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현광장_김한진의 시황읽기] ‘증시 거품론’ 닷컴버블 때와는 다르다

입력 2026-06-04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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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상 비슷하지만 기업실적 뒷받침
밸류에이션 격차 등 시황 살펴보고
극도의 주가쏠림에 조정 대비하길

최근 증시는 철저히 기업 이익의 증가에 뿌리를 두고 있어, 과거의 거품 증시와는 결이 다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투자자들의 당혹감과 불안감은 점점 커지고 있다.

근래 가장 뚜렷한 거품으로 기록된 2000년 닷컴버블과 견주어, 지금의 시장이 과연 거품의 정점에서 몇 부 능선에 와 있는지에 대한 궁금증도 크다. 물론 적정 주가라는 것이 자연과학의 공식처럼 명확히 떨어지는 것도 아니고, 역사가 매번 똑같이 반복되는 것도 아니기에 과거와의 단순 비교는 한계가 있다. 그럼에도 2000년의 IT 거품이 최근 부쩍 회자되는 이유는 새로운 기술에 대한 무한한 비전과 막대한 자본투자, 그로 인한 광속의 주가 상승과 특정 업종에 쏠린 시장의 불균형이 당시와 많이 닮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2000년 초와 지금의 증시가 결정적으로 다른 점은 바로 ‘기업 실적’이다. 미국 S&P500 지수는 연초 대비 10% 올랐지만, 기업들의 주당순이익은 15% 증가해 주가수익비율(PER)은 연초보다 오히려 소폭 떨어졌다는 사실이 이를 반증한다. 현재 21배인 S&P500의 선행 PER는 20년 평균인 16배보다는 높지만, 그렇다고 거품이라 단정하긴 어렵다. 더욱이 2000년 3월 거품 붕괴 직전에 나스닥 100 종목의 선행 PER는 100배에 달했으나 지금은 27배에 그친다.

우리 증시도 연초 대비 2배나 올랐지만, 코스피 전체 선행 PER는 여전히 9배로 역사적 평균과 신흥국 평균치 아래다. 비록 반도체 중심의 이익 성장이긴 하나 이익이 뒷받침되고 있고, 지금 코스피 내에서 반도체 기업들의 이익 비중(70%)과 시가총액 비중(48%)은 대략 합리적인 수준을 보이고 있다.

2000년 3월 나스닥 지수가 5132포인트에서 불과 2년 7개월 만에 1100포인트로 80%나 폭락하기 직전의 상황을 돌아보면 참으로 놀랍다. 당시 나스닥 시장의 12개월 선행 PER는 지금보다 3배 이상 높은 80배였고, 핵심 주도주들의 선행 PER는 120배에서 140배에 달했다. 반면 지금의 대표 주자인 엔비디아는 21배, 마이크론은 10배에 불과하며, 인텔이 다소 높은 40배 수준에 거래되는 정도다. 국내 반도체 투톱 기업의 주가도 올해 예상 이익 기준으로 6배 정도의 PER에 놓여 있다. 이처럼 2000년과는 밸류에이션 격차가 확연히 큰 만큼, 투자자들은 이번 증시 상황을 다음과 같은 관점에서 차분히 정리해 볼 필요가 있다.

첫째, 지표들을 종합 비교해 볼 때, 지금 증시는 버블 붕괴 직전보다는 대폭발 전이었던 1998년과 유사해 보인다. 최근 주가가 광속으로 올랐지만, 그 레벨 자체가 거품 수준은 아니라는 뜻이다. 물론 이번 증시가 앞으로 결국 거품의 길을 걸을 지, 거품이 터지기 전에 멈춰 설지는 미지수다. 1990년대 후반의 세계 증시는 버블을 택했지만, 이번에도 반드시 같은 길을 걷는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 만약 전 세계 기술주 랠리가 1998년에 멈췄더라면 ‘닷컴 버블’이란 용어는 인류 역사에 아예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시장은 그때부터 나스닥 지수를 300%, 우리 코스닥 지수를 무려 380%나 추가로 밀어 올렸다. 이 기간 중 당시 대장주였던 시스코시스템스 등의 주가는 4배 올랐고, 한국의 SK텔레콤은 8배 추가로 올랐다.

둘째, 자산 시장에서는 가격의 적정성도 중요하지만 ‘상승 속도’ 또한 무시할 수 없다. 본격적인 대세 하락이 아니더라도 특정 섹터에 편중된 이익 증가와 극도의 주가 쏠림 현상은 필연적으로 빈번한 조정을 부르기 마련이다. 지금이 그런 상황인 듯하다. 다만 밸류에이션이 아직 거품이 아닌 상황에서, 단지 과속에 따른 주가 조정일 경우 그 폭은 제한적일 것이다. 물론 혹시 AI와 반도체 기업들의 이익이 지금 예상과는 달리 머지않아 무너져 내린다면 지금의 주가는 후일 거품으로 규정되겠지만, 다행히 당장 그럴 징후는 크지 않다. 다만 향후 반도체, CPU 가격 상승에도 불구하고, AI 투자가 순조롭게 지속될 수 있을지, 반도체 사이클의 진폭은 과연 어떨지, 그리고 주가 쏠림을 완화시켜 줄 시세의 분산과 순환이 뒤따를지 등이 전체 장세의 모양을 결정할 핵심 변수다.

마지막으로, 국내외 증시에서 주도업종의 주가가 진짜 거품 수준까지 치솟는다면, 그 결과는 부드러운 연착륙이나 점잖은 조정과는 거리가 멀 것이다. 즉 거품 장세의 말로는 적정 수준까지의 조정이 아니라 ‘과매도 영역’까지 주가 급락이다. 투기 포지션이 커진 상태에서 증시 내 수급이 거꾸로 되감기고, 대중의 투자심리가 일거에 공포에 빠지기 때문이다. 또 주가의 큰 폭 하락은 실물경기를 끌어내리고, 시차를 두고 기업 이익도 깎아내린다. 결국 주가 하락으로 인해 예상보다 더 악화된 실물경기와 힘이 빠진 기업 실적에 맞춰, 주가가 다시 또 재조정(하락)되는 악순환이 최악의 거품 후유증이다. 이런 패턴은 모든 자산 거품이 붕괴될 때 시장이 겪는 일종의 비용이자 숙명과도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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