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상품 개발 시 고객 관점에서 생각하고 빅데이터를 활용해 상품 성공률을 높이고 있습니다.”
최근 서울 강남구 역삼동 GS리테일 본사에서 만난 이기철 GS리테일 간편MD부문장(상무)은 본지와 만나 인기 상품 개발 비결을 이같이 밝혔다. 사회관계망서비스(SNS) 화제성에 기대는 단발성 상품이 아니라, 고객 관련 빅데이터에 기반을 둔 반복 구매 상품을 만들겠다는 전략이 성과로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1998년 LG유통 편의점사업부에서 일을 시작한 이 부문장은 편의점 일배식품팀장, MD개발팀장, H&B MD 팀장 등을 거쳤다. 이후 기획MD부문장, 가공MD 부문장을 역임, 이달부터는 자리를 옮겨 간편MD부문장을 맡고 있다.
이 부문장은 과거 일배식품팀장 시절 편의점 도시락 전성시대를 이끈 ‘김혜자도시락’ 론칭을 주도한 데 이어, MD개발팀장 시절 ‘카페25’, 자체브랜드(PB) ‘유어스’를 탄생시킨 인물로 20년 이상 경력의 베테랑 MD 출신으로 평가받는다.
국내 주요 편의점 업체들은 최근 캐릭터 협업, 한정판 콘셉트, 캐릭터·유명인 지식재산권(IP)을 앞세워 소비자들을 끌어들이기 위한 치열한 경쟁을 벌이고 있다.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서 화제가 되며 단숨에 인기를 얻는 사례도 적지 않지만, 반대로 초기 관심 이후 빠르게 사라지는 상품도 상당하다.
이 같은 환경 속에서 편의점 GS25를 운영하는 GS리테일은 올해 다수의 메가 히트 상품을 연이어 선보이며 두드러진 성과를 냈다. 얼음 컵과 박카스를 결합한 ‘얼박사’를 비롯해 ‘안성재 소비뇽 레몬 블랑 하이볼’, ‘서울우유 디저트 시리즈’, ‘선양 오크소주’, ‘젼언니 스윗믹스젤리’, ‘아이스브륄레’ 등이 대표적이다.
이 부문장은 이러한 성과의 배경으로 ‘고객·빅데이터 기반 상품 전략’을 꼽았다. GS25는 2022년부터 사내 포털에 자체 ‘인공지능(AI) 트렌드 분석 시스템’을 구축해 운영하고 있다. 온라인상 소비자 반응을 바탕으로 상품 언급량 추이, 상권·점포 유형별 수요, 고객 성별·연령대는 물론 식감·향·모양 등 세부적인 맛 요소까지 분석해 상품 기획에 반영한다.
또 국내 주요 검색 포털과 SNS, 커뮤니티 데이터를 활용해 전월 대비 언급량이 미세하게 증가하는 ‘키워드 약신호’를 선제적으로 포착하는 ‘트렌드 선행 캐칭 시스템’도 가동 중이다. 기존 메가 히트 상품과의 성장 패턴을 비교하는 ‘히트상품 유사도 점수’는 후속 상품 출시 여부를 판단하는 중요한 기준으로 활용된다.
점포 현장에서 나오는 반응도 여기에 MD들이 설문조사 도구를 활용해 고객들의 반응을 수시로 확인하는 노력도 기울이고 있다.
이 부문장은 “상품이 출시된 이후 점포를 운영하는 경영주, 영업 담당자 등을 통해 소비자들의 생생한 반응, 후기를 확인해 미진한 부분이 있다면 보완하는 작업도 거친다”고 했다.
빅데이터를 활용해 트렌드를 발 빠르게 읽고 고객이 원하는 상품을 내놔 성공시킨 대표 사례가 얼박사다. 이 부문장은 “지난해 9월 영수증 데이터를 분석하는 과정에서 박카스와 사이다, 얼음컵을 함께 구매하는 소비가 유독 높다는 점을 확인했다”며 “이를 하나의 상품으로 묶어 출시한 것이 얼박사”라고 설명했다.
상품을 출시하는 과정은 순탄하지 않았다. 통상 상품 개발부터 출시까지 3~4개월 정도 걸리지만, 해당 상품은 약 10개월이 걸려 세상에 나왔다. 그 결과, 올해 6월 출시한 얼박사는 단숨에 누적 매출 130억 원을 돌파했고, 3개월 연속 음료 매출 1위를 기록했다.
이 부문장은 “해당 데이터를 기반으로 동아제약 측에 상품을 개발을 제안했고, 설득하는 데만 수개월이 걸렸다”며 “신상품을 내놓은 뒤 1년 동안 100억 원을 파는 상품이 1년에 10개가 채 안 되지만, 이 상품은 불과 5, 6개월 만에 매출 100억 원을 돌파했다. 데이터를 중심으로 상품을 탄생시킨 첫 사례”라고 강조했다.
