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희선 여의도대교조합장 “연애편지 같은 이메일이 헤더윅을 불렀다”[이슈앤인물]

입력 2026-01-05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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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희선 대교아파트 재건축 조합장이 지난해 12월 23일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 대교아파트 조합 사무실에서 이투데이와 인터뷰를 갖고 있다. 신태현 기자 holjjak@ (이투데이DB)
▲정희선 대교아파트 재건축 조합장이 지난해 12월 23일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 대교아파트 조합 사무실에서 이투데이와 인터뷰를 갖고 있다. 신태현 기자 holjjak@ (이투데이DB)

“재건축은 서두른다고 빨라지지 않습니다. 단순히 속도를 낸다기보다 시행착오를 최소화하고 불필요한 비용을 줄여 사업의 예측 가능성을 높이는 데 주력했습니다.”

정희선 여의도 대교아파트 조합장은 재건축 사업이 빠르게 진행되는 것에 대해 이같이 말했다. 1975년 준공된 576가구 규모의 대교아파트는 한때 여의도 재건축 사업 중 ‘꼴찌’라는 오명을 썼다. 내부 논의가 장기화하며 사업이 지지부진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2017년 안전진단 통과 후 2023년 2월 조합설립추진위원회 승인, 2024년 1월 조합설립인가, 지난해 8월 사업시행인가를 받으며 ‘여의도 1호 재건축 단지’ 타이틀을 받았다. 이 단지는 현재 최고 49층, 912가구 규모의 하이엔드 주거 단지로 탈바꿈을 앞두고 있다.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 대교아파트 조합 사무실에서 만난 정 조합장은 지연 요인 선제적 제거를 재건축 사업에 탄력이 붙은 배경으로 꼽았다. 그는 “정비계획이나 건축심의 같은 앞단 절차는 조합원들이 체감하기 어려운 구간”이라며 “이 단계가 길어질수록 사업에 대한 피로감과 불신이 커질 수 있다”고 말했다. 이에 따라 조합은 보이지 않는 초기 절차에서부터 지연 가능성을 최소화하는 데 주력했다. 특히 재건축 사업 지연 요인을 불확실성과 정보의 비대칭에서 찾았다. 정 조합장은 갈등을 피하기보다 오히려 정면으로 마주하는 방식을 택했다. 데이케어센터 설치, 추정분담금 통지, 해외 설계 도입, 종전자산 감정평가 개별 통지 등 조합원들의 우려가 컸던 주요 국면마다 갈등 가능성이 존재했다는 점도 인정했다.

정 조합장은 “사실관계가 명확하더라도 조합원마다 이해의 편차가 발생하면 사업은 지연될 수밖에 없다”며 ”그때마다 전 조합원 설명회를 열어 모든 사안을 투명하게 공개해 왔다”고 밝혔다. 이어 “무리한 기대를 제시하기보다 가능한 점과 불가능한 점을 명확히 구분해 설명하는 것을 원칙으로 삼았다”고 강조했다. 일관된 기준 아래 정보를 공유하고 추진 과정을 투명하게 공개한 것이 신뢰 형성의 출발점이 됐고 신뢰는 조합 내부의 강한 결속력으로 이어졌다는 설명이다. 그는 “대교의 변화는 단순한 속도 경쟁이 아니라 올바른 방향을 설정하는 데서 시작됐다”며 재건축 추진 과정에서의 소통과 신뢰가 사업을 움직이는 핵심 동력이라고 덧붙였다.

시공사 아닌 조합장이 움직였다⋯헤더윅 스튜디오, 대교 재건축에 오기까지

대교아파트 재건축 사업은 세계적 건축가 토마스 헤더윅이 이끄는 헤더윅 스튜디오가 국내 첫 재건축 프로젝트에 참여하며 눈길을 끌었다. 헤더윅스튜디오는 미국의 구글신사옥 ‘베이뷰캠퍼스’, 일본의 ‘아자부다이 힐즈’를 설계한 글로벌 설계사다. 국내에서는 서울시의 노들섬 디자인 공모에 선정된 곳으로 이름을 알렸다. 헤더윅 스튜디오의 참여 과정은 통상적인 시공사 주도의 해외 설계 도입과는 결이 달랐다.

정 조합장이 직접 접촉에 나섰다. 조합이 설계의 주체가 되는 방식을 택한 것이다. 대안 설계는 입찰 단계까지만 효력이 있고 본 계약으로 이어지지 않으면 설계 저작권을 사용할 수 없어 실제 건축물로 구현되기 어렵다는 판단에서다.

헤더윅 스튜디오와의 접점은 일본 아자부다이 힐즈를 방문하면서 시작됐다. 정 조합장은 고가의 외산 마감재가 아닌 비교적 현실적인 재료와 아이디어로 완성된 공간 구성에 주목했고 대교의 조건과 유사하다고 느꼈다. 문제는 연결 창구였다. 국내 지사나 공식 연락선이 없어 조합 차원의 제안서를 전달하기 어려운 상황이었다. 정 조합장은 이메일을 보내는 방식을 택했다. 그는 “지금 다시 읽어보면 비즈니스 제안서라기보다 팬레터나 연애편지에 가까운 글이었다”고 회상했다. 이메일에는 자신이 누구인지, 아자부다이 힐즈에서 무엇을 느꼈는지, 여의도 대교와 어떤 점이 닮았다고 생각했는지를 솔직하게 담았다.

