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국 정상회담 계기 전략적 협력 기대
패션·음식·가구 넘어 미래 경쟁력 강조
“한국은 첨단기술 협력 최적 파트너”

흔히 한국인이 떠올리는 이탈리아는 구찌·프라다 같은 명품 브랜드와 피자·파스타, 르네상스 예술과 관광의 나라다. 그러나 에밀리아 가토 주한 이탈리아 대사는 최근 본지와 인터뷰에서 첨단 제조와 과학기술 분야에서도 강국이라는 점도 주목해주길 바랐다.
그는 “대사관 입장에서 가장 아쉬운 점 중 하나는 이탈리아의 제조 기술 경쟁력이 충분히 알려지지 않았다는 것”이라며 “많은 사람이 이탈리아를 ‘3F’ 국가로만 기억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여기에 하나를 더 추가해야 한다면 미래(future)”라고 힘줘 말했다.
실제 이탈리아는 독일과 함께 유럽 내 제조업 강국으로 꼽힌다. 우주항공·방산·전력 반도체·친환경 에너지 전환 등 미래 유망 산업에서 높은 경쟁력을 갖추고 있어, 향후 한국과 협력 잠재력이 크다는 평가를 받는다.
특히 올해 1월 조르자 멜로니 이탈리아 총리와 이재명 대통령의 정상회담을 계기로 양국 간 전략적 협력 확대 기대가 커지고 있다. 당시 이 대통령이 이탈리아 답방 초청을 받은 만큼 더욱 탄력을 받을 것으로 전망된다.
가토 대사는 “이 대통령의 이탈리아 방문이 성사된다면, 지난 몇 년간 힘써 온 첨단기술 및 혁신 산업 분야 협력을 한층 더 발전시키는 매우 중요한 계기가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어 “반도체·항공우주·배터리·핵심광물은 가장 우선적인 협력 분야로 이는 양국 공동 행동계획에도 명시돼 있다”면서 “뿐만 아니라 산업 자동화·로보틱스, 헬스케어·바이오제약, 녹색 에너지 전환·디지털 전환 등 다양한 첨단 산업 분야에서도 협력이 더욱 확대되기를 기대한다”고 밝혔다.
이탈리아는 유럽 대표 우주항공 강국이다. 1964년 자체 제작 인공위성 ‘산마르코 1호’를 발사하며 미국·러시아에 이어 세 번째 우주 진출국 반열에 올랐다. 또 국제우주정거장(ISS)의 거주 공간 중 40% 이상이 이탈리아에서 제작됐다. 레오나르도·탈레스알레니아스페이스 등 세계적인 항공우주 기업들이 다수 자리하고 있다.
반도체 분야에서는 양국 간 상호보완적 협력 가능성이 주목된다. 한국이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를 중심으로 한 메모리 반도체 강국이라면 이탈리아는 ST마이크로일렉트로닉스 등 전력 반도체 분야에서 세계적 경쟁력을 갖추고 있다.
가토 대사는 “이탈리아는 전기차·로봇·데이터센터의 전력 효율을 높이는 데 핵심적인 전력 반도체 분야에서 강점을 보유하고 있다”며 “메모리 반도체 경쟁력을 갖춘 한국과 다양한 시너지를 낼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양국의 과학기술 구조가 상호 보완적이라고 진단했다. 그는 “이탈리아는 오랜 기간 기초과학에 투자해 왔고, 한국은 경제 발전 과정에서 응용기술 경쟁력을 키웠다”며 “이탈리아의 기초과학과 한국의 응용기술이 결합하면 매우 강한 시너지를 만들 수 있다”고 관측했다.
이미 협업 사례도 적지 않다. 가토 대사는 롯데케미칼과 이탈리아 석유화학 기업 베르살리스 간 화학소재 분야 합작 사업을 비롯해 정밀기기·화장품·제약 분야에서도 양국 기업 간 협력이 이뤄지고 있다고 소개했다.
다만 양국 협력 확대를 위해 풀어야 할 과제도 있다고 짚었다. 가토 대사는 “한국 시장은 매우 역동적이고 매력적인 시장”이라고 평가하면서도 “일부 분야에서는 기업들이 적응해야 할 규제 환경이 다소 복잡하게 느껴질 수 있다”고 언급했다. 특히 식품 분야의 인증 및 규제 절차와 관련해 일부 이탈리아 기업들이 한국 시장 진출 과정에서 어려움을 겪기도 한다고 전했다.
