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ol. 4 앉아 있는 시간의 가치: 상위 0.0001% 슈퍼리치들의 오피스 체어 [THE RARE]

입력 2026-04-17 14: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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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HE RARE ] VOL. 4

앉아 있는 시간의 가치:
상위 0.0001% 슈퍼리치들의 오피스 체어

"천외천(天外天). 하늘 밖의 하늘이 있다."

부자 중에서도 '슈퍼리치'라 불리는 이들이 있습니다. 우리가 흔히 아는 명품관의 오픈런 줄에는 그들이 없습니다. 세상의 0.0001%로 살아가는 그들, '천외천'의 삶은 우리의 상식 밖 궤도에서 움직입니다.

로고가 없는 3000만원짜리 코트, 대중에게는 이름조차 생소한 1억원의 침대, 그리고 지도에서 지워진 리조트. 남들이 알아봐 주길 바라는 '과시'가 아니라, 남들은 결코 알 수 없는 '단절'을 사는 그들의 진짜 속내는 무엇일까요.

이투데이 [THE RARE]는 일반인들은 접하기도 힘든, 그러나 누구나 한 번쯤 훔쳐보고 싶은 견고한 성벽 안쪽의 이야기를 전합니다. 로고가 사라진 자리를 채우는 것은 무엇인지, 그들이 지갑을 여는 진짜 이유는 무엇인지. 자본주의 최정점에 선 그들의 소비와 취향, 그 속에 숨겨진 부의 트렌드를 들여다 봅니다.

상위 0.0001%가 사는 세상의 문을 열다

VOL. 4 오피스 체어

▲(사진=AI 생성)
▲(사진=AI 생성)

하루 24시간. 그중 우리가 가장 오랜 시간 몸을 맞대고 있는 사물은 무엇일까요? 침대? 스마트폰? 놀랍게도 정답은 의자입니다. 아침에 일어나 식탁 의자에 앉아 커피를 마시고, 출근길 지하철 좌석에 앉고, 회사에 도착해서는 또 책상 앞 의자에 앉죠. 점심을 먹을 때도, 퇴근하고 카페에 들러 한숨 돌릴 때도, 집에 돌아와 넷플릭스를 볼 때도 우리는 어딘가에 앉아 있습니다. 우리는 하루 평균 10시간 이상을 의자에서 보냅니다. 현대인에게 의자는 인생의 3분의 1을 함께하는 동반자나 다름없습니다.

현대인의 의자

“호모 세덴스(Homo Sedens)”

앉아서 생활하는 인간이라는 뜻입니다. 현대인들은 의자에 앉아서 보내는 시간이 크게 늘어났습니다. 특히 요즘처럼 재택근무와 1인 작업이 늘어난 시대에는, 좋은 의자 하나를 장만하는 것은 곧 삶의 질 상승을 의미합니다. 허리가 아프면 집중도 안 되고, 집중이 안 되면 하루가 통째로 무너지니까요. 예전에는 의자라고 하면 그저 책상에 달려오는 부속품 정도로 여겨졌지만, 이제는 다릅니다. 사람들은 책상보다 의자에 더 많은 돈을 쓰고, 모니터보다 의자를 먼저 고민합니다.

흥미로운 건 사람들이 최근 의자를 고르는 기준 자체가 달라졌다는 점입니다. 한때는 푹신한 쿠션과 두툼한 가죽이 곧 좋은 의자의 상징이었다면, 이제는 통기성, 요추 지지, 무게 분산, 리클라이닝 각도 같은 단어들이 일상 대화에 등장합니다. 의자 하나를 사기 위해 몇 주씩 리뷰를 뒤지고, 직접 매장에 찾아가 한 시간씩 앉아보고, 중고 매물이 올라오기를 몇 달씩 기다리는 사람들도 있죠. 의자는 더 이상 가구가 아니라, 자기 몸을 지키기 위한 일종의 장비가 된 셈입니다. 그리고 불편한 의자 위에서 이리저리 자세를 바꿔가며 일해 본 사람이라면 압니다. 내 몸을 완벽하게 받쳐주는 의자가 작업의 능률뿐만 아니라 삶의 질까지 바꿔놓을 수 있다는 것을요.

