낭만러너 심진석과 요즘 러닝 [해시태그]

입력 2025-11-27 16: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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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가 러닝화, 러닝 조끼, 러닝 벨트, 러닝복, 러닝 양말, 러닝 무릎보호대, 러닝 모자 홍수


▲낭만러너 심진석과 요즘 러닝 (디자인=김다애 디자이너 mnbgn@)
▲낭만러너 심진석과 요즘 러닝 (디자인=김다애 디자이너 mnbgn@)


OO는 장비빨!

다양한 스포츠와 육아, 살림 등 다양하게 쓰이는 표현이죠. 뭐든 ‘다양한 장비’는 훨씬 좋은 결과물을 얻을 수 있다는 믿음. 요즘 뜨거운 취미 스포츠인 러닝에도 빠지지 않는데요. ‘러닝은 장비빨’을 외치며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저마다의 ‘러닝템’을 보유 중이죠. 고가 상품까지 나오면서 ‘등급’을 나누기도 하는데요. 이를 다 무색하게 하는 낭만이 찾아 왔습니다. 온몸을 감싼 장비가 숙연해지는 ‘낭만러너’죠.


(출처=유튜브 채널 '낭만러너 심진석' 캡처)
(출처=유튜브 채널 '낭만러너 심진석' 캡처)


한국 러닝계에서 가장 강렬한 낭만을 꼽으라면 주저 없이 “심진석”이라고 외칠 텐데요. 최근 ‘낭만러너 심진석’이라는 유튜브 채널을 개설하기도 한 심 씨는 26일 tvN ‘유 퀴즈 온 더 블럭’에도 출연했죠. 이미 그는 러닝 커뮤니티에서는 일종의 ‘전설’처럼 회자돼 왔는데요. 단순히 빠르게 달리는 사람이어서가 아닙니다. 기록을 체크하는 스마트워치도 없이, 초반 오버페이스를 경계하는 정석과도 거리가 먼 방식으로 대회에 나가 27번이나 우승을 가져간 인물이거든요. 러너들 사이에선 그를 “수치로 관리할 수 없는 러너”, “감각으로 달리는 마지막 주자”, “낭만러너”라고 불렸습니다.

그가 대회에서 보여주는 장면은 기존 러닝 문법과 충돌하는데요. 대개 아마추어 하프코스 초반 1㎞는 4분대에서 출발해 점차 페이스를 올리는 공식이 있죠. 그러나 심 씨는 1㎞를 2분 45초~50초에 끊습니다. 마라톤계에서는 ‘기록을 망치는 지름길’로 여겨지는 오버페이스를 그는 매번 그 속도로 시작하죠. 더 놀라운 것은 그 뒤로도 큰 페이스 하락이 없다는 점인데요. 커뮤니티에 올라온 그의 레이스 리포트들을 보면 초반부터 쭉 밀어붙이는 특유의 패턴이 반복됩니다. 그저 ‘저 세상 레벨’인데요. 사람 자체가 다르다며 러너들은 혀를 내둘렀죠.


(출처=유튜브 채널 '낭만러너 심진석' 캡처)
(출처=유튜브 채널 '낭만러너 심진석' 캡처)


그를 더 특별하게 만든 건 ‘無 장비’인데요. 러닝 시장이 기술과 데이터 분석 중심으로 고도화되던 시기, 그는 스마트워치 없이 ‘시간 감각만으로’ 대회를 완주했습니다. 대회 후 기록증을 보고서야 자신이 몇 분에 달렸는지 아는 식이었죠. 올해 처음 스마트워치를 착용해 본 그는 심박수 137이라는 예상 밖의 수치를 보고 “제가 이렇게 낮게 나오니까 사람들이 더 의심하더라”고 말했는데요. 사람들의 다양한 질문 공세에 지쳐 결국 그는 시계를 벗어버렸습니다.

