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공정’ HBM 경쟁 핵심축 부상
청주, 후공정 전용 단계적 재편
설비 활용 효율·공정 연결성 높여

인공지능(AI) 시대 고대역폭메모리(HBM) 경쟁은 ‘얼마나 미세하게 만들었느냐’보다 ‘얼마나 안정적으로 쌓아내느냐’로 옮겨가고 있다. AI 메모리 수요가 폭증하면서 패키징과 테스트(P&T)를 포함한 후공정이 공급 능력과 수율을 좌우하는 핵심 변수로 부상했다. SK하이닉스는 이 영역을 전면 재편하며 HBM 주도권을 구조적으로 굳히는 전략에 나섰다.
13일 세계반도체무역통계기구(WSTS)에 따르면 올해 글로벌 반도체 시장은 전년 대비 25% 이상 성장해 9750억 달러(약 1437억 원) 규모에 이를 것으로 전망된다. 시장에서는 HBM을 축으로 한 AI 메모리 부문이 전체 성장세를 주도할 것으로 보고 있으며 일부 전망에서는 2028년 HBM 시장 규모가 2024년 전체 D램 시장을 넘어설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뱅크오브아메리카(BofA)는 올해 HBM 시장 규모를 전년 대비 58% 증가한 546억 달러(약 80조5000억 원)로 추산했다.
AI 시대를 맞아 반도체 투자 환경도 근본적으로 바뀌었다. 공정 미세화와 AI 전용 메모리 확대로 생산시설 투자는 대형화·장기화되는 추세다. 클린룸 1만 평 기준 투자비는 2019년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 발표 당시 약 7조5000억원에서 2025년 10월 클린룸을 연 청주 M15X에서는 20조 원 수준으로 커졌다. 투자 규모가 확대된 반면 회수 기간은 길어지고 경기 변동성까지 겹치면서 설비 효율을 극대화하는 공정 재편의 중요성이 부각되고 있다.
이런 환경에서 후공정은 단순한 ‘마무리 단계’를 넘어 HBM 경쟁력을 좌우하는 핵심 축으로 재평가받고 있다. 여러 개의 D램을 수직으로 쌓는 HBM 구조상 패키징 과정에서의 열·전력 관리, 미세 결함 제어, 테스트 자동화 수준이 수율과 직결된다. 동일한 전공정 기술을 확보하더라도 후공정 처리 속도와 안정성에 따라 실제 출하 가능한 물량에서 격차가 벌어진다는 게 업계의 공통된 시각이다.
SK하이닉스는 이에 맞춰 P&T 거점을 단계적으로 재편해 왔다. 현재 P&T1·4·5는 이천에, P&T2·3·6은 청주에 있다. 특히 청주 P&T6는 기존 SK하이닉스시스템IC 공장이었던 M8을 개조해 구축 중인 후공정 전용 기지로 HBM 중심 생산 체계로의 전환을 상징하는 사례로 꼽힌다.
이번에 추진되는 P&T7 역시 같은 맥락에 있다. 청주 부지 내 노후 건물을 철거해 후공정 전용 시설로 전환하는 방식으로 선단 D램이나 낸드플래시 생산에는 한계가 있었던 공간을 HBM 대응 거점으로 재배치했다. 예상보다 빠르게 늘어난 HBM 수요에 맞춰 자산 활용 전략을 조정하고 전공정과 후공정을 인접 배치해 물류와 운영 효율을 끌어올리겠다는 판단이다.
후공정 재편은 제품 세대 전환과도 맞물린다. 올해 메모리 시장에서는 HBM3E가 주력으로 활용되는 가운데 차세대 HBM4로의 이행이 병행될 전망이다. 업계에서는 두 세대의 제품을 동시에 안정적으로 소화하려면 충분한 후공정 캐파와 기술 축적이 필수적이라고 본다. SK하이닉스가 후공정 투자에 속도를 내는 배경도 여기에 있다.
반도체 업계 관계자는 “AI 시대에는 투자 규모가 커질수록 설비 활용 효율과 공정 연결성이 중요해진다”며 “HBM은 특히 후공정에서의 경험과 누적된 양산 데이터가 경쟁사와의 격차를 만드는 영역”이라고 말했다. 이어 “후공정 재편은 단기 증설이 아니라 중장기 기술 리더십을 겨냥한 구조 조정으로 봐야 한다”고 덧붙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