합리적 소비

그리고 이 흐름의 가장 끝, 그러니까 돈과 시간과 정성을 가장 많이 쏟을 수 있는 사람들이 모이는 자리에는 또 다른 세계가 펼쳐집니다. 세계의 슈퍼리치들은 시계나 자동차만큼이나, 어쩌면 그 이상으로 의자에 진심입니다. 그들에게 의자는 단순히 앉는 도구가 아니라, 그날 내려야 할 수많은 결정을 함께하는 가장 중요한 투자 중 하나입니다. 우리는 의자의 가치를 쉽게 잊어버리고 하지만, 누군가는 평생을 같은 의자에 앉아 수십조 원을 굴리기도 합니다.

전 세계 상위 0.0001%에게 의자는 자신의 지위와 안목을 증명하는 소비입니다.

인체공학의 극한을 보여주는 설계부터 예술 작품에 버금가는 장인정신까지,

그들은 어떤 의자에 앉는지 한번 알아봅니다.

CHAIR 01 . EAMES EXECUTIVE

허먼 밀러 - 임스 이그제큐티브

▲허먼 밀러의 임스 이그제큐티브 의자. (사진제공=Herman Miller)
▲허먼 밀러의 임스 이그제큐티브 의자. (사진제공=Herman Miller)

부와 권력의 상징성, 그리고 그 안에 담긴 이야기의 무게로 따지자면 이 의자만큼 묵직한 물건도 없습니다. 1960년에 처음 만들어져 65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거의 같은 형태 그대로 생산되고 있는, 그야말로 살아 있는 클래식이라고 불릴만합니다. 가격은 한화 약 1000만 원에 판매되고 있습니다.

사진 한 장에서 시작된 의자

이 의자의 탄생에는 꽤 흥미로운 뒷이야기가 있습니다. 1959년, 20세기 최고의 디자이너 부부로 불리는 찰스와 레이 임스는 모스크바 세계박람회 미국관에서 선보일 슬라이드 쇼를 준비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문제는 사진이었습니다. 그들은 거대 미디어 그룹 타임(TIME) 사의 방대한 사진 아카이브가 필요했고, 결국 당시 회장이었던 헨리 루스에게 직접 부탁을 하게 됩니다. 루스는 흔쾌히 사진을 빌려주는 대신 한 가지 조건을 걸었습니다. "언젠가 이 신세를 갚아 달라"는 약속이었죠.

이듬해인 1960년, 루스는 임스 부부에게 전화를 걸어 그 약속을 청구합니다. 맨해튼에 새로 짓고 있던 타임-라이프 빌딩에 들어갈 의자를 디자인해 달라는 요청이었죠. 임스 부부는 그 부탁에 응했고, 그렇게 탄생한 것이 바로 타임-라이프 체어, 우리가 오늘날 임스 이그제큐티브 체어라 부르는 그 의자입니다. 사진 한 장 빌려달라는 부탁이 결국 인류 디자인사에 한 페이지를 새기게 된 셈이죠.

이 의자가 단순한 가구를 넘어 전설이 된 결정적인 사건은 1972년에 일어났습니다. 그해 아이슬란드 레이캬비크에서는 인류 역사상 가장 유명한 체스 경기가 열리고 있었습니다. 미국의 천재 보비 피셔와 소련의 챔피언 보리스 스파스키가 맞붙은, 이른바 세기의 체스 대결이었습니다. 냉전이 한창이던 시절, 이 경기는 단순한 스포츠 이벤트가 아니라 미국과 소련의 자존심이 걸린 국가 대항전이나 다름없었습니다.

문제는 보비 피셔가 지독하게 까다로운 사람이었다는 겁니다. 그는 경기 전에 수많은 요구사항을 내걸었는데, 그중 하나가 바로 임스 이그제큐티브 체어였습니다. 피셔는 이 의자에 앉아야만 집중이 잘된다고 주장했고, 결국 주최 측은 그의 요구를 들어줄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런데 더 재미있는 건 그다음입니다. 상대편 보리스 스파스키 역시 이 소식을 듣고 자기도 똑같은 의자를 가져와 달라는 요구를 했습니다. 결국 두 사람은 똑같은 임스 이그제큐티브 체어에 마주 앉아 세기의 대결을 펼쳤고, 그 장면은 사진과 영상으로 전 세계에 송출되었습니다. 이 대결 계기로 임스 이그제큐티브 체어는 '천재가 선택한 의자'라는 별명을 얻게 되었습니다.

