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글로벌 비만치료제 시장이 주사제에서 경구용(먹는) 약으로 빠르게 재편되고 있다. 미국 식품의약국(FDA)이 최초의 경구용 글루카곤 유사펩타이드(GLP-1) 비만치료제를 승인하면서 시장 패러다임 전환이 본격화되는 모습이다. 국내 제약·바이오 기업들도 잇따라 경구용 비만약 개발에 뛰어들며 글로벌 경쟁에 합류하고 있다.
25일 업계에 따르면 노보노디스크의 경구용 GLP-1 비만치료제의 미국 FDA 승인을 기점으로 시장이 주사제에서 경구제로 재편될 것이란 전망이 우세하다. 경구제는 주사제 대비 복약 부담이 적어 환자 순응도가 높고 장기 복용이 용이하다는 점에서 시장 확대 가능성이 크다는 분석이다.
해당 치료제는 블록버스터 비만치료제 ‘위고비’(성분명 세마글루타이드)를 알약으로 만든 것이다. 임상시험에서 기존 주사제와 유사한 체중 감량 효과와 안전성을 입증한 것으로 알려졌다. 글로벌 규제당국이 GLP-1 계열 먹는 비만약을 승인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가격은 월 149달러(약 22만 원)로 책정됐지만 단계적으로 용량을 높이는 구조인 만큼 실제 치료 비용은 더 높아질 가능성이 있다. 노보노디스크는 내년 초 출시를 계획 중이다.
국내 제약·바이오 기업들도 ‘먹는 비만약’ 개발 경쟁에 속도를 내고 있다. 현재 일동제약, 디앤디파마텍, 디엑스앤브이엑스, 셀트리온 등이 대표 주자로 꼽힌다.
일동제약은 화학 합성으로 만든 저분자 화합물을 기반으로 한 경구용 GLP-1 계열 비만치료제 ‘ID110521156’을 개발 중이다. 임상 1상 톱라인 결과에서 최대 13.8%의 체중 감소 효과를 확인했다. 2026년 다국가 임상 2상 진입이 목표로, 국내 경구용 비만약 파이프라인 중 개발 단계가 가장 앞섰다.
저분자 화합물 특성상 복잡한 생명공학 공정이 필요하지 않아 대량 생산이 쉽고 제조 단가가 낮다. 반감기가 길고 경구 제형 개발이 쉬워 복용 편의성과 경제성도 갖췄단 것이 회사 측 설명이다.
디앤디파마텍은 경구용 비만치료제 ‘MET-GGo’의 전임상 결과를 11월 미국 비만학회(Obesity Week 2025)에서 공개했다. 비만 마우스 모델에서 28일간 진행한 효능 평가에서 29.1%의 체중 감소 효과를 보였고, 경구용 세마글루타이드 대비 동일 용량 기준 10배 이상 높은 혈중 약물 노출을 달성해 잠재력을 입증했다. 회사는 이를 포함한 GLP-1·포도당 의존성 인슐린 분비 촉진 폴리펩타이드(GIP) 수용체 이중작용제 등 6개 파이프라인을 멧세라(Metsera)에 총 1조 원 이상 규모로 기술이전한 바 있다.
디엑스앤브이엑스는 올해 5월 경구용 비만치료제 후보물질(프로젝트명 DX-DRG-C01)의 동물시험에서 약물동태학(PK) 지표가 글로벌 제약사 후보물질 대비 우수한 결과를 보였다고 밝혔다. 9월 중국 상하이에서 열린 ‘바이오 파트너링 서밋 상하이(Bio Partnering Summit in Shanghai)’에서 중국 주요 제약사들과 기술이전 논의를 진행했으며, 일부 기업과는 비밀유지계약(NDA)을 체결하고 실사 단계에 돌입하는 등 협상을 이어가고 있다.
셀트리온도 비만 치료제 시장에 가세했다. 현재 개발 중인 ‘CT-G32’는 기존 GLP-1 기반 치료제보다 진일보한 4중 작용제로, 근손실 부작용을 개선하면서 체중 감소율을 최대 25% 수준까지 끌어올리는 것을 목표로 한다. 회사는 2026년 물성·안전성·독성 검증을 거쳐 전임상에 착수할 계획이다.
정수용 아이큐비아 대표는 한국보건산업진흥원이 최근 발간한 ‘넥스트 파마 코리아(NEXT PHARMA KOREA)’ 보고서에서 글로벌 비만 치료제 시장이 연평균 24~27% 성장해 2028년 740억 달러(107조8772억 원) 규모에 이를 것으로 전망했다. 2030년 이후에는 2000억 달러(291조5600억 원)를 넘어서는 초대형 시장으로 성장할 것이란 예측도 내놨다.
업계는 주사제 대비 접근성이 높은 경구용 비만약이 투여 편의성을 높이고 장기 복용 시장을 형성하면서 시장 구조 자체를 바꿀 수 있을 것으로 본다. 경구용 비만치료제를 개발 중인 한 제약사 관계자는 “국내 기업들은 후발주자지만 차별화된 기전과 제형 전략으로 해외에서 관심을 받고 있다”며 “향후 기술수출이나 글로벌 공동개발 논의도 더욱 활발해질 것”이라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