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주와 곗돈…계를 아시나요 [해시태그]

입력 2025-12-18 16: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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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락시장 40년 계모임 계주 잠적…계 뜻·계 종류·곗돈 원리 등 관심


▲가락시장 40년 계모임 계주 잠적…계주와 곗돈, 계 뜻·계 종류·곗돈 원리 등 관심  (김다애 디자이너 mnbgn@)
▲가락시장 40년 계모임 계주 잠적…계주와 곗돈, 계 뜻·계 종류·곗돈 원리 등 관심 (김다애 디자이너 mnbgn@)


곗돈 탔다!

정확히 그 뜻을 이해하진 못했지만 두둑한 봉투와 활짝 웃는 부모님, 그리고 온 가족이 저녁 외식에 나섰던 그 행복함은 여전히 기억하는데요. ‘곗돈’이란 참 즐거운 것이었죠.

하지만 사건·사고 기사 목록에 들어가 있는 곗돈과 계주, 계모임은 결코 ‘즐거움’ 따윈 없었는데요. ‘사기’, ‘횡령’, ‘잠적’, ‘도주’ 등과 함께였죠. 이번에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최근 서울 가락시장이 발칵 뒤집혔죠. 서울 가락시장 상인들이 참여한 계모임에서 곗돈 15억 원가량을 들고 계주가 잠적한 건데요. 경찰에 접수된 고소만 40여 건에 달합니다. 피해자들은 하나같이 “평생 모은 돈”이라며 가슴을 쳤죠. 자녀의 결혼자금, 노후 대비, 전세금 등 그 사연도 기막혔는데요.

2025년 서울, 그것도 국내 최대 도매시장 중 하나인 가락시장에서 여전히 ‘계’라는 방식이 금융 역할을 하고 있었던 거죠. 어색하면서도 낯설지 않습니다. ‘곗돈 사기’라는 표현은 매년 반복해서 등장하기 때문이죠.


▲가락시장 40년 계모임 계주 잠적…계주와 곗돈, 계 뜻·계 종류·계 형태 등 관심  (출처=제미나이 나노바나나)
▲가락시장 40년 계모임 계주 잠적…계주와 곗돈, 계 뜻·계 종류·계 형태 등 관심 (출처=제미나이 나노바나나)


올해 들어 전국 각지에서 계모임을 둘러싼 곗돈 사기 사건이 반복적으로 발생했는데요. 1월 전남 광양에서는 낙찰계 5개를 운영하며 계원 20명에게서 8억 원가량을 가로챈 혐의로 50대 여성이 구속 송치됐죠. 9월 부산에서는 낙찰계 10개를 운영하며 20억 원대 곗돈을 빼돌린 혐의로 60대 여성이 징역 5년 6개월이, 11월에는 농아인 170여 명을 상대로 10억 원대 곗돈을 가로챈 농아인이 항소심에서도 실형이 선고됐습니다.

가락시장 곗돈 잠적사건 피해 규모는 더 커질 전망인데요. 18일 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 출연한 김영찬 가락시장 태승상회 대표는 “경찰서에 고소장을 접수하면서 적은 피해 금액이 약 15억 원이었는데, 아직 고소하지 않은 분들까지 포함하면 30억 원 정도가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말했습니다. 김 대표는 피해자가 100명을 넘는 것으로 알려졌고 개인별 피해액도 1억 원대를 포함해 편차가 크다고 전했는데요.

당장 카드값을 막는 돈이 아니라 ‘큰일’을 위해 따로 떼어둔 ‘큰돈’이었기에 충격은 더합니다. 이처럼 “곗돈이 사라졌다”는 말은 단순히 돈을 잃었다는 뜻을 넘어 예정돼 있던 시간표가 함께 사라졌다는 의미가 되죠.

계는 한국 사회에서 오랜 기간 유지돼 온 자금 모임 방식입니다. 정확한 시작 시점을 특정하기는 어렵지만, 역사 기록과 민속 연구에서는 조선 후기 이전부터 계와 유사한 형태의 공동 자금 모임이 존재했던 것으로 보고 있는데요. 마을 단위로 돈이나 곡식을 모아 혼례, 장례, 제사 비용이나 농번기 자금으로 사용하는 방식이 문헌에 등장합니다.


▲가락시장 40년 계모임 계주 잠적…계주와 곗돈, 계 뜻·계 종류·계 형태 등 관심  (게티이미지뱅크)
▲가락시장 40년 계모임 계주 잠적…계주와 곗돈, 계 뜻·계 종류·계 형태 등 관심 (게티이미지뱅크)


근대 이후 계는 생활 금융의 한 형태로 자리 잡았는데요. 일제강점기와 해방 이후에는 상인과 노동자, 도시 이주민 사이에서 계가 퍼졌고 1960~70년대 산업화 시기에는 급여 생활자와 자영업자를 중심으로 계가 운영됐습니다. 당시에는 은행 대출 접근성이 낮아 목돈을 마련할 수 있는 수단이 제한적이었기 때문에 계는 비공식 금융 역할을 했죠.