디자인 자체도 흥미롭습니다. 광택이 흐르는 알루미늄 프레임 위에 시트는 4.5인치, 등받이는 3인치 두께의 푹신한 쿠션이 얹혀 있고, 암레스트까지 패딩 처리가 되어 있습니다. 시트 높이 조절과 틸트, 스위블 기능이 모두 들어가 있죠. 겉으로는 보이지 않지만, 의자의 골격 안쪽에는 합판으로 만든 스켈레톤이 숨겨져 있어 묵직한 안정감을 만들어냅니다. 60년 전에 만들어진 의자라고는 믿기지 않을 만큼 현대적인 인체공학이 이미 적용되어 있었던 셈입니다. 게다가 의자 밑면에 토션 바 틸팅 메커니즘을 도입한 것도 이 모델이 처음이었습니다. 1985년에 4 다리 십자형 베이스에서 5 다리 별 모양 베이스로 한 번 바뀐 것을 제외하면, 디자인은 65년 동안 거의 그대로 유지되고 있습니다. 한번 완성된 디자인이 반세기가 넘도록 손볼 곳이 없다는 것, 그게 바로 이 의자가 클래식이라 불리는 이유입니다.

CHAIR 02 . AIORA

데이비드 휴 - 아이오라

▲데이비드 휴의 아이오라 의자. (사진제공=DavidHugh)
▲데이비드 휴의 아이오라 의자. (사진제공=DavidHugh)

영국 케임브리지의 작은 디자인 스튜디오에서 만들어지는 이 의자는, 사실 의자라고 부르기에는 어딘가 어색한 물건입니다. 제조사인 데이비드 휴 측에서도 이걸 그냥 의자가 아니라 '플로테이션 체어', 즉 부유 의자라고 부릅니다. 이 의자를 만든 사람은 데이비드 위켓 박사입니다. 2002년에 첫 프로토타입을 만든 이래, 그는 박사 과정 동안 인간 자세에 관한 새로운 생체역학 모델을 개발하고 검증하는 일에 매달렸습니다. 그렇게 무려 20년 가까운 연구 끝에 세상에 나온 것이 데이비드 휴의 첫 번째 의자 엘리시움이었고, 그 다음 세대로 새롭게 등장한 것이 바로 오늘 소개할 아이오라입니다. 가격은 가장 저렴한 제품이 한화 약 1000만원, 가장 비싼 시그니처 제품은 한화 약 2000만원에 달합니다.

그런데 이 의자가 정말 흥미로운 이유는 가격도, 디자이너의 이력도 아닙니다. 진짜 충격은 앉아본 사람만 안다는 그 감각, 바로 무중력에 있습니다. 데이비드 휴는 이 기술을 플로테이션(Flotation) 테크놀로지라고 부르는데, 평면 운동 역학 시스템을 정교하게 설계한 결과 이 의자는 사용자가 숨을 쉬는 것만으로도 눈에 보일 정도로 움직입니다. 외부의 힘이 전혀 가해지지 않은 상태에서 완벽한 평형을 이루도록 설계되어 있죠. 그저 마케팅 문구처럼 들릴 수 있지만, 케임브리지 팀이 이 의자가 만들어내는 명상 상태에 관해 발표한 신경과학 논문이 실제로 존재합니다.

아이오라만의 작동 방식

더 놀라운 사실은 이 모든 일이 전기나 모터, 배터리, 센서 하나 없이 이루어진다는 점입니다. 아이오라는 전기나 전자 장치 없이 작동하는 순수 기계식 시스템입니다. 전기 모터도, 스프링 메커니즘도, 복잡한 전자 장치도 없죠. 의자의 움직임은 오직 그 위에 앉은 사람 자신에 의해 감지되고, 작동되고, 통제됩니다. 다시 말해, 이 의자는 사용자의 몸이 곧 엔진입니다. 손을 살짝 움직이면 의자가 따라서 기울고, 손을 내리면 다시 곧추세워지고, 호흡 한 번에도 의자 전체가 미세하게 떠오릅니다.

그래서 이 의자를 처음 사용하는 사람은 적응 시간이 필요합니다. 비즈니스 인사이더의 한 리뷰어는 직접 앉아본 후 “살면서 의자 사용법을 배워야 했던 적은 처음”이라고 말하기도 했죠. 처음에는 약간의 불안감을 느끼는 사람도 있지만, 몸은 곧 적응해서 자신감 있게 움직임을 통제할 수 있게 된다고 합니다.