답장은 한 달가량이 지난 뒤 도착했다. 이후 줌 미팅과 이메일을 통해 협의가 이어졌지만 설계 참여 여부에 대한 명확한 결론을 얻기까지는 시간이 필요했다. 결국 그는 런던을 방문해 현지에서 헤더윅 측과 면담을 추진했다. 정 조합장은 “줌이나 이메일로는 알 수 없던 진심이 짧은 대면에서 전달됐다”며 그 자리에서 서로 프로젝트에 대한 의지와 방향성을 확인할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그는 “그때부터 서로 불이 붙은 것 같았다”고 표현했다. 이후 조합은 시공사 선정과 별도로 헤더윅 스튜디오와 직접 계약을 추진했다. 단순 콘셉트 설계가 아니라 디자인 가이드와 감리까지 포함해 설계 의도가 준공까지 유지되도록 하는 구조였다. 정 조합장은 “설계를 그림으로 끝내지 않고 준공까지 남기고 싶었다”고 말했다.

조합원 설득 과정에서도 이 같은 진정성이 영향을 미쳤다. 온라인 총회에서 헤더윅 스튜디오가 직접 질의응답에 참여했고 이후 토마스 헤더윅과 주요 인사들이 여의도를 방문하면서 기대감이 커졌다. 정 조합장은 “처음에는 낯설어하던 조합원들도 점차 설계의 방향성과 진심을 체감하게 됐다”고 말했다. 정 조합장은 이 과정을 돌아보며 “처음부터 길이 보였던 것은 아니다”라며 “하고 싶은 일을 하나씩 시도하다 보니 예상하지 못한 문들이 열렸다”고 회상했다.

‘스카이브릿지·조식 없는 하이엔드’⋯대교가 선택한 다른 길

대교아파트 시공사는 삼성물산으로 신규 단지명으로 ‘래미안 와이츠(YTTZ)’를 제안했다. 조합은 지난해 11월 15일 시공사 선정 총회를 열고 삼성물산을 시공사로 최종 선정하는 안건을 가결했다. 같은 날 헤더윅 스튜디오와 초기 설계 콘셉트 수립을 위한 ‘비저닝 스터디’ 협약도 체결하며 본격적인 재건축 사업 시작을 알렸다.

본격적인 설계 과정에 앞서 정 조합장은 최근 재건축 시장에서 확산하고 있는 고급화 경쟁을 과감히 포기했다. 스카이브릿지나 초대형 커뮤니티, 조식 서비스 등 눈에 띄는 설비를 앞세우는 대신 실제 거주의 효율성과 유지 가능성을 기준으로 설계를 재정리했다. 정 조합장은 “스카이브릿지는 수십억 원에서 많게는 수백억 원이 투입되지만 실제 활용도는 높지 않다”고 지적했다. 서울시 역시 스카이브릿지 규모를 제한하는 방향으로 심의를 진행하고 있어 비용 대비 효과가 크지 않다는 판단이다.

대형 커뮤니티 시설과 조식 서비스에 대해서도 회의적인 시각을 드러냈다. 정 조합장은 “커뮤니티는 클수록 유지관리비 부담이 커진다”며 “결국 관리비는 입주민이 감당해야 하는 비용”이라고 강조했다. 조식 서비스 역시 초기에는 관심을 끌지만 시간이 지나면 이용률이 급격히 떨어진다는 점을 지적했다. 그는 “처음에는 줄을 서지만 결국 매일 같은 공간에서 먹는 식사는 지속되기 어렵다”고 했다.

대교아파트가 추구하는 고급화는 화려한 외형이나 고가의 외산 자재가 아니라 일상에서의 편안함과 지속적인 사용 가능성에 맞춰져 있다. 정 조합장은 “럭셔리는 비싼 자재를 쓰는 것이 아니라 매일 살아도 질리지 않고 관리가 가능한 공간”이라며 “준공 이후까지 책임질 수 있는 선택을 하려고 했다”고 설명했다.

아울러 대교 재건축이 개별 단지의 성과를 넘어 도시 재건축의 새로운 기준이 되기를 바란다고 밝혔다. 그는 “아직 사업이 진행 중인 만큼 조심스럽지만 선도 단지로서 인근 단지들과 경험을 솔직하게 공유하며 도시 전체의 가치를 함께 높이고 싶다”고 말했다. 이어 “대교의 성과가 조합원들에게는 자산 가치의 증대로 시민들에게는 아름다운 도시 풍경으로 돌아가길 바란다”며 “서울의 수변 주거 문화가 세계적으로 주목받는 날 그 변화의 시작점이 대교가 되길 희망한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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