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국가유산청이 세운 4구역 등 세계유산 인근 개발 사업에 대한 규제 강화를 예고하면서 서울시와의 갈등이 이어지고 있는 가운데, 이번 조치로 서울 도심 내 2만8000여 가구의 주택 공급이 차질을 빚을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21일 관가에 따르면 국가유산청은 내달 27일까지 세계유산의 보존·관리·활용에 관한 특별법 시행령 일부 개정안 재입법예고를 한다. 개정안에는 기존 100m였던 문화유산구역을 500m로 넓히고 대규모 건축공사로 인한 환경저해와 소음, 대기 영향 등을 관리하도록 하는 내용 등이 담겼다.
이에 대해 서울시는 “높이·경관 등 이미 촘촘한 도시 관리 시스템에 '500m 이내 세계유산평가'를 획일적으로 추가하는 것은 행정 편의적인 이중 규제”라며 강력히 반발했다. 서울시는 이번 개정안이 시행되면 노후 도심을 정비해 주택 공급을 늘리려는 시의 정책 기조와 충돌한다고 보고 있다.
세운 4구역 인근 주민들 역시 강한 불만을 나타내고 있다. 세운 4구역 주민대표회의는 최근 발표한 호소문을 통해 “종묘 보존을 이유로 정쟁만 지속하며 주민의 생존권을 말살하는 정부와 국가유산청의 행위에 참담함과 분노를 감출 수 없다”며 사업 지연이 계속될 경우 손해배상 소송 등 법적 대응도 불사하겠다고 밝혔다.
세계유산영향평가 적용 범위가 확대되면 서울 시내 대규모 정비사업들에 상당한 파장이 예상된다. 서울시 등에 따르면 세계유산 반경 500m 이내의 개발사업까지 평가를 의무화할 경우 서울 6개 자치구에 걸쳐 약 38개 정비구역이 영향을 받는다. 업계에서는 세운 2~5구역과 이문 3구역, 장위 11구역 등 강북 지역 내 정비사업장이 영향권에 들면서 약 2만8764가구 규모의 주택사업이 차질을 빚을 수 있다는 계산이 나온다.
서울시는 이와 관련해 “세계유산 반경 500m 내에 노후화된 주거 밀집 지역이 다수 포함돼 있어 일률적인 규제로 재개발·재건축 등 정비사업이 불가능해질 경우 이들 주민은 주거 환경을 개선할 기회를 상실하게 된다”고 지적했다.
그려면서 “이미 진행 중인 정비사업 현장에서 규제로 인해 공사가 지연되거나 중단될 경우 막대한 이자와 공사비 증액분이 발생하게 된다”며 “이는 조합원인 원주민들의 추가 분담금으로 이어져 평생 일군 집 한 채를 지키지 못하고 쫓겨나는 주민도 속출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구체적으로 강북 지역에 타격이 집중될 전망이다. 서울 소재 세계유산 8곳 중 5곳이 강북에 몰려있기 때문이다. 가장 큰 피해가 예상되는 곳은 성북구 의릉 주변이다. 최근 시공사를 선정한 3300여 가구 규모의 장위15구역을 포함해 총 15곳, 1만 2900여 가구가 규제 사정권에 들어간다. 노원구 태릉·강릉 인근 역시 상황은 비슷하다. 이미 철거가 시작된 '백사마을(중계본동 재개발)' 등 약 1만 가구의 사업 지연이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강남권도 예외는 아니다. '강남 마지막 판자촌'으로 불리는 개포 구룡마을(3739가구 공급 예정) 역시 헌인릉 반경 500m 내에 일부 포함돼 개발 계획에 차질이 생길 수 있다.
정비업계 관계자는 “세계유산 영향평가 범위가 확대될 경우 자칫하면 민간 재개발 의욕이 꺾이고 주택 공급 위축으로 이어져 시장 전체에 부정적 영향을 줄 수 있다”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