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금요일 오후가 있는 삶?
한때 일부 해외 기업의 실험으로 여겨졌던 '주 4.5일제'가 현실화되는 걸까요? 정부가 노동시간 단축을 핵심 국정 과제로 내세우면서 주 4.5일제 도입에 대한 근로자들의 기대가 높아집니다.
이때 노동시간 단축은 단순히 일을 '덜' 하는 문제가 아닙니다. 직장인 삶의 방식은 물론 기업 운영 구조, 소비 패턴, 자영업과 여행·여가 산업까지 사회 전반에 적지 않은 변화를 불러올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죠.
그 변화로 장밋빛 전망만 언급되는 건 아닙니다. 임금 감소부터 업무 강도 증가, 인력 부담 확대 등을 우려하는 목소리 역시 만만치 않은 상황입니다.

고용노동부 발주로 한국고용노사관계학회가 진행한 '실노동시간 단축 로드맵 마련을 위한 최종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의 연간 실노동시간은 2017년 1996시간에서 2024년 1859시간으로 7년 새 137시간 줄어들었습니다.
이때 정부가 추진하는 노동시간 단축 제도가 안착한다면 2030년 실노동시간은 1739시간으로 감소할 것으로 예측됐는데요. 이는 정부가 목표로 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평균 수준인 '1700시간대'로 진입하는 겁니다.
보고서는 우리나라 연간 노동시간이 감소한 원인으로 주 5일제, 주 52시간 상한제 도입 등에 따른 주 40시간 이상 장시간 근로 비중의 감소를 꼽았습니다.
다만 노동시간은 여전히 OECD 국가 중 상위권입니다. 근로시간이 빠르게 줄어들고 있음에도 우리나라의 연간 노동시간은 OECD 37개 회원국 중 6위죠. 콜롬비아, 멕시코, 코스타리카, 칠레, 이스라엘 다음으로 이름을 올렸습니다. 반면 독일은 연간 노동시간이 1294시간, 네덜란드는 1367시간, 프랑스는 1390시간 등으로 나타났습니다.

정부가 국정과제로 추진 중인 주 4.5일제 도입이 이뤄질 경우의 연간 실노동시간에 부합하게 되는 셈인 만큼, 관련 논의도 탄력을 받을 것으로 보입니다.
정부는 주 4.5일제 도입을 핵심 국정과제로 추진 중인데요. 앞서 노동부는 지난해 9월 '실노동시간 단축 로드맵 추진단'을 출범하고 같은 해 12월엔 노사정 공동선언과 로드맵 추진과제를 발표한 바 있죠.
지난달 8일에는 '공짜 노동'을 막기 위한 포괄임금 오남용 방지 지도 지침을 내놨습니다. '고정OT(초과근무시간)'를 약정했을 때도 약정보다 실제 수당이 많을 경우 차액을 지급해야 한다는 내용이 골자입니다.
또 퇴근 후 불필요한 업무 연락을 막기 위한 이른바 '퇴근 후 카카오톡 금지법' 제정을 추진하고 있고요. 올해 시범사업으로 시작한 주 4.5일제도 확대할 계획이죠.
이때 주 4.5일제 도입은 단순한 근로시간 단축에 그치지 않습니다. 이미 한국 노동시장과 기업 경영 구조에 적잖은 변화를 예고한 상황이죠.
저출생·고령화, 낮은 생산성 등은 국가적 난제로 거론됩니다. 장시간 노동 중심의 산업 구조 변화 없이는 이를 해결하기 어렵다는 공감대가 커졌고, 이때 주 4.5일제는 노동시간을 단축하며 지속가능한 사회로 나아가는 데 도움을 줄 수 있는 전략으로 언급됐습니다.
기대 효과는 앞선 법정 노동시간 단축을 통해 일부 확인되기도 했습니다. 국책 연구기관 보고서와 다수의 학술 논문 등에서는 노동 생산성이 향상되고 일자리 창출, 산업재해 감소 등 경제 전반에 긍정적 효과가 나타났다고 전한 바 있죠.
서울 시민 10명 중 4명가량이 일에 치여 여가를 즐기지 못하고 서울 시민 과반수가 주 4.5일제 도입을 지지하는 것으로도 나타났습니다. 서울시가 지난달 발표한 '2025 서울서베이' 분석 결과에 따르면 5.81점(2024년)이던 서울시민의 여가생활 만족도는 지난해 5.67점으로 하락했습니다. 여가생활에 불만족한 이유로는 ‘시간이 부족해서’(39.2%)라는 응답자가 가장 많았습니다.
이러한 경향은 30~40대와 대졸 이상, 화이트칼라 직군에서 두드러졌습니다. '일과 생활 균형이 잘 이뤄지고 있다'는 응답은 같은 기간 37.8%에서 29.9%로 줄어들었습니다. 반면 '일에 더 집중하고 있다'는 응답은 33.8%에서 43.4%로 10%포인트(p) 가까이 증가했는데요. 이에 대해 서울시는 "일에 치이는 서울 시민이 그만큼 늘었다고 해석할 수 있다"고 설명했죠.
또 주 4.5일제 도입 시 기대 효과로는 '여가·취미활동 시간 확대'(60.8%)가 1위를 차지했는데요. 연령별로는 30대가 71.9%로 주4.5일제를 가장 많이 지지했죠. 20대(66.9%)와 40대(63.2%)도 60%를 웃돌았습니다.

다만 장밋빛 전망만 나오는 건 아닙니다.
대표적인 우려는 사업장에 따른 효율성입니다. 일률적인 노동시간 규제는 되레 기업 생산성에 악영향을 끼칠 수 있다는 건데요. 화이트칼라·대기업의 경우 인공지능(AI)부터 정보기술(IT) 발달로 근로시간 단축 여지도 크지만, 중소 제조업의 경우 '임금 삭감 없는' 근로시간을 감당하기 어려운 실정입니다.
노동 강도에 대한 우려도 빼놓을 수 없습니다. 노동시간은 줄어들지만 업무량이 유지된다면 체감 업무량은 상승할 수밖에 없는데요. 직무 몰입도는 반대로 하락하는 부작용이 나타날 수 있습니다.
또 노동시간을 줄이더라도 노동 생산성 우려는 상존합니다. 2023년 기준 한국의 시간당 노동생산성은 OECD 38개국 중 30위, 취업자 1인당 노동 생산성은 37개국 중 21위에 그쳤죠.
이에 OECD 평균 수준으로 실노동시간을 줄이기 위해선 장시간 근로를 줄이기 위한 노력은 물론, 생산성 제고와 노동시간 다양화를 통해 노동의 양적 투입이 아닌 질적 성과를 향상하는 방안이 필요한데요.
실노동시간 단축 로드맵 마련을 위한 최종 보고서는 노동시간 단축을 실질적으로 진전시키려면 구조 개편이 필요하다고 제언했습니다. 구체적으로는 특별연장근로, 포괄임금제 오남용, 노동시간 특례업종, 감시·단속 노동자나 5인 미만 사업장 등에 확산해 있는 장시간 노동을 줄여야 한다고 했는데요. 이와 함께 근무 형태 선택 범위를 넓히고 연차 휴가 소진율을 높이며 가족 돌봄 등을 이유로 일시적으로 일터를 벗어날 수 있는 제도적 여건을 마련해야 한다는 지적입니다.
정부는 4.5일제 도입 지원 시범사업을 통해 현장 적용 사례를 확보하겠다는 방침인데요. 주 4.5일제가 장기적으로 노동시장 구조 변화의 시발점이 될지 귀추가 주목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