러닝 커뮤니티에서 그가 ‘낭만러너’라 불렸던 이유는 기록 양상만이 아니었는데요. 그는 일상에서도 늘 “그냥 뛰고 싶어서 뛰는 사람”으로 통했습니다. 과시용 정보나 인증샷 따위는 없었죠. 유튜브 채널 ‘낭만러너 심진석’에서도 그는 출근길에도 러닝과 함께하는 일상을 선보였는데요. 건설 현장에서 비계공으로 일하는 그는 노동 시간 탓에 평일에 따로 훈련할 시간이 없자 약 8km의 출퇴근길을 마라톤 훈련으로 활용하고 있었죠. 그러면서 현장에서 사용하는 작업복과 안전화를 그대로 신고 뛰었는데요. 그저 뛰고 싶던 러너. 러닝화에 집착했던 러너들을 모두 숙연하게 했죠.


(출처=tvN ‘유 퀴즈 온 더 블럭’ 캡처)
(출처=tvN ‘유 퀴즈 온 더 블럭’ 캡처)


그런데 지금 한국의 러닝 문화는 그의 단순함과는 좀 거리가 먼데요. 추산 러닝 인구 1000만 명. 마라톤 대회가 한해에만 약 500개가 열렸죠. 마라톤 참가자가 100만 명을 돌파했고 사고도 역대 최다라는 보도까지 나왔는데요. 이 수치들은 단순히 유행을 넘어 러닝이 거대한 생활문화가 되었음을 보여줍니다.

과거 골프는 높은 비용과 고착화된 인프라 탓에 떨어져 나가는 이들이 많았고 테니스 역시 시설 부족 문제가 발목을 잡았는데요. 러닝은 이들의 빈자리를 완벽하게 채웠습니다. 시간 제약 없이 어디서든 할 수 있는 데다 혼자 해도 외롭지 않고 커뮤니티 만들기도 어렵지 않죠.


▲8일 서울 광진구 뚝섬한강공원 수변무대 일대에서 열린 ‘제1회 스타와 함께하는 기부런’에서 참가자들이 힘차게 출발하고 있다. 이투데이가 주최한 이번 행사는 '달리기를 통해 건강과 상생의 문화를 만들자'는 슬로건 아래, 시민들의 일상 속 스포츠 활동을 기부와 연결해 사회적 가치를 창출하기 위해 마련됐다. 평소 많은 기부와 선행을 하며 선한 영향력 확산에 앞장서는 가수 션 등과 시민 5000여 명이 함께한 ‘스타와 함께하는 기부런’ 수익금 일부는 루게릭 환우를 위해 ‘승일희망재단’에 기부된다. 조현호 기자 hyunho@
▲8일 서울 광진구 뚝섬한강공원 수변무대 일대에서 열린 ‘제1회 스타와 함께하는 기부런’에서 참가자들이 힘차게 출발하고 있다. 이투데이가 주최한 이번 행사는 '달리기를 통해 건강과 상생의 문화를 만들자'는 슬로건 아래, 시민들의 일상 속 스포츠 활동을 기부와 연결해 사회적 가치를 창출하기 위해 마련됐다. 평소 많은 기부와 선행을 하며 선한 영향력 확산에 앞장서는 가수 션 등과 시민 5000여 명이 함께한 ‘스타와 함께하는 기부런’ 수익금 일부는 루게릭 환우를 위해 ‘승일희망재단’에 기부된다. 조현호 기자 hyunho@


실제로 올해 11~12월 등록 대회만 해도 130개가 넘는데요. 같은 날 전국 10곳 이상에서 동시에 마라톤이 열리는 셈이죠. 지자체와 민간 운영사가 앞다퉈 대회를 만들면서 ‘대회 포화 시대’라는 말까지 나오는데요. 각종 기부런, 기업 후원 런, 브랜드 콜라보 레이스, 지역 축제형 마라톤 등 형태도 다양해졌습니다.

