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병 산재 ‘제로’ 현실적으로 불가능…은폐 악순환 우려”

조선업 산업재해에서 추락·끼임 등 사고성 재해보다 업무상 질병이 차지하는 비중이 훨씬 큰 것으로 나타났다. 전문가들은 업무상 질병을 완전히 차단하는 데는 한계가 있는 만큼 사후 보상을 현실화하고, 근로자의 보건관리까지 포괄하는 안전 대책을 구축해야 한다고 제언한다.
26일 고용노동부가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소속 박홍배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에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조선업 업무상 질병 사망자 수는 52명으로 사고 사망자 10명의 5배를 웃돌았다. 2024년 기준으로 보면 산업재해 사망자 54명 중 질병 사망이 39명으로 절반을 훌쩍 넘겼다.
조선업 현장의 작업 환경 특성을 고려하면 업무상 질병 위험이 높을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 나온다. 밀폐 공간에서 이뤄지는 용접·도장 작업은 고온·소음 환경과 화학물질에 지속적으로 노출되는 구조라 근골격계 질환과 소음성 난청, 직업성 암 등을 유발할 수 있다. 납기 준수를 위한 장시간 노동과 교대 근무는 과로의 요인으로 꼽힌다. 고령 숙련공 의존도가 높은 것도 질병성 산재 증가 배경으로 거론된다.
이주노동자 증가도 또 다른 취약 요인이다. 조선업인권침해대응연대가 발간한 ‘2025 한국 조선업 인권 보고서: 침몰하는 안전과 인권’에 따르면 2024년 기준 이주노동자 재해자 수는 총 178명이었으며 이 가운데 사고 재해가 161건, 질병 재해가 17건이었다. 다만 산재로 인정받지 못한 사례까지 감안하면 실제 질병성 산재 규모는 더욱 클 것으로 보고서는 추정했다.
보고서는 “실제로 이주노동자들은 업무 부담 노출 기간이 짧다는 이유로 산재 신청이 불승인되는 경우가 많다”며 “이주노동자들의 정보 부족과 사업주의 저조한 협조도 이주노동자의 업무상 질병 산재 승인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다”고 지적했다.
전문가들은 업무상 질병의 경우 사고성 재해처럼 ‘제로화’ 접근만으로는 해결하기 어렵다고 지적한다. 조선업은 중량물 취급과 반복 작업, 밀폐 공간 작업 등 신체 부담이 수반될 수밖에 없어 일정 수준의 질병 발생 가능성을 완전히 차단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오수민 노무법인 광해 대표 노무사는 “산재 발생 자체에 과도한 책임을 묻게 되면 오히려 노동자들이 아파도 산재 신청을 꺼리거나 현장에서 은폐하려는 분위기가 생길 수 있다”며 “업무상 질병이 발생했을 때 신속하게 산재로 인정받고 치료·보상·복귀까지 이어질 수 있는 체계를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사고 예방과 사후 처벌을 넘어 노동자의 보건관리까지 포괄하는 안전 체계가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박 의원은 “산업안전에는 눈에 보이는 즉각적인 사고 예방뿐 아니라 열악한 노동 환경 속에서 누적되는 질병성 재해에 대한 대응도 포함돼야 한다”며 “노동자들의 안전과 건강권을 함께 보장할 수 있도록 노동 보건 전반에 대한 인식 변화와 관리 체계 개선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정부도 ‘산재와의 전쟁’을 선언하고 관련 제도 정비에 나서고 있다. 고용노동부는 3월 ‘산재·보상·일터복귀 종합지원단’을 꾸리고 업무상 질병 예방 정책 강화와 산재 인정 체계 개선, 재활·복귀 지원 확대 등을 추진 중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