흥미로운 건 이 의자가 단순한 무중력 체험으로 끝나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데이비드 위켓 박사에 따르면 플로테이션 기술은 평소 명상 경험이 전혀 없는 사람에게서도 오랜 기간 수행을 해온 불교 승려들과 유사한 뇌파 패턴을 만들어내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합니다. 즉, 이 의자에 앉아 있는 것만으로도 깊은 명상 상태에 들어갈 수 있다는 뜻이죠. 실제로 신경과학 연구에 따르면 고스트레스 실험 환경에서 최대치의 EEG 변화가 의자 사용 5분에서 10분 사이에 나타났다고 합니다. 명상이 어렵다고 호소하는 현대인에게는 너무나도 필요한 물건인 셈입니다.

정리하자면, 아이오라는 의자라는 형식을 빌린 일종의 의식 상태 변환 장치에 가깝습니다. 그저 그 위에 5분만 앉아 있으면 뇌가 알아서 다른 모드로 전환된다는 거죠. 전기장치가 달리지 않은, 단순 의자가 가구라는 카테고리를 벗어나 웰니스 디바이스로 진화한 첫 사례일지도 모릅니다. 슈퍼리치들이 이런 의자에 눈을 돌리는 건 어쩌면 너무나 당연한 일이겠죠.

CHAIR 03 . COCKPIT

폴트로나 프라우 - 콕핏

▲폴트로나 프라우의 콕핏 의자. (출처=Poltrona Frau SNS)
▲폴트로나 프라우의 콕핏 의자. (출처=Poltrona Frau SNS)

이 의자는 사실 두 거장의 만남에서 시작됐습니다. 한쪽은 모두가 알고 있는 그 이름, 페라리. 다른 한쪽은 이탈리아 가죽 공예의 살아 있는 전설로 불리는 폴트로나 프라우입니다. 사실 폴트로나 프라우는 1980년대부터 페라리 차량 내부의 인테리어를 책임져온 오랜 파트너입니다. 이 두 회사가 단순히 자동차 시트를 넘어서, 처음으로 함께 만든 의자가 바로 콕핏입니다.

탄생 배경도 꽤 의미가 깊습니다. 콕핏은 페라리 디자인 센터가 디자인한 사상 최초의 오피스 체어로, 페라리 창립 70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2017년에 공개되었습니다. 두 브랜드의 정체성이 결합된 현대적인 하이브리드 작품으로 기획되었죠. 페라리 입장에서는 70년이라는 자신들의 역사에 보내는 일종의 헌사였던 셈입니다. 그래서 이 의자는 단순한 의자라기보다, 페라리라는 브랜드 자체를 사무실로 옮겨오는 매개체에 가깝습니다.

디자인을 책임진 인물도 보통 사람이 아닙니다. 콕핏의 외형은 페라리 디자인 센터의 수장인 플라비오 만조니가 직접 진두지휘했는데, 그는 라페라리 아페르타, GTC4 루쏘, 812 슈퍼패스트 같은 최근의 페라리 명작들을 모두 디자인한 인물입니다. 다시 말해, 수억 원대 페라리 슈퍼카의 라인을 그리던 손이 그대로 의자의 곡선을 그렸다는 뜻이죠. 그래서 의자임에도 불구하고 어딘가 자동차 같은 분위기가 강하게 풍깁니다. 등받이의 각도, 시트의 윤곽, 옆구리를 감싸는 라인까지 모두 페라리의 DNA가 살아 있습니다.

페라리를 옮겨오다

이 의자가 진짜로 페라리스러운 이유는 소재와 기계 부품에 있습니다. 콕핏의 외부 셸은 카본 또는 알루텍스라는 알루미늄 유리섬유 소재로 만들어지는데, 이는 실제 페라리 슈퍼카에 사용되는 것과 동일한 소재입니다. 시트 한가운데를 가로지르는 띠 모양 디테일은 레이싱 시트에서 그대로 가져왔고, 의자 아래에 달린 회전 장치는 페라리의 스티어링 휠과 동일한 디자인 요소와 기계 부품을 사용합니다.

콕핏은 두 가지 버전으로 출시됩니다. 하나는 프레지덴트, 다른 하나는 이그제큐티브입니다. 프레지덴트가 약 1만800파운드, 이그제큐티브가 약 8400파운드부터 시작하니, 한화로는 대략 1,500만원에서 2,000만원 사이를 오가는 셈입니다.

흥미로운 건 이 의자가 단순히 비싼 가격만으로 진입 장벽을 만들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콕핏은 페라리 매장이 아니라 폴트로나 프라우 매장에서 판매되지만, 그렇다고 누구나 쉽게 살 수 있는 물건은 아닙니다. 먼저 고객이 자격 심사를 통과해야하고, 납품까지는 상당한 시간이 걸리는데다가, 컬러와 가죽, 마감의 모든 옵션을 직접 고르는 비스포크 방식으로 진행되기 때문에 쉽게 구매할 수는 없습니다. 이 모든 과정 자체가 페라리라는 브랜드의 경험을 그대로 옮겨놓은 셈이죠.