1980~90년대에도 계는 사라지지 않았는데요. 주택 마련, 자녀 교육비, 결혼 자금 등을 목적으로 직장·시장·동네 단위 계모임이 이어졌죠. 단순 순번계를 넘어 이자를 제시하는 낙찰계 방식이 성행했습니다. 2000년대 이후 제도권 금융이 확대되고 신용대출과 카드 대출이 보편화됐지만 계는 완전히 사라지지 않았는데요. 특히 전통시장 상인, 자영업자, 고령층 등에서는 여전히 계가 운영됐죠. 절차가 단순하고 신용 심사 없이 참여할 수 있다는 점이 이유로 꼽힙니다.

계는 곗돈을 받을 순서를 어떻게 정하느냐에 따라 여러 형태와 종류로 나뉘는데요. 국사편찬위원회가 공개한 ‘한국문화사’ 속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가락시장 40년 계모임 계주 잠적…계주와 곗돈, 계 뜻·계 종류·계 형태 등 관심  (출처=제미나이 나노바나나)
▲가락시장 40년 계모임 계주 잠적…계주와 곗돈, 계 뜻·계 종류·계 형태 등 관심 (출처=제미나이 나노바나나)


순번계(번호계)는 곗돈을 받을 순서를 미리 정해두는 방식으로 가장 익숙하죠. 계를 조직할 때 번호를 정하거나 추첨으로 순서를 정해 해당 순서에 따라 곗돈을 받는데요. 곗돈 수령 시점을 예측할 수 있어 자금 계획에 유리하다는 점 때문에 가장 널리 운영됐습니다. 1963년 조사에서는 순번계가 전체 계의 약 70%, 1986년 조사에서도 72.6%로 가장 높은 비중을 차지했죠.

추첨계는 매 회차 곗돈을 받을 사람을 아직 곗돈을 받지 않은 계원 가운데서 추첨으로 정하는 방식인데요. 일정 회차 이후에는 이미 곗돈을 받은 계원이 이자를 포함한 금액을 납입하고 이를 아직 곗돈을 받지 않은 계원들이 분담하는 구조로 운영됐죠. 주로 대도시에서 유행했습니다.

정액계는 곗돈을 아직 받지 않은 계원은 매달 동일한 금액을 내고 이미 곗돈을 받은 계원은 이자를 포함한 금액을 납입하는 방식입니다. 일수계는 계원들이 매일 일정액을 납입해 곗돈을 조성하고 이를 순차적으로 지급하는 형태로 주로 중소 상인이나 노점상 등 저소득층을 중심으로 이용됐죠.

낙찰계는 계원들이 곗돈을 먼저 받기 위해 입찰을 벌이는 방식을 뜻하는데요. 일정 금액의 곗돈을 모은 뒤 가장 낮은 금액을 제시한 사람에게 곗돈을 지급하고 남은 금액은 나머지 계원들이 나눠 갖죠. 급전을 융통하는 수단으로 활용됐지만 입찰 결과에 따라 이익이 갈리는 구조로 인해 투기성이 강하고 위험성이 높다는 지적도 뒤따랐습니다.


▲가락시장 40년 계모임 계주 잠적…계주와 곗돈, 계 뜻·계 종류·계 형태 등 관심  (게티이미지뱅크)
▲가락시장 40년 계모임 계주 잠적…계주와 곗돈, 계 뜻·계 종류·계 형태 등 관심 (게티이미지뱅크)


결국, 계주의 역할이 절대적인데요. 가장 단순한 경우 계주는 진행자입니다. 돈을 걷고, 약속대로 지급하고, 미납자를 독촉하고, 계원들의 합의를 관리하죠. 규모가 커지고 계가 여러 개로 늘면 계주는 ‘진행자’에서 ‘운용자’가 되는데요. 돈이 통장을 지나가는 순간마다 계주는 ‘정직함’과 ‘투명성’을 두고 싸우게 되죠.

가락시장 사례는 계주의 권력이 어떻게 강화됐는지를 알 수 있는데요. 그 규모가 커지고 오가는 금액이 커지면서 절차의 중대성이 모두 계주의 손에 들어갔죠. 공개적으로 계원들이 모여 확인하던 절차가 사라지고 계주가 “누가 더 높게 냈다”고 통보하는 방식이 됐습니다. 이 변화는 계원들을 ‘참여자’에서 ‘수취자’로 떨어뜨리죠. 확인하고 결정하던 사람들이 통보를 받고 기다리는 사람들이 되면서 공동체 금융이 아닌 개인이 운영하는 비공식 금융에 참여하게 된 겁니다.

계는 그저 과거의 제도가 아닙니다. 가락시장 사건과 올해 이어진 곗돈 사고들은 계가 여전히 작동하는 자금 방식임을 보여주죠. 동시에 관리와 통제가 무너질 경우 어떤 결과로 이어지는지를 명확히 했는데요. 이번 사건의 수사 결과는 한 계모임의 책임을 가리는 데서 그치지 않아야 하죠. 지금도 운영 중인 수많은 계의 구조를 다시 들여다볼 시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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