이 뿐 아니라 7월 출시한 ‘안성재 소비뇽 레몬블랑 하이볼’은 출시 4개월 만에 누적 판매량 160만 개를 돌파했다. 구매자를 분석한 결과, 2030 비중이 80%를 차지했고, 여성 비중은 64%로 나타났다. 5월 ‘서울우유 우유크림빵’을 시작으로 커피·초코·말차·딸기 등 서울우유 디저트 시리즈를 통해 다양한 맛을 선보이며 라인업을 14개까지 늘렸다. 출시 이후 누적 판매량 600만 개를 돌파했으며, GS25 냉장 디저트 빵 카테고리의 200여 종 상품 중 매출 상위 10위까지 서울우유 디저트 시리즈가 모두 차지하는 성과를 기록했다.

이 부문장은 우유크림빵 개발 과정을 소개하며 “생크림은 동물성으로 만드느냐, 식물성으로 만드느냐에 따라 맛이 다르다”며 “동물성 생크림은 맛은 좋지만 식물성보다 가격이 높은 데다, 완성도 있게 상품화하기 어려운 점이 있었다”고 말했다. 이어 “그런데도 올해 동물성 생크림으로 만든 상품을 성공적으로 출시했는데 소비자들에게 굉장히 좋은 반응을 보이고 있다”고 웃음을 지었다.
GS리테일은 젊은 층의 소비자들을 공략하기 위한 상품을 강화하기 위해 ‘트렌드 상품 차별화팀’, 일명 ‘트상차팀’도 지난해 조직해 운영 중이다. 트상차 팀은 SNS를 비롯해 온·오프라인에서 반응이 좋은 트렌드를 포착해 MD들에게 제공, 상품 성공 가능성을 높이는 데 기여하고 있다.
이 부문장은 “트상차팀이 최근 일주일 동안 가장 핫한 트렌드가 어떤 것인지 제공하면, MD들이 빠르게 파악한 뒤 상품을 개발할 수 있도록 지원하고 있다”며 “필요하다면 IP 제휴까지 맺어주는 역할을 하고 있고, 점점 고도화하는 작업을 하고 있다”고 했다.
이 같은 기조는 올해 새로 취임한 허서홍 GS리테일 대표의 경영 전략과도 맞닿아 있다. 이 부문장은 “올해 허 대표님이 가장 강조하는 부분으로 매월 신상품 회의 때마다 항상 고객 관점과 데이터를 중심으로 상품을 개발할 것을 주문하고 있다”고 전했다.
이 부문장은 데이터 기반 상품 전략과 함께 ‘속도와 품질의 균형’을 상품 경쟁력의 또 다른 핵심 요소로 꼽았다. 그는 “상품 개발 기간을 단축하는 것도 분명 과제이지만, 그렇다고 무조건 빨리 가는 게 능사는 아니다”라며 “상품을 서둘러 출시하는 것보다 맛과 품질력을 높여 고객이 만족하는 상품을 만들면 매출은 자연스럽게 따라온다”고 설명했다.
이어 “고객이 기대하는 최소한의 품질을 지키면서도, 이를 얼마나 빠르게 상품화하느냐가 MD의 실력이라고 볼 수 있다”며 “이를 위해서는 기획 역량뿐 아니라 우수한 제조사 풀을 얼마나 확보하고 있느냐도 중요하다”고 했다. 단순히 아이디어를 내는 수준을 넘어, 제조 역량과 협업 경험이 축적된 파트너사 네트워크가 뒷받침돼야 히트 상품을 안정적으로 만들어낼 수 있다는 뜻이다.
간편MD부문을 새로 이끌게 된 이 부문장은 내년을 향한 목표도 분명히 했다. 편의점 경쟁력의 핵심인 프레시 푸드(도시락·김밥·햄버거·샌드위치 등 간편식) 강화에 주력하겠다는 계획이다. 인구와 점포 수가 정체된 상황에서 객수를 늘리는 방법은 방문 빈도를 높이는 것뿐이고, 이를 가장 효과적으로 끌어올리는 상품이 FF라는 설명도 덧붙였다.
그는 “고객 인식을 바꿀 수 있는 상징적인 상품이 필요하다”며 “과거 김혜자 도시락 같은 상품을 다시 한번 만들어야 한다는 이야기가 내부에서도 나오고 있다”고 말했다. 도시락에 국한하지 않고, 카테고리별로 고객이 기억할 만한 대표 상품을 지속해서 선보이겠다는 구상이다.
그중에서도 최근 고물가로 한 끼를 해결하는 것도 부담이 커진 상황인 만큼 내년 가성비 PB 상품을 확대해 선보인다는 계획이다. 그는 “현재 5000원대 상품이 주력이지만, 이 가격 역시 부담으로 느끼는 고객들이 있다”며 “주머니 사정을 고려해 저렴하면서도 맛있는 상품을 추가로 준비하고 있다”고 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