정리하자면, 폴트로나 프라우 콕핏은 단순한 사무용 의자가 아닙니다. 이건 페라리 70주년이라는 한 시대를 기념하는 작품이자, 슈퍼카의 운전석을 그대로 사무실로 옮겨오고 싶은 사람들을 위한 매우 사치스러운 답안지입니다. 회의를 하든, 메일을 쓰든, 그저 책상 앞에 앉아 있든, 이 의자에 앉아 있는 한 사용자는 언제나 페라리의 운전석에 앉아 있는 셈입니다. 자동차 한 대 값을 지불하고 의자 하나를 산다는 것이 사치처럼 들릴지 모르지만, 페라리를, 또는 자동차를 사랑하는 사람들에게는 어쩌면 이만큼 합리적인 소비도 없을 겁니다.

CHAIR 04 . PP502 SWIVEL

PP 뫼블러 - 한스 웨그너 PP502 스위블

▲PP뫼블러의 PP502 스위블 의자. (사진제공=PP mobler)
▲PP뫼블러의 PP502 스위블 의자. (사진제공=PP mobler)

한스 J. 웨그너. 덴마크 가구 디자이너 중에서도 가장 창의적이고 혁신적이며 다작한 인물로 평가받는 그는, 평생 동안 거의 500개에 달하는 의자를 디자인해 의자의 거장이라는 별명까지 얻었습니다. 그가 남긴 수많은 의자 중에서도 PP502 스위블 체어는 가장 야심차고, 가장 만들기 어렵고, 그리고 가장 적게 생산된 작품에 속합니다.

의학 박사와 디자이너

이 의자가 탄생한 사연은 꽤 흥미롭습니다. 1955년, 의사이자 의학 박사이며 교수였던 에길 스노라손이라는 인물이 덴마크 디자인과 가구 업계 전체를 향해 인체공학을 너무 등한시한다고 신랄하게 비판한 일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비판 속에서 스노라손은 한 가지 예외를 인정했습니다. 한스 웨그너의 카우 혼 체어만큼은 인체공학적으로 올바르게 만들어진 의자라고 콕 집어 칭찬한 겁니다. 두 명의 열정적인 전문가는 그 일을 계기로 깊은 대화를 나누게 되었고, 그 대화의 결과물로 탄생한 것이 바로 이 PP502 스위블 체어였습니다. 사용자의 허리 아래쪽을 단단하게 받쳐주기 위해 등받이에 묵직한 솔리드 원목을 적용한 것도 그 대화에서 나온 아이디어였다고 합니다.

이 의자의 가장 상징적인 부분은 등받이 위쪽을 가로지르는 톱 레일입니다. 팔걸이와 등받이를 하나로 연결하는 이 부분은 솔리드 원목으로 만들어지는데, 마치 프로펠러처럼 비틀린 형태로 깎여 있습니다. 나머지 프레임과 분리된 채, 인체공학적으로 가능한 한계 지점까지 정교하게 다듬어져 완성되죠. 이 한 조각의 나무를 만들기 위해 들어가는 정성은 거의 비현실적인 수준입니다. PP502에 들어가는 나무는 일정한 크기를 요구하기 때문에 적어도 150년 이상 자란 거목에서 잘라내야만 합니다. 잘라낸 나무는 곧바로 사용되지 않고, 나무 안의 수분이 6퍼센트 이하로 떨어질 때까지 최대 2년 동안 건조됩니다. 의자라는 사물에 이 정도의 시간을 쏟는다는 것 자체가 이 브랜드의 철학을 그대로 보여줍니다.

PP502는 처음부터 산업적인 대량 생산을 염두에 두지 않고 만들어진 의자입니다. 웨그너는 이 의자를 비용을 줄이기 위한 산업적 생산 방식이 아니라, 덴마크 장인의 손으로 직접 제작되어야 한다고 못 박았습니다. 이 의자는 목공, 가죽 장인, 그리고 대장장이 모두에게 엄청난 도전을 안깁니다. 어떤 부분에서도 타협할 수 없는 시간 집약적인 작업이 필요하기 때문이죠. 그래서 이 의자는 한화로 약 2000만원이 넘는 가격을 자랑합니다. 웨그너 본인은 이 의자에 대해 이렇게 말한 적이 있습니다. "이건 사장님을 위한 의자다. 아니면 비서를 위한 거고. 아니, 비서가 쓰기엔 너무 비싸다." 농담처럼 들리지만, 이 한 마디 안에 PP502의 모든 것이 들어 있습니다.