그는 “한국이 소비자 안전과 높은 기준을 중요하게 여기는 정책적 배경 역시 충분히 이해하고 존중한다”면서 “양국 모두 서로에게 제기하는 규제 관련 이슈가 있는 만큼, 지속적인 대화와 협의를 통해 점진적으로 개선해 나갈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고 밝혔다.
가토 대사는 차기 부임 희망지에 사실상 한국만 기재했다고 한다. 하지만 한국은 외교관 사회에서도 쉽게 올 수 있는 부임지가 아니었다. 지정학적·경제적 중요성이 큰 데다 인기도 높아 경쟁이 치열한 자리로 꼽혔기 때문이다.
이에 한국행을 위해 나름 ‘특단의 전략’까지 세웠다고 한다. 그 과정에서 자원한 곳이 서아프리카 니제르였다. 그는 “니제르 사람들은 정말 훌륭했지만 말라리아만 여섯 차례 앓을 정도로 쉽지 않은 근무지였다”면서 “그런 시간을 겪고 한국에 오게 된 것은 보상 같은 부임이었다”고 회상했다.

그래서였을까. 2023년 9월 주한 이탈리아 대사로 부임한 후 누구보다 한국 생활을 적극적으로 즐기고 있다. 특히 그는 한국어를 직접 공부해 사석에서도 공식 행사에서도 한국어를 곧잘 섞어 적극적으로 사용한다. “정말 오고 싶었던 나라였기 때문에 언어도 배우고 싶었다”는 게 이유다. “세종대왕의 팬”이라며 “백성을 사랑하는 정신이 담긴 위대한 발명”이라고 평가하는 모습에서는 어느새 ‘한국 덕후’에 가까운 애정도 묻어났다. 단순히 한국 문화에 호감을 가진 수준을 넘어, 한국 사회와 언어를 진심으로 이해하려는 진심이 느껴졌다.
대사가 꼽은 한국의 가장 큰 매력은 사람이었다. 그는 “한국 사람들은 처음엔 조금 수줍은 듯하지만 가까워지면 굉장히 따뜻하고 열정적”이라며 “이탈리아 사람들과 닮은 점이 많다”고 평했다. 무엇보다 한국 특유의 ‘정(情)’ 문화에 깊은 인상을 받았다고 했다. 그는 “한국의 ‘정’은 이탈리아 사람들이 이해하기 쉬운 감정”이라며 “이탈리아에도 사람을 따뜻하게 대하고 관계를 중요하게 생각한다”고 풀이했다.
가토 대사의 한국 음식 사랑은 각별했다. 실제로 가토 대사는 이탈리아에 갈 때 김치를 챙겨갈 정도로 한국 음식을 좋아한다. 그는 한식과 이탈리아 음식은 건강한 재료와 전통 조리법을 중요하게 여긴다는 점에서 닮았다고 했다.
문화 교류 아이디어도 직접 냈다. 최근 주한 이탈리아 대사관은 ‘한국-이탈리아 방방 노래방 ’(Bang! Bang! Norae K-IT)이라는 이름의 문화 행사를 이달 29일을 시작으로 매달 정기적으로 개최할 예정이다. 한국인은 이탈리아 칸초네를 부르고, 이탈리아인은 K팝을 함께 즐기는 노래방 형식의 교류 행사다. 가토 대사는 “노래는 가장 좋은 문화 교류 방식 중 하나”라며 “편안한 분위기에서 자연스럽게 서로를 이해할 수 있길 바란다”고 언급했다.
한국인들에게 꼭 추천하고 싶은 이탈리아 여행 방식도 들려줬다. 그는 로마·베네치아·피렌체 같은 유명 관광지보다 작은 소도시를 찾아가 보라고 권했다. “이탈리아는 알려진 도시 말고도 아름다운 소도시가 정말 많다”면서 “천천히 걷고, 현지 음식을 먹고, 현지 사람들을 만나봤으면 좋겠다”고 제시했다.
이러한 생각은 실제 외교 활동에도 이어졌다. 가토 대사는 도시 간 교류 확대를 대사관의 우선 과제로 삼고 적극 추진해왔다. 재임 기간 도시 간 자매결연 2건(제노바·부산, 파르마·춘천), 우호 협약 3건(피에트라산타·증평군, 아스티·안동, 나폴리·통영)이 체결됐다. 이를 통해 양국 간 도시 자매결연은 총 8건, 우호협약은 총 16건으로 늘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