반면 문제점도 커졌는데요. 대회가 급증하면서 제대로 준비되지 않은 행사도 늘었고, 급수대 부족·코스 안내 오류·기록칩 미작동 같은 운영 미숙 사례가 사회관계망서비스(SNS)와 지역 뉴스에서 반복됐습니다.

러닝 크루 문화가 확산되면서 시민 공간과 충돌하는 장면도 늘었는데요. 20~30명씩 도열해 달리며 상의를 벗거나 큰 함성을 지른다는 민원이 반복적으로 들어오자 여의도공원은 9월에 ‘비켜요 강요 금지’, ‘상의 탈의 금지’, ‘무리 달리기 금지’라는 안내문을 설치한 바 있죠. 러닝 열풍 자체는 모두에게 열려 있는 문화이지만, 공간을 공유하는 방식은 사회적 숙제를 남겼는데요.


▲고가 러닝화, 러닝 조끼, 러닝 벨트, 러닝복, 러닝 양말, 러닝 무릎보호대, 러닝 모자 홍수 (사진제공=롯데백화점)
▲고가 러닝화, 러닝 조끼, 러닝 벨트, 러닝복, 러닝 양말, 러닝 무릎보호대, 러닝 모자 홍수 (사진제공=롯데백화점)


이어 러닝 자체의 풍경도 달라졌습니다. 러너들 사이에서 고가 장비 경쟁이 시작되면서 ‘러닝화 계급도’가 만들어졌고 ‘러닝 장비 계급도’까지 퍼졌죠. 러닝 조끼, 러닝 벨트, 러닝복, 러닝 양말, 러닝 무릎보호대, 러닝 모자 등 장비도 다양해졌는데요. 발매가 40만 원이 넘는 카본 러닝화는 기본템 취급을 받으며 일부 모델은 리셀 시장에서 2~4배 가격으로 거래되고 있습니다. 새티스파이·온러닝·호카오네오네·디스트릭트 비전 같은 고급 브랜드가 러닝 시장뿐 아니라 패션 시장을 뒤흔들었는데요. 러닝화 오픈런에 3만 명이 몰려 3시간 대기해야 했다는 사례까지 나왔죠.

이런 흐름 속에서 심진석의 존재는 오히려 더 특별하게 다가옵니다. 장비 없이, 숫자 없이, 공식을 뒤흔들며 뛰고, 기계적 관리보다 자신의 감각을 믿는 ‘낭만’ 말이죠. 기록보다는 마음을, 장비보다 책임을 우선하는 자세. 이것이 지금의 러닝 문화가 빠르게 잊어가고 있는 가치일지도 모릅니다. 많은 러너가 기록 단축과 장비 선택에 몰두하는 동안, 그는 자신이 달리는 이유를 한 번도 잃지 않았습니다.


(출처=tvN ‘유 퀴즈 온 더 블럭’ 캡처)
(출처=tvN ‘유 퀴즈 온 더 블럭’ 캡처)

(출처=tvN ‘유 퀴즈 온 더 블럭’ 캡처)
(출처=tvN ‘유 퀴즈 온 더 블럭’ 캡처)


사실 모두가 같은 속도와 같은 이유로 달릴 필요는 없죠. 어떤 이들은 기록을 향해 질주하고, 어떤 이들은 퇴근길 스트레스를 지우기 위해, 또 어떤 이들은 가족을 위해 달리는데요. ‘낭만 러너’ 심 씨는 뇌전증을 앓고 있는 형을 향해 달렸던 그 마음을 잊지 않은 채 오늘도 어딘가의 코스를 누비고 있을 테죠.

그저 “3, 2, 1, 땡 하면 나가는 타입”이라고 웃으며 말한 낭만 러너. 기술과 장비, 기록과 인증이 복잡하게 얽힌 시대. 심 씨의 이 단순함은 현재의 러너 수백만 명이 잊고 있는 무언가를 되묻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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