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권가 ‘한국판 골드만삭스’ 경쟁···모험자본 시장 판 커진다

입력 2026-05-25 09: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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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가 종합투자계좌(IMA)와 발행어음을 통한 증권사의 모험자본 공급 확대를 유도하면서 증권업계가 ‘한국판 골드만삭스’를 겨냥한 기업금융 경쟁에 속도를 내고 있다. 증권사들은 벤처·스몰캡 투자 확대는 물론 관련 리서치 조직과 투자 인력 강화에도 나서는 모습이다. 다만 업계 일각에서는 단기간에 대규모 자금이 벤처시장으로 몰릴 경우 투자 과열과 유동성 부담이 커질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25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현재 IMA와 발행어음 사업을 영위 중인 증권사는 한국투자·미래에셋·NH투자·KB·키움·하나·신한투자증권 등 7곳이다. 삼성증권과 메리츠증권도 지난 7월 인가를 신청한 뒤 결과를 기다리고 있다.

IMA는 자기자본 8조원 이상 종합금융투자사업자에게 허용되는 계좌로, 증권사가 원금 지급 의무를 지고 고객 예탁금을 기업금융 자산 등에 투자하는 상품이다. 발행어음은 자기자본 4조원 이상 증권사가 자체 신용으로 발행하는 단기 금융상품이다.

정부는 발행어음·IMA 조달액 가운데 일정 비율 이상을 국내 모험자본에 투자하도록 의무화했다. 의무 비율은 올해 10%를 시작으로 2027년 20%, 2028년 25%까지 단계적으로 확대된다.

실제 증권사들의 자금 조달 규모도 빠르게 커지고 있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올해 1분기 기준 발행어음·IMA 조달 규모는 총 57조2000억원으로 집계됐다. 이 가운데 모험자본 공급 규모는 9조8700억원으로, 조달액 대비 17.3% 수준이다. 발행어음 조달 규모는 2020년 말 15조6000억원에서 올해 3월 말 54조4000억원으로 약 3.5배 증가했고, 지난해 처음 출시된 IMA 역시 지난해 말 1조2000억원에서 올해 3월 말 2조8000억원으로 확대됐다.

업계에서는 한국투자증권이 가장 공격적인 행보를 보이고 있다. 한국투자증권은 IMA 상품을 4호까지 출시해 총 2조5600억원을 모집했다. 현재 판매 중인 5호 상품도 약 3000억원 규모로 알려졌다. 올해 1분기 기준 발행어음 잔액은 21조6300억원에 달한다.

미래에셋증권은 IMA 1·2호 상품으로 각각 1000억원 규모를 모집했고, 발행어음 잔고는 10조1000억원 수준이다. 미래에셋증권은 조달 자금 10조3000억원 가운데 약 1조7000억원을 모험자본에 투자해 투자 비율 16.4%를 기록했다. 이는 정부 기준치를 웃도는 수준이다. 회사는 다음 주부터 약 1000억원 규모의 IMA 3호 상품도 선착순 모집할 예정이다.

NH투자증권 역시 지난 3월 IMA 사업자로 지정된 이후 4000억원 규모의 1호 상품을 완판했고, 다음 달에는 약 1200억원 규모의 2호 상품 출시를 준비 중이다. 현재 발행어음 연평균 잔고는 약 9조원 수준이다.

증권사들은 단순 자금 공급을 넘어 모험자본 투자 생태계 확대에도 공을 들이고 있다. 키움증권은 최근 신규 설립 예정인 ‘키움 벤처히어로 모펀드(가칭)’에 2000억원을 출자하기로 했다. 올해 공급 예정인 신규 모험자본 규모만 6000억원 수준이다.

리서치 조직 강화 움직임도 뚜렷하다. 한국투자증권은 중소·중견기업 담당 연구원을 기존 3명에서 6명으로 확대했다. 하나증권은 리서치센터 내 ‘미래산업팀’을 신설해 스몰캡 기업 분석을 강화하고 있으며, 보고서 발간과 커버리지를 약 30% 확대할 계획이다. 연구원과 리서치 어시스턴트(RA) 추가 채용도 검토 중이다. 또 제주·부산·충남 창조경제혁신센터와 협업하며 비수도권 투자도 확대하고 있다. 신한투자증권 역시 최근 ‘혁신성장팀’을 꾸려 시가총액 1조원 이하 기업에 대한 분석 보고서를 늘리고 있다.

다만 시장에서는 우려의 목소리도 나온다. 한 증권업계 관계자는 “수조원 단위 자금을 흡수할 투자처가 충분한지 의문”이라며 “상대적으로 작은 벤처·스몰캡 시장에 자금이 집중될 경우 일부 영역에서 버블이 발생할 가능성도 있다”고 말했다.

기업공개(IPO) 시장 환경과 정책 간 엇박자를 지적하는 목소리도 있다. 최근 코스닥 상장 및 상장폐지 규제가 강화되고 중복상장 금지 원칙이 확대되면서 IPO 문턱은 높아지고 있지만, 반대로 모험자본 공급은 빠르게 늘고 있다는 것이다.

윤원태 SK증권 연구원은 최근 보고서에서 “증권사들이 IMA 운용 과정에서 모험자본 투자를 확대하고 있지만 적절한 투자 자산을 찾기 쉽지 않은 상황”이라며 “일부는 첨단전략산업기금 채권 등을 담으며 역마진까지 감수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증권사들의 유동성 관리 부담 역시 과제로 꼽힌다. 한 금융투자업계 관계자는 “발행 규모 확대보다 중요한 것은 안정적인 운용 능력”이라며 “발행어음은 결국 고객에게 상환해야 하는 자금인 만큼 무리한 운용은 유동성 리스크로 이어질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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