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근로시간 데이터 확보 중요해져
분쟁대비 기업·근로자 인식 키워야

근로시간을 기록한다는 것은 단순한 산수다. 출근 시각을 찍고, 퇴근 시각을 찍는다. 그 사이에 점심을 먹고, 회의를 하고, 서류를 작성한다. 이 모든 시간의 총합이 곧 노동이다.
그런데 이처럼 단순한 산수를 둘러싼 법적 환경이 빠르게 변화하고 있다. 고용노동부는 2026년 주요업무 추진계획 중 포괄임금제 오남용 근절과 실근로시간 단축을 핵심 과제로 제시하였다. 실제로 기록된 근로시간이 중요해지고 있다.
여기서 잠시 용어를 정리해 둘 필요가 있다. 포괄임금제란 기본급과 각종 수당을 구분하지 않고 월급 총액만 정하는 방식이다. 반면 고정OT(Over Time)제는 일정 시간의 연장근로수당을 미리 정액으로 지급하되, 이를 초과하면 추가 정산하는 방식이다. 정부의 규제 방향은 전자, 즉 근로시간 산정이 가능함에도 편의상 도입된 정액급제의 오남용을 방지하는 데 있다고 보인다. 따라서 향후 기업의 임금 체계 역시 고정OT제를 활용하는 방향으로 수렴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그러나 고정OT제를 도입하였다고 해서 문제가 끝나는 것은 아니다. 고정OT 수당이 실제 연장근로에 상응하는지 여부가 여전히 쟁점이 된다. 대법원은 정액의 법정수당이 근로기준법이 정한 기준에 미달하면 그 부분은 무효이고, 사용자는 미달분을 지급할 의무가 있다고 판시하였다(대법원 2008다6052 판결). 반대로, 기지급한 금액이 실제 연장근로수당보다 많을 경우 추가 지급 의무가 없다는 판결도 있다(대법원 2023다221359 판결). 결국 지급하는 고정OT 수당이 실제 연장근로에 상응하는지 여부가 관건이다.
문제는 여기서 발생한다. 이를 충족하였는지 판단하려면 실제 근로시간을 알아야 하기 때문이다. 몇 시간을 일하였는지 확인할 수 없다면, 고정OT 수당이 합리적 범위 내에 있는지조차 판단할 방법이 없다. 저울 없이 무게를 재는 격이다. 바로 여기서 객관적 근로시간 기록 시스템의 필요성이 대두된다. 근로자 보호의 문제이기도 하지만, 기업이 법적 분쟁을 예방하고 임금 정산의 투명성을 확보하기 위한 실무적 과제이기도 한 이유다.
우선, 기록 의무의 법적 근거에 관하여, 유사한 고민을 먼저 거친 나라들의 사례를 참고할 필요가 있다. 미국 공정근로기준법(FLSA)은 일정 근로자에 대하여 사용자가 매일의 근로시간과 주간 총 근로시간을 기록할 의무를 부과한다(29 CFR § 516.2). 유럽사법재판소(CJEU) 역시 도이체방크 사건에서, 회원국은 사용자에게 객관적이고 신뢰할 수 있으며 접근 가능한 근로시간 기록 시스템 구축을 의무화하여야 한다고 판결하였다(EuGH C-55/18). 기록 시스템 없이는 근로시간 제한 규정과 휴식권 보장이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것이 판결의 요지였다.
나아가, 구체적으로 어떻게 기록할 것인가. 미국은 기록 의무는 있으나 구체적인 방법까지 정하고 있지는 않다. 다만 사용자가 적정한 근로시간 기록을 남기지 않은 경우, 근로자가 합리적 추론으로 근로시간을 주장·입증하면 사용자가 이를 반박할 부담을 진다는 판결이 있다[Anderson v. Mt. Clemens, 328 U.S. 680 (1946)]. 스페인도 법률왕령(Real Decreto-ley 8/2019)을 통하여 매일 근로의 시작 시각과 종료 시각을 기록하여야 한다고 정하였으나, 구체적인 기록 방법까지 특정하지는 않은 것으로 보인다. 스페인 노동부에서 만든 가이드에도, 사후에 변경하거나 조작할 수 없는 신뢰할 수 있는 정보를 제공할 수 있다면 수기 기록, 디지털 플랫폼, 출입 게이트 등 어떤 수단도 유효하다고 설명하고 있다.
일본 후생노동성의 ‘노동시간의 적정한 파악을 위하여 사용자가 강구하여야 할 조치에 관한 가이드라인’은 한걸음 더 나아간다. 이 가이드라인은 사용자가 직접 확인하거나, 타임카드, IC카드, PC 사용 시간 기록 등 객관적인 기록을 기초로 근로시간을 확인하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나아가 자기신고제를 운용하는 경우에도 사용자의 검증 의무를 명시하고 있다.
다만 모든 사업장에서 타임카드나 IC카드를 도입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때문에 근로자가 스스로 출퇴근 시각과 근로시간을 기재하여 제출하는 자기신고제를 운용하는 경우도 있을 수 있다. 하지만 이 경우에도 가이드라인은 사용자가 준수하여야 할 조치를 명시한다. 근로자의 자기신고 시간이 PC 사용 기록이나 입퇴실 기록 등 객관적 데이터와 현저한 차이를 보일 경우, 사용자는 반드시 실태 조사를 실시하여 시간을 보정하여야 한다. 객관적 데이터와의 대조를 통하여 실근로시간을 확정하여야 한다는 것이다. 시간외근로 시간 수에 상한을 두고 그 이상은 신고하지 못하게 하는 등 적정한 신고를 저해하는 조치도 금지된다.
이처럼 여러 나라에서 사용자에게 근로시간 기록 의무를 부과하고, 그 기록의 객관성과 정확성을 요구하고 있으며, 한국도 이러한 흐름에서 자유롭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결국 객관적 근로시간 기록 없이 이러한 규제를 준수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기업 입장에서 이러한 변화는 부담일 수 있다. 그러나 다른 측면도 있다. 기록이 없으면 분쟁 발생 시 근로자의 주장을 반박할 근거도 없다. 객관적인 근로시간 기록 시스템은 오히려 임금 미지급 분쟁에서 기업을 보호하는 방패가 될 수 있다. 신뢰할 수 있는 근로시간 데이터를 확보하는 것. 이것이 법적 분쟁을 예방하고 임금 정산의 투명성을 확보하는 길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