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국 광역권에서 행정통합 논의가 동시다발적으로 재점화되고 있다. 광주·전남, 대전·충남에 이어 부산·경남까지 통합 찬성 여론이 과반을 넘어서면서, 행정통합은 더 이상 일부 정치인의 구상이나 실험적 담론이 아닌 현실적 선택지로 부상했다. 다만 세 지역의 출발선은 비슷하지만, 추진 동력과 난이도는 분명히 다르다.
세 지역이 행정통합 카드를 다시 꺼내 든 배경은 동일하다. 인구 감소, 산업 공동화, 수도권 집중이라는 구조적 위기다. 기존 광역자치단체 단위로는 국가 재정과 대형 산업 정책을 끌어오기 어렵다는 인식이 확산되면서, 더 큰 단위의 정치·행정적 협상력을 확보해야 한다는 공감대가 형성되고 있다.
이런 점에서 행정통합은 공격적 발전 전략이라기보다, 지역 소멸을 늦추기 위한 방어적 생존 전략에 가깝다.
광주·전남 통합은 정치적 결단이 출발점이다. 두 단체장은 통합을 지역 소멸 대응의 핵심 해법으로 제시하며 비교적 빠른 속도로 공론장을 확장하고 있다. 호남이라는 정서적 연대와 단일 생활권 인식 역시 추진력을 높이는 요인으로 작용한다.
다만 약점도 뚜렷하다. 권한 배분, 재정 구조, 행정 체계 개편에 대한 구체적 설계는 아직 초기 단계에 머물러 있다.
대전·충남은 정반대의 접근법을 택했다. 통합의 명분보다 '통합 이후 무엇이 달라지는가'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공동 연구용역과 실무협의체를 통해 단계적 통합 시나리오를 마련하고, 행정·재정 통합의 실익을 수치로 제시하려는 전략이다.
정치적 이벤트는 적지만 실패 가능성을 최소화하려는 신중한 행보다.
부산·경남 행정통합 공론화위원회는 5일 지난달 23일부터 29일까지 부산과 경남 지역 18세 이상 성인 4,047명을 대상으로 전화 면접 조사를 실시한 결과, 응답자의 53.6%가 ‘행정통합이 필요하다’고 답했다고 밝혔다. 반대하거나 불필요하다는 의견은 29.2%에 그쳤다.
찬성 비율은 2023년 조사 당시 35.6%보다 17.5%포인트 이상 급등했다. 지난해 9월 조사(36.3%)와 비교해도 큰 폭의 상승이다. 반면 반대 의견은 2023년 대비 20.4%포인트 줄었고, 직전 조사에서 과반에 육박했던 수치도 크게 낮아졌다.
지역별로는 부산의 찬성 비율이 55.6%로 경남(51.7%)보다 높았다. 다만 상승 폭은 경남이 18.2%포인트로 부산의 17.8%포인트를 소폭 웃돌았다. 행정통합을 불필요하다고 본 응답은 부산이 25.0%, 경남은 33.4%였다. 두 지역 모두 2023년 조사에 비해 뚜렷한 감소세를 보였다.
과거 메가시티 구상이 좌초되며 사실상 동력을 잃었던 논의가 다시 궤도에 올랐다는 의미다.
통합의 또 다른 변수는 정치 일정이다. 지방선거를 앞두고 통합 논의가 선거용 구호로 소비될 경우, 실질적 합의는 오히려 후퇴할 가능성이 있다. 반대로 중앙정부가 특별법 제정이나 재정 인센티브를 명확히 제시할 경우, 논의는 급물살을 탈 수 있다.
이재명 대통령의 공개적 격려 발언은 상징적 신호다. 그러나 말보다 중요한 것은 제도다. 특별자치단체 지위, 재정 특례, 중앙 권한 이양이 뒤따르지 않는다면 부산·경남 통합 역시 또 하나의 미완 구상에 그칠 가능성이 크다.
결국 지역 통합 논의의 종착점은 단순한 메가시티 구상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 메가시티가 인접 도시를 하나의 생활·경제권으로 묶는 개념이라면, 메갈로폴리스는 산업·교통·행정·재정 권한까지 포괄하는 초광역 자치권역을 의미한다.
단순한 협력체계를 넘어, 스스로 정책을 설계하고 집행할 수 있는 실질적 행정자치권이 전제돼야 한다.
그동안 국내 광역권 구상이 반복적으로 좌초된 이유도 여기에 있다. 외형적 통합에만 집중한 채 예산과 권한은 중앙정부에 묶여 있었기 때문이다. 이런 구조로는 인구 감소와 산업 쇠퇴라는 구조적 위기를 돌파하기 어렵다.
부산·경남 통합 역시 지도를 합치는 문제가 아니다. 항만·공항·산업단지·대학·연구기관을 하나의 전략 체계로 엮고, 이를 뒷받침할 재정·인사·산업 정책의 자율성을 확보할 수 있느냐가 관건이다. 다시 말해 ‘큰 도시’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강한 자치권을 가진 지역'을 설계하는 것이 핵심이다.
광주·전남, 대전·충남, 부산·경남으로 이어지는 행정통합 논의는 대한민국 지방자치의 다음 단계를 시험하는 과정이다. 메가시티라는 이름 아래 협력에 머물 것인지, 아니면 메갈로폴리스라는 실질적 자치 단위로 도약할 것인지는 각 지역의 선택에 달려 있다.
행정통합의 성패는 규모가 아니라, 그 안에 담길 권한과 비전에서 판가름 날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