오리지널 PP502는 1955년 요하네스 한센 가구공방에서 처음 생산되었지만, 한센 공방이 문을 닫으면서 한동안 자취를 감추었다가 1991년에 PP 뫼블러가 다시 생산을 이어받기 시작했습니다. PP 뫼블러는 지금도 웨그너의 모든 의자를 주문 제작 방식으로 만드는데, 한 점 한 점이 모두 마스터 장인의 손을 거쳐 완성됩니다. 단순히 옛날 디자인을 복각하는 게 아니라, 웨그너가 살아 있을 때 직접 협업하며 다듬었던 그 제작 방식을 그대로 이어가고 있는 셈이죠.

PP502가 가진 진짜 매력은 화려함이 아니라 정반대의 정서에 있습니다. 그저 150년 자란 나무 한 조각과, 그것을 깎은 장인 한 사람의 손과, 70년 전 의자의 거장이 그렸던 한 장의 도면이 있을 뿐이죠. 그래서 이 의자는 조용한 럭셔리, 흔히 말하는 올드 머니의 정서를 가장 잘 보여주는 물건으로 꼽힙니다. 떠들썩하게 자랑할 일은 없지만, 아는 사람이 보면 단번에 알아보는, 그런 종류의 사치입니다. 무엇보다 PP502는 관리만 잘하면 100년을 너끈히 버티는 의자입니다. 자식에게, 그리고 또 그 자식에게 물려줄 수 있는, 하이엔드 유산입니다.

EPILOGUE

의자의 존재

▲(사진=AI 생성)
▲(사진=AI 생성)

학창 시절, 교실에서 장난을 치다 걸려 '투명의자' 기합을 받아본 경험이 있으신가요. 이름만 투명의자일 뿐, 실제로는 허공에 몸을 띄운 채 진짜 의자에 앉은 듯한 자세를 억지로 유지해야 하는 고통스럽고도 우스꽝스러운 벌이었습니다. 이 자세로 1분만 지나도 허벅지가 타들어 가는 듯한 고통이 밀려옵니다.

가만히 생각해 보면 인간의 기본 자세 중 서거나 눕는 행위는 딱히 어떤 외부의 사물을 필요로 하지 않습니다. 두 발로 꼿꼿이 땅을 딛고 서면 그만이고, 피곤하면 그대로 바닥에 누워버리면 되니까요. 하지만 온전히 앉기 위해서는 반드시 내 체중을 실을 수 있는, 의자 역할을 해줄 무언가가 필요합니다.

유독 앉는 행위에만 보조적인 사물이 필요한 이유는 무엇일까요. 그것이 바로 서 있는 것도, 누워있는 것도 아닌 불안정한 중간 지대의 행위이기 때문입니다. 이는 어쩌면 우리 인간의 본질과도 많이 닮아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스스로 완벽하게 자립할 수도, 그렇다고 완전히 집단에 모든 걸 맡기고 살아갈 수도 없는 불완전한 존재. 양 극단이 아닌 그 중간 어디쯤에서 살아가는 우리는, 필연적으로 누군가의 지지와 도움이 있어야만 살아갈 수 있습니다.

수천만 원을 호가하는 의자가 존재한다는 사실이 오늘 우리에게 던지는 메시지는 의외로 단순합니다. 우리가 일상에서 잠시나마 다리를 뻗고 편안함을 느낄 수 있는 것은, 오랜 시간 내 무게를 묵묵히 버텨주는 어떤 중요한 존재가 있다는 것. 보이지 않는 곳에서 우리의 안전한 일상을 지켜주는 군인, 경찰, 소방관 같은 분들부터 언제나 기댈 곳이 되어주는 부모님과 친구들, 그리고 삶의 굽이마다 만났던 수많은 조력자들까지. 우리는 결국 서로가 서로에게 기꺼이 의자가 되어주며 이 불완전한 세상을 함께 버텨왔습니다.

현대 과학기술과 장인정신이 깃든 하이엔드 의자의 가치도 훌륭하지만, 우리 삶에서 정말로 대체할 수 없는 것은 내 삶을 지탱해 주는 이 견고한 관계일 것입니다.

지금 떠오른 당신의 의자는 누구인가요?

이번 주도 고생 많으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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