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간호사의 협박에도 할머니는 눈썹 하나 까딱하지 않고 맞받아친다. 한숨을 쉬는 간호사와 버티는 할머니, 팽팽한 긴장감이 고조에 달할 즈음 딸이 병실 문을 열고 들어왔고, 눈앞에 펼쳐진 익숙한 광경에 그녀는 오열하며 무너져 내렸다.
“도대체 왜 주사를 안 맞겠다는 건데, 왜요? 엄만 날 왜 이렇게 힘들게 해요.” 딸의 눈물에 잔뜩 움츠렸던 할머니의 팔은 슬그머니 펴졌고 그제야 치료를 시작할 수 있었다. 시장에서 장사하다 연락을 받고 한걸음에 달려온 딸의 앞엔 얼룩이 묻고 음식 냄새가 밴 앞치마가 걸려 있었다.
난치에 가까운 중증 호흡기 질환으로 병원을 집 삼아 치료를 반복해야 하는 할머니, 매번 의사인 내 앞에서 ”내가 얼른 죽어야 할텐데”를 반복하는 그분은 딸에게 피해를 주고 있다는 생각에 치료를 거부하기 일쑤였다. 그리고 그 마음을 누구보다 더 잘 알기에 속상해하는 딸. 질병이 주는 또 다른 아픔과 고통 속에서 우린 아무 말도 하지 못한 채 한참을 서 있을 수밖에 없었다.
질병은 참 모질다. 한창 바쁠 때, 잘 나갈 때 발목을 붙잡기도 하고 또 가장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심적, 육체적 그리고 경제적 고통을 안겨준다. 더구나 병이 난치에 가깝거나 회복까지 오랜 시간이 필요한 경우엔 질병으로 인해 겪는 고통뿐 아니라 심적인 아픔도 함께 짊어진 채 병마와 싸워나가야만 한다. 국가나 사회적 도움이 절실할 때조차 그 제한적 혜택 때문에 오롯이 그 몫은 환자와 가족들에게 돌아가고, 그것이 결국 사랑하는 사람들 간에 틈이 생기게도 또 돌이킬 수 없는 결과를 만들어 내기도 한다.
의사지만 개입할 수 없는 수많은 아픔 속에서 최선은 무엇일까를 늘 고민해 보지만 명확한 답을 얻을 수는 없었다. 그저 그들이 말하지 못하는 서툰 표현 속에 감춰진 고통과 아픔을 이해하기 위해 노력하고 좀 더 시간과 정성을 쏟을 수밖에는. 오늘도 난 질병이란 뿌리가 키워낸 수많은 얽히고설킨 또 다른 아픔의 덩굴 속을 걷고 또 걸으며 그 해답을 묻고 있다. 박관석 보령신제일병원 원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