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문제는 신호가 섞였다는 점이다. 상징성을 말한 직후 감경·유예를 꺼내면 제재는 집행이 아니라 조정으로 읽힌다. 시장이 듣고 싶은 건 '얼마나 세게'가 아니다. 무슨 기준으로 판단할지, 그리고 그 잣대를 끝까지 흔들림 없이 적용할지다. 제재가 강할수록 기준은 더 선명해야 한다. 그래야 금융사는 눈치가 아니라 준칙으로 움직이고, 피해자도 운이 아니라 절차로 보호받는다.
금융사들의 사후 구제 노력은 평가받아야 한다. 하지만 자율배상과 재발방지 조치가 어떤 기준에서 얼마만큼 감경으로 이어지는지가 불투명하면 참작은 원칙이 아니라 재량으로 들린다.
여기서부터 신호가 흔들린다. 제재의 방향과 완충의 여지가 한 호흡에서 나오면 시장의 초점은 기준에서 수위로 옮겨간다. '무엇이 금지인가'보다 '어디까지 조정 가능한가'가 먼저 화제가 되는 것이다. 그 순간 제재는 예방의 장치가 아니라 사후 조정의 장치로 읽힌다.
제재의 목적이 예방이라면 필요한 것은 거친 수사가 아니라 예측 가능한 집행이다. 기준이 흔들리면 예방은 약해지고 사회적 비용만 커진다.
더 큰 문제는 완충의 명분으로 등장한 '생산적 금융'이다. 생산적 금융은 목표이지, 제재의 가변 스위치가 아니다. 조 단위 과징금이 은행 자본여력과 대출 공급에 부담이 될 수 있다는 우려는 현실적이다. 그러나 그 우려를 핑계로 제재의 강약을 흔들면 당국이 시장에 남기는 메시지는 결국 "원칙은 상황에 따라 변할 수 있다"로 굳어진다.
이렇게 학습된 시장은 다음 사건에서 준법을 강화하기보다 조정을 기대하는 쪽으로 움직일 수 있다. 소비자보호를 내세운 조치가 되레 소비자보호의 명분을 약하게 만드는 꼴이다.
자본 규제 완화 시사도 같은 맥락에서 정리돼야 한다. 과징금이 규제와 맞물려 충격을 키운다면 해법은 "이번 건은 덜어준다"가 아니다. 원칙은 그대로 두고 충격만 흡수할 장치를 사전에 설계하는 것이다.
유예가 필요하다면 기간·조건·적용 범위를 명확히 하고 공개된 룰로 운영해야 한다. 사건이 터질 때마다 "유예를 검토한다"는 말이 반복되면 시장은 제도를 정책이 아니라 상황 대응으로 받아들인다.
결론은 단순하다. 금감원이 남겨야 할 상징은 '조 단위'가 아니라 '예외 없는 기준'이다. 흔들리지 않는 기준을 먼저 내놓고 그 기준을 누구에게나 똑같이 적용하는 것. 그게 상징의 실체다.
그러려면 감경이 필요할 땐 감경의 체크리스트를 공개하고 완화가 불가피할 때는 완화의 조건과 적용 범위를 미리 못 박아야 한다. 협의는 집행 과정에서 필요할 수 있지만 기준을 대신해선 안 된다. 협의는 절차일 뿐이고 기준은 거래가 아니라 공개된 규칙이어야 한다.
제재가 강할수록 메시지는 더 단정해야 한다. 시장이 바라는 것도 더 센 말이 아니라 끝까지 바뀌지 않는 기준이다. 그 기준이 분명해지는 순간 눈치는 끝나고 신뢰는 다시 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