합용수공급사업은 용수 수요에 맞춰 1단계(2031년 31만t/일), 2단계(2035년 76만2000t/일)로 추진된다. 1단계 사업은 팔당댐에서 용인까지 46.9㎞의 전용관로와 가압장을 신설해 2031년부터 하루 31만t의 용수를 국가산단에 공급하는 내용이다. 2단계부터는 팔당댐 취수장에서 일반산단으로 향하는 용수공급 분기점까지 42.4㎞구간의 복선관로(1단계 포함)를 구축한다. 이를 통해 2035년부터 국가·일반산단에 하루 45만4000t, 30만8000t의 용수를 각각 공급한다.

반도체 등 첨단산업에 필수적인 초순수(Ultrapure Water) 국산화 작업도 추진된다. 초순수는 물속 유기물·이온 등을 제거한 순수에 가장 가까운 물로, 반도체 표면의 불순물 세척 등에 사용된다. 반도체 생산에 꼭 필요하지만 이온물질 농도를 1ppt(1조분의 1) 이하로 낮춰야 하는 등 고도의 수처리 기술이 필요해 ‘초순수 선진국’인 일본 등에 의존해왔다. 초순수 1t 생산에 최대 4t의 원수가 필요하다. 특히 용인산단 공급 용수 절반가량은 초순수 제조에 쓰일 예정이다.
기후부는 2021년부터 ‘고순도 공업용수 생산 국산화 기술개발사업’ 1단계를 추진해 자외선산화장치·탈기막·이온교환수지 등 초순수 생산 공정 핵심 기자재를 국산화한 데 이어 최근 국산화 범위를 초순수 공급 배관 등 ‘소재’까지 확대하는 2단계 사업에 착수했다. 2030년까지 443억원을 들여 초순수 공급 전 과정 국산화율을 90% 이상 달성하는 것이 목표다. GWI에 따르면 세계 초순수 시장은 작년 46조5000억원에서 2030년 58조9000억원까지 성장할 전망이다.
높아진 물의 위상만큼 주무부처인 기후부도 효율적 물관리에 주력하고 있다. 우선 연내 수도법 개정을 통해 국가수도기본계획의 변경 주기를 현 5년에서 2년으로 앞당길 계획이다. 반도체 등 첨단산업 투자 확대 등 공업용수 수요 급변에 적기 대응하겠다는 취지다.
현재 해수·하천수 중심의 수열원도 하수, 유출지하수 등으로 다각화할 예정이다. 내년부터 대규모 산단, 스마트팜 등에 하수열 활용 시범사업을 추진하고, 지하공사 시 유출되는 지하수를 냉난방 열원으로 활용하는 방안도 본격화한다. 이러한 노력 등을 거쳐 수열에너지와 수력, 수상태양광 등 물기반 재생에너지를 올해 5월 기준 1.5기가와트(GW)에서 2030년 10기가와트(GW)까지 6배 이상 확대한다는 구상이다. 이는 같은 기간 국가 목표(78GW)의 13% 수준이다.
조희송 기후에너지환경부 물관리정책실장은 “기후위기, 첨단산업 발전, 에너지 전환의 접점에 있는 물은 국가경쟁력과 직결되는 핵심 자원”이라며 “한정된 수자원의 가치를 최대한 끌어내기 위한 전략을 지속적으로 강구해 유의미한 성과를 도출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