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국과 이란이 '2주 휴전'에 합의했지만, 호르무즈 해협은 여전히 굳게 닫혀 있습니다. 전쟁이 잠시 멈췄으니 막혔던 길이 조만간 풀릴 것이라 생각했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았죠. 이란은 해협을 완전히 열어두는 대신 "승인을 받은 배만 돈을 내고 지나가라"는 식의 허가제와 통행료를 요구하는 목소리를 높여가고 있습니다. 바다 한 가운데 사실상 톨게이트가 생긴 것입니다.

이란이 호르무즈 해협의 문을 굳게 닫은 건 단순한 봉쇄라기보다 '관리된 통과'에 가깝습니다. 8일(현지시간) 미국 월스트리트저널(WSJ) 등의 보도에 따르면 이란은 하루 통과 선박을 12척 안팎으로 제한하고, 선박은 이슬람혁명수비대(IRGC)와 사전 조율을 거쳐야 합니다. 그냥 지나가면 되는 게 아니라, 먼저 허락을 받고 조건도 맞춰야 한다는 뜻입니다.
비용도 만만치 않습니다. 통행료는 중국 위안화나 암호화폐로 받는 방식이 거론됐고, 200만 배럴을 실을 수 있는 초대형 유조선은 한 번 지날 때 최대 200만달러, 한화 약 30억원을 내야 할 수 있다는 해운업계 전언도 나왔습니다. 휴전이 됐다고 해서 곧바로 배들이 다시 오가고 있는 것도 아닙니다. 실제 통항량은 휴전 뒤에도 크게 회복되지 않아, 9일 로이터통신은 최근 24시간 동안 해협을 지난 선박이 7척에 그쳤다고 전했습니다. 한국 정부가 파악한 한국 관련 선박도 26척이 해협 일대에 묶여 있습니다.
통과 방식도 복잡합니다. 외신을 종합하면 자국 항만으로 향하는 선박이나 우호국 선박은 제한적으로 통과시키고, 비적대국 선박에는 승인 절차와 통행료를 요구하며, 미국·이스라엘 또는 그 우방과 연결된 선박은 통항이 막히는 방식입니다. 앞서 카타르 위성방송 알자지라는 이란이 국가를 적대국·중립국·우호국 등 3개 그룹으로 나눠 해협 통과 여부 등에 차등을 줄 가능성이 있다고 보고했습니다. WSJ도 9일 해협을 지난 선박이 이란으로 가는 화물을 실은 건화물선·컨테이너선 8척뿐이었다고 전했습니다. 휴전은 했지만, 아무 배나 자유롭게 드나드는 상황은 아니라는 얘기입니다.

이란의 통행료 수취 선언이 논란이 된 건 호르무즈 해협이 수에즈 운하나 파나마 운하와 성격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수에즈와 파나마는 사람이 만든 인공 수로입니다. 그래서 운영 주체가 조약과 제도에 따라 통행료를 걷습니다. 하지만 호르무즈 해협, 말라카 해협 같은 곳은 자연적으로 형성된 해협입니다. 국제 항행에 쓰이는 바닷길이기 때문에, 유엔해양법협약(UNCLOS)은 선박의 통과통항권을 보장합니다. 쉽게 말해, 특정 나라가 마음대로 "여긴 내 바다니 돈 내고 지나가라"고 하기는 어렵다는 뜻입니다.
이 점은 국제기구도 분명히 짚고 있습니다. 9일 로이터 통신에 따르면 국제해사기구(IMO) 대변인도 "국제 해협을 통과할 때 통행료를 부과할 수 있는 국제 협정은 없다"며 "위험한 선례를 남길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한마디로 자연 해협에 연안국이 일방적으로 톨게이트를 세우는 것은 국제 해상 질서와 정면으로 부딪히는 문제입니다. 이번 사안을 두고 국제법 위반 논란이 커지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그런데도 이란이 이 카드를 쉽게 놓지 않는 이유는 결국 돈입니다. 이란 반관영 타스님 통신은 전쟁 전 하루 평균 140척이 호르무즈 해협을 지났다는 전제 아래 선박당 200만달러 수준의 통행료를 징수하면 연간 1000억달러, 한화 약 150조원 이상의 수입을 올릴 수 있다고 추산했습니다. 1000억달러는 이란의 명목 국내총생산(GDP)의 20∼25%에 달합니다. 아직 실제로 거둔 돈이 아니라 이란 측 추산이지만, 왜 이란이 해협 통제를 단순한 협상 카드가 아니라 새로운 수입원으로 보려 하는지는 잘 보여줍니다.

미국의 메시지도 하루 사이 크게 엇갈렸습니다. 트럼프 대통령은 8일 ABC 기자와 통화에서 미국과 이란이 호르무즈 통행료를 함께 걷는 '합작 사업'을 생각하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미국이 이란의 통행료 구상을 막기는커녕, 오히려 같이 걷는 방안까지 거론한 셈입니다.
하지만 같은 날 캐럴라인 레빗 백악관 대변인은 이 계획에 대해 "대통령이 제안한 아이디어로, 향후 2주간 계속 논의될 것"이라면서도 "대통령의 당면한 최우선 과제는 통행료나 다른 것과 관계없이, 아무 제한 없는 해협 재개통"이라고 밝혔습니다. 그리고 다음날 트럼프 대통령은 트루스소셜에 올린 글에서 "이란이 해협을 통과하는 유조선에 대해 통행료를 부과하고 있다는 보도가 있다"며 "통행료를 받고 있다면 지금 중단하라"고 압박했습니다. 하루 전에는 공동 징수를 말하고, 하루 뒤에는 중단을 요구한 것입니다. 이는 이란의 독자적인 통행료 징수 시도는 물론, 호르무즈 해협에서 유조선 통과까지 제한한 데 대한 불만을 드러낸 것으로 보입니다.
한국이 받게 될 충격도 작지 않습니다. 한국은 원유의 70.7%, 액화천연가스(LNG)의 20.4%를 중동에서 들여오고, 중동산 원유의 95% 이상이 호르무즈 해협을 통과합니다. 다시 말해 호르무즈 해협이 막히거나, 통과 비용이 붙거나, 운항이 늦어지면 한국 에너지 수급도 바로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습니다.
배럴당 1달러의 통행료가 제도화되면 원유만 놓고 봐도 연간 1조원 안팎의 추가 부담이 생길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옵니다. 여기에 전쟁보험과 해상 운임 급등, LNG·나프타 같은 다른 에너지와 원료 비용까지 겹치면 부담은 수조원대로 불어날 수 있습니다. 선박의 전쟁보험료가 전쟁 전보다 10배 가까이 뛸 수 있다는 전망까지 나오는 만큼, 이란의 '바다 톨게이트'는 해운업계만의 문제가 아닙니다. 한국의 에너지 수입 비용을 밀어 올리고, 그 여파가 정유·석유화학·발전·물류를 거쳐 물가 전반으로 번질 수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