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한상공회의소는 기업 활동과 연관성이 높은 12개 법률을 기준으로 제22대 국회 출범 이후 지난해 말까지 발의된 법안 1021건을 전수 조사한 결과, 기업 규모별 차등규제를 담은 법안이 149건에 달했다고 6일 밝혔다. 현행 법률에 이미 존재하는 343건의 규모별 차등규제에 더해 출범 19개월 만에 추가 규제가 대량으로 쏟아진 것이다.
조사 결과 발의 법안은 △기업이 일정 규모를 넘으면 의무와 책임을 추가로 부과하는 ‘규제 증가형’ △규모가 커질수록 각종 혜택을 줄이는 ‘혜택 축소형’으로 나뉘었다. 두 유형 모두 기업의 규모 확대와 성장을 억제하는 방향으로 작동한다는 점에서 공통된 한계를 안고 있다는 평가다.
총 94건의 규제 증가형 법안 중 상법이 65건으로 가장 많았다. 자산 2조 원 이상 기업에 전자주주총회 도입, 감사위원 분리선임 확대 등 추가 의무를 부과하는 내용이 집중됐다. 이 기준은 2000년 도입 이후 경제 규모와 물가가 크게 변했음에도 별도 검증 없이 반복 적용되고 있다는 점에서 ‘관행적 기준’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유통산업발전법(12건), 산업안전보건법(7건), 공정거래법(6건) 등에서도 규모 기준 규제가 광범위하게 확산된 것으로 나타났다. 대한상의는 특히 오프라인 대형 점포에만 의무휴업 등을 부과하는 방식이 소비 구조 변화와 괴리가 크다고 지적했다.
혜택 축소형 법안은 55건으로, 모두 조세특례제한법에 집중됐다. 연구개발(R&D)·시설투자 세액공제 등에서 중소·중견기업에만 혜택을 주거나 대기업의 공제율을 대폭 낮추는 구조가 대부분이다. 글로벌 기술 경쟁이 격화되는 상황에서 대규모 투자를 감당해야 하는 기업일수록 지원이 줄어드는 역설적 구조라는 비판이 제기된다.
대한상의는 이러한 제도 설계가 효율성과 전략성 측면에서 한계를 지닌다고 지적했다. 글로벌 기술 경쟁이 심화하는 상황에서 대규모 투자를 통해 해외 기업과 직접 경쟁해야 하는 주체는 대기업인데, 정작 세제 혜택은 제한적으로 적용되기 때문이다. 국내 기업 간 형평성에 초점을 맞춘 설계가 글로벌 경쟁 환경을 충분히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또한, 기업 규모를 기준으로 규제와 혜택을 기계적으로 구분하는 방식에서 벗어나 정책 목적과 산업 특성에 맞는 규제 체계로의 전환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미 존재하는 기준을 별다른 검증 없이 반복·확장하는 입법 관행을 지속할 경우, 기업의 성장을 억제하는 구조가 더욱 고착화할 수 있다는 우려다.
강석구 조사본부장은 “글로벌 기술 경쟁이 격화되는 상황에서 기업 규모를 기준으로 규제와 혜택을 나누는 방식은 더 이상 효과적인 정책 수단이 아니다”라며 “누적된 규모별 차등 규제를 전면 재점검하고, 성장과 혁신을 촉진하는 방향으로 제도 패러다임을 재설계해야 한다”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