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호사 비밀유지권 생겼다지만…예외 조항 범위에 실효성은 ‘글쎄’

입력 2026-02-03 14: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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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사·기업 자문 전반에 미칠 영향 주목
권리 명문화에도 예외 조항은 과제
“적용 기준, 향후 판례 통해 구체화될 듯”

▲29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본회의에서 반도체산업 경쟁력 강화 및 지원에 관한 특별법안이 가결되고 있다. (뉴시스)
▲29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본회의에서 반도체산업 경쟁력 강화 및 지원에 관한 특별법안이 가결되고 있다. (뉴시스)

변호사와 의뢰인 간 법률자문 내용을 보호하는 ‘비밀유지권’ 도입이 가시화되면서 수사·재판 절차에 적지 않은 변화가 예상된다. 그동안 비밀유지 ‘의무’만 있었던 변호사에게 비밀을 지킬 ‘권리’가 생기면서다. 다만 법조계에서는 예외 조항 범위에 따라 실무에서 체감할 변화는 제한적일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3일 법조계에 따르면 변호사와 의뢰인 간 비밀유지권(ACP)을 도입하는 내용의 변호사법 일부 개정안이 지난달 29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개정안은 변호사와 의뢰인 사이에서 법률 조력을 목적으로 이루어진 의사교환 내용과 변호사가 수임한 사건의 소송·수사·조사를 위해 작성한 서류·자료를 공개하지 않을 수 있도록 규정했다.

이번 개정으로 변호사는 수사기관의 압수수색이나 자료 제출 요구 과정에서 해당 자료가 비밀유지권 보호 대상에 해당할 경우 공개를 거부할 수 있는 법적 근거를 갖게 됐다. 그동안 변호사법에는 비밀유지 의무만 규정돼 있어, 수사 과정에서 변호사 사무실이나 전자자료에 대한 압수·확보를 제지할 명확한 근거가 없다는 지적이 이어져 왔다.

로펌 압수수색을 둘러싼 방어권 침해 논란도 반복돼 왔다. 2022년 검찰은 ‘대장동 의혹’ 수사 과정에서 김만배 씨를 대리한 법무법인 태평양을 압수수색했고, 당시 법조계에서는 수사기관이 변호인의 변론 전략을 들여다볼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됐다.

이어 2023년에는 금융감독원 자본시장특별사법경찰이 SM엔터테인먼트 시세조종 의혹 수사 과정에서 법무법인 율촌을 압수수색해 카카오 측 법률자문 자료를 확보했다. 해당 자료가 이후 배재현 전 카카오 투자총괄대표의 시세조종 혐의 공판에서 증거로 활용되면서 기업들 사이에서는 “로펌에 솔직한 자문을 구하기 무섭다”는 우려까지 나왔다.

개정안이 시행되면 수사기관의 압수수색과 자료 확보 과정에서 변호사 측의 대응 범위가 넓어질 것으로 보인다. 변호사나 의뢰인이 보호 대상임을 주장할 경우 압수 대상에서 제외하거나 법원 판단을 거치는 방식 등이 검토될 수 있다.

기업 자문 실무에서도 변화가 예상된다. 기업이 보다 안정적으로 법률자문을 활용할 수 있을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서울지방변호사회)
(서울지방변호사회)

법조계는 개정안 통과로 헌법상 보장된 ‘변호인의 조력을 받을 권리’가 강화됐다고 평가한다. 대한변호사협회는 “대한민국 사법 역사에 있어 인권 보호와 방어권 보장의 수준을 한 단계 격상시킨 중대한 행보”라고 밝혔다.

서울지방변호사회도 “우리나라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가운데 유일하게 변호사 비밀유지권을 도입하지 않은 국가로 남아 있었으나, 이번 개정안 통과로 사법 체계의 국제적 신뢰를 확보하고 변호사와 의뢰인 간 의사 교환 내용과 자료에 대한 비밀성이 명확히 보장되게 됐다”고 평가했다.

다만 제도 도입의 상징성에도 불구하고, 현장에서 체감할 변화는 제한적일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곽준호 법무법인 청 변호사는 “비밀유지권 도입은 선언적 의미에서는 의미가 있고 취지도 좋다”면서도 “현재 개정안 예외 조항의 범위가 상당히 넓게 설정돼 있어 실제 작동 방식은 지금과 큰 차이가 없을 수 있다”고 지적했다.

특히 의뢰인의 승낙이 있을 경우 비밀유지권이 제한되는 구조와 증거인멸 관여를 예외 사유로 둔 점을 문제로 꼽았다. 그는 “비밀유지권은 단순히 개인 간 동의 문제를 넘어 공익적 성격이 강한 제도”라며 “수사기관에서 의뢰인을 설득해 동의를 받아내는 상황도 충분히 예상할 수 있는데, 이런 구조는 제도 취지와 맞지 않는다”고 말했다.

증거인멸 관여에 대해서도 “지금도 수사기관이 아무 때나 변호사 사무실을 압수수색하는 것은 아니다”라며 “예외 조항을 넓게 두면 수사 편의적 해석이 개입될 여지가 있다”고 우려했다.

장영수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명예교수도 “미국의 경우 변호사가 증거인멸에 앞장서는 사례도 있다“며 “사소한 증거인멸 상황까지 모두 예외로 두게 되면 비밀유지권이 형해화될 수도 있다”고 말했다.

장 교수는 비밀유지권은 원칙적으로 인정하되, 국가적·사회적으로 중대한 법익을 침해하는 사안에서만 예외를 인정하는 방식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결국 제도가 현장에 안착하기까지는 해석과 운용을 둘러싼 논의가 불가피할 전망이다. 장 교수는 “비밀유지권 주장과 범죄 관련성 판단이 충돌할 경우 법원이 기준을 제시하게 될 것”이라며 “초기 판례를 통해 기준이 구체화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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