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결 전에 분쟁 종결?⋯해외 대형 소송은 화해로 끝나기도 [증거개시제도, 판도를 바꾸다]

입력 2025-12-24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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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대규모 민사소송서 ‘디스커버리’ 제도 활용↑
“증거 확보 수단이자 합의 유도하는 전략적 수단”
韓, 선별 자료만 제출 vs 美, 광범위한 자료 대상

(챗GPT 이미지 생성)
(챗GPT 이미지 생성)

해외 대형 민사소송에서는 법원의 판단에 이르기 전 화해로 분쟁이 마무리되는 경우가 적지 않다. 특히 미국에서는 디스커버리(discovery·증거개시)를 통해 사실관계가 조기에 드러나면서 재판 대신 합의로 방향을 트는 현실적 선택이 많다.

23일 법조계에 따르면 미국 대규모 민사소송에서는 소송 초반부터 증거개시가 이뤄지며 본안 판단 이전에 분쟁의 윤곽이 정리되는 사례가 많다.

대표적 사례는 폭스바겐 ‘클린 디젤’ 사건이다. 폭스바겐은 2015년 9월 배출가스 조작 사실을 인정한 뒤 미국 전역에서 대규모 손해배상 소송에 직면했다. 원고 측은 소장 제출 전부터 광범위한 증거개시를 요청했고 폭스바겐은 1200만 쪽이 넘는 내부 문서를 제출했다.

이 과정에서 내부 대응 정황이 구체적으로 드러나며 소송은 본안 판단에 이르기보다 화해 국면으로 전환됐다. 법원은 수십조 원을 배상하는 조건으로 화해를 승인하며 사건을 종결했다. 증거개시로 핵심 사실이 조기에 공개되자 재판을 이어갈 유인이 줄어든 것이다.

법조계에서는 디스커버리가 소송을 키우기보다는 분쟁의 출구를 앞당기는 장치로 작동한다고 본다. 사실관계가 상당 부분 정리되면 불확실성을 감수하며 재판을 이어가기보다 합의를 택하게 된다는 설명이다.

강동희 법무법인 화우 변호사는 “디스커버리는 해외 기업의 내부 자료 공개를 강제해 소송의 성패를 가를 증거 확보 수단이 되는 동시에, 조기에 상대방에게 상당한 부담과 압박을 가해 합의를 유도하는 전략적 수단”이라고 말했다.

한국과 미국의 차이는 증거 접근 방식에서 뚜렷하다. 국내 문서제출명령은 제출인이 선별해 제출한 문서만 확보할 수 있다. 미국 디스커버리에서는 내부 이메일·메신저, 보고서, 리스크 분석 자료 등 폭넓은 자료가 대상이 된다. 임직원의 증언을 확보하는 데포지션(Deposition) 절차도 활용된다.

▲디스커버리 적용 사례
▲디스커버리 적용 사례

이 같은 구조는 미국에서 진행된 한국 기업 간 분쟁에서도 확인된다. 2021년 LG에너지솔루션과 SK이노베이션의 전기차 배터리 영업비밀 분쟁에서 미국 국제무역위원회(ITC)는 증거개시 과정에서의 자료 삭제 정황을 근거로 SK의 영업비밀 침해를 인정했다. 이후 SK가 미국에서 10년간 배터리 수입과 생산을 하지 못하도록 하는 결정을 내렸고, 양사는 합의를 거쳐 SK가 LG에 2조 원의 배상금을 지급하기로 했다.

페이스북(현 메타) 개인정보 유출 사건에서도 한국에서는 개별 이용자의 정보 유출 입증이 어렵다는 이유로 손해배상 책임이 인정되지 않았다. 이와 달리 미국에서는 집단소송과 증거개시 절차를 거쳐 약 1조 원에 이르는 합의로 이어졌다.

이은우 법무법인 지향 변호사는 “미국은 집단소송이 있어서 한두 사람이 소송을 시작하더라도 모든 사람에게 영향을 미친다. 이후 디스커버리로 증거가 나오다 보면 배상 규모가 훨씬 커질 수 있어서 빨리 합의안을 낸다”며 “반면 한국은 최대한 시간을 끌려고 하고 합의도 안 하려고 한다”고 말했다.

이어 “한국에서는 법원이 기업에 자료 제출을 요구해도 거의 내지 않는다. 괜히 자료를 내서 공개되는 것보다 원고들에게 몇 배의 배상을 하고 가랑비만 맞는 게 낫다는 식”이라며 “시간은 걸리겠지만 미국 법원에서 디스커버리로 쿠팡의 내부 자료가 공개되면 국내 소송에서도 활용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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