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장에서 ‘복합문화공간’으로… 도심형 전통시장의 넥스트 [영동시장 사람들➄]

입력 2026-02-23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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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속도와 효율만이 미덕인 차가운 도시 강남. 그 화려한 마천루의 그림자 아래, 여전히 뚝배기 끓는 소리와 사람들의 웅성거림이 멈추지 않는 곳이 있습니다. 바로 영동전통시장입니다. 50년 전, 주택가 담벼락에 기대어 서로의 고단한 끼니를 챙기던 '강남의 부엌'은 , 이제 퇴근길 직장인과 호기심 어린 청년들이 어깨를 부딪치며 건배를 나누는 '소통의 광장'이 되었습니다. 비록 세상은 클릭 한 번으로 모든 것이 배달되는 시대로 변했지만, 이곳에는 여전히 모니터 너머로는 느낄 수 없는 투박한 정과 따뜻한 눈맞춤이 살아 숨 쉽니다. 본 기획은 단순히 물건을 파는 시장이 아니라, 상인이 스승이 되고 손님이 친구가 되는 '관계의 기적'을 조명합니다. 삭막한 도심 속, 우리가 끝내 지켜야 할 것은 낡은 좌판이 아니라 그 위에 켜켜이 쌓인 '사람의 온기'임을 이야기하려 합니다.

▲영동전통시장에서 야시장이 열리고 있다. (사진제공=강남구)
▲영동전통시장에서 야시장이 열리고 있다. (사진제공=강남구)

전통시장은 지금 갈림길에 서 있다. 과거의 향수만으로는 생존할 수 없고, 대형마트를 흉내 내서는 경쟁이 되지 않는다. 강남 영동전통시장의 실험은 우리에게 하나의 질문을 던진다.

“모든 것을 온라인으로 살 수 있는 시대에, 사람들은 왜 시장에 가야 하는가?”

전문가들은 그 답을 ‘오프라인만의 대체 불가능한 경험’에서 찾는다. 시장은 더 이상 물건만 파는 공간이 아니라, 도시의 문화를 생산하고 소비하는 ‘복합문화공간’으로 진화해야 한다는 것이다.

거래가 아닌 ‘플랫폼’으로… “와야 할 이유를 만들어라”

▲김누리 라로즈스쿨학원 원장이 서울 강남구 라로즈스쿨학원에서 꽃꽂이 자격증반 수업을 하고 있다. 조현호 기자 hyunho@ (이투데이DB)
▲김누리 라로즈스쿨학원 원장이 서울 강남구 라로즈스쿨학원에서 꽃꽂이 자격증반 수업을 하고 있다. 조현호 기자 hyunho@ (이투데이DB)

조춘한 경기과학기술대 패션디자인과 교수(유통연구소장)는 전통시장의 정의를 명확히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조 교수는 “전통시장은 물건을 사고파는 거래 중심의 공간이 아니라, 사람들이 만나고 소통하며 시간을 보내던 플랫폼이었다”며 “거래는 그 안에 포함된 여러 기능 중 하나였을 뿐”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온라인과 새벽배송이 신선식품까지 대체하는 상황에서 전통시장이 거래 경쟁력으로 우위를 점하기는 현실적으로 어렵다”며 “대형마트나 온라인과는 다른, 유니크한 이유가 있어야 사람들이 시장을 찾는다”고 말했다.

영동전통시장의 ‘영동클래스’는 이러한 변화 방향을 보여주는 사례다. 와인, 꽃, 떡 등 먹거리와 체험을 매개로 상인과 소비자가 만나고, 그 과정 자체가 시장을 찾는 목적이 된다. 조 교수는 “앞으로의 전통시장은 사람들이 시간을 쓰고 싶어 하는 엔터테인먼트적 요소를 갖춘 플랫폼으로 기능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공생’의 생태계… 식당이 살아야 소매가 산다

▲서울 강남구 영동전통시장 내 한식뷔페와 수산물 가게 모습. (박상군 인턴 기자 kopsg@)
▲서울 강남구 영동전통시장 내 한식뷔페와 수산물 가게 모습. (박상군 인턴 기자 kopsg@)

영동전통시장의 또 다른 미래 모델은 ‘공생’이다. 유미희 영동전통시장 매니저는 “도소매 점포들은 지나가는 손님보다 인근 식당에 납품하는 비중이 크다”며 “식당이 잘돼야 정육점이나 채소가게도 함께 산다”고 설명했다.

먹자골목의 활성화가 곧 시장 전체의 활성화로 이어지는 구조다. 이는 시장을 단순한 ‘장 보는 공간’으로 한정 짓기보다, 배달과 외식업까지 아우르는 거대한 ‘푸드 플랫폼’으로 확장할 때 생존 가능성이 높아진다는 점을 보여준다.

획일화된 규제 넘어 ‘다양성’의 회복

▲서울 강남구 영동전통시장 입구에 슈퍼마트와 종합생활용품점이 위치해 있다. (박상군 인턴 기자 kopsg@)
▲서울 강남구 영동전통시장 입구에 슈퍼마트와 종합생활용품점이 위치해 있다. (박상군 인턴 기자 kopsg@)

정책의 방향 전환도 필요하다. 조 교수는 “오프라인 상권의 핵심 경쟁력은 ‘버라이어티(다양성)’”라며 “대형마트를 규제하는 방식보다 소비자의 선택권을 넓히는 정책이 중요하다”고 지적했다. 다만 “동일 업종이 인접해 과도하게 난립하지 않도록, 최소한의 조정은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온누리상품권 정책 역시 재설계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조 교수는 “전통시장으로 사용처를 한정하는 현재 방식은 오히려 더 취약한 단독 점포나 소규모 오프라인 상인을 포괄하지 못한다”며 “전통시장이라는 구역이 아니라, 매출 규모를 기준으로 오프라인 업종 전반에 적용해야 정책 효과가 살아난다”고 강조했다. 예컨대 연 매출 5억 원, 10억 원 미만 등 명확한 기준을 두고 범위를 넓히자는 제안이다.

‘획일적인 시장’이 아니라, ‘가고 싶은 매력적인 시장’으로

▲서울 강남구 영동전통시장. (박상군 인턴 기자 kopsg@)
▲서울 강남구 영동전통시장. (박상군 인턴 기자 kopsg@)

결국 전통시장의 미래는 ‘매력적인 오프라인 공간’으로 거듭날 수 있느냐에 달려 있다. 이은희 인하대 소비자학과 명예교수는 “아름답다는 것이 백화점처럼 만드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며 “각 시장이 가진 고유한 감성과 전통을 살리면서도, 가고 싶고 머물고 싶은 환경을 만드는 것이 지자체의 역할”이라고 말했다. 이어 “전통시장들이 현대화라는 이름으로 획일적인 지붕과 간판으로 바뀌며 오히려 매력을 잃은 경우도 많다”며 “요즘 소비자는 감성뿐 아니라 미감까지 함께 본다”고 지적했다.

다만 이러한 변화가 모든 시장에 동일하게 적용될 수는 없다. 박승배 서울과학기술대 시각디자인전공 교수는 “관광형 등 목적성이 분명한 일부 시장을 중심으로 선택과 집중이 불가피하다”며 “없어질 곳은 자연스럽게 정리하고, 살릴 곳은 확실히 살리는 전략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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