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시각] 사상 최대 중국 무역흑자가 주는 경고장

입력 2025-12-15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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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준형 국제경제부장

중국의 무역수지 흑자가 사상 최대치를 기록했습니다.

우리 관세청에 해당하는 중국 해관총서 발표를 보면 올 들어 11월까지 누적 무역흑자는 1조759억 달러(약 1585조 원)로 집계됐지요. 12월 무역수지가 이변이 없다면 사상 처음으로 연간 흑자가 1조 달러를 넘어섭니다.

사상 최대 무역흑자는 단순히 잘사는 이웃 나라 경제지표를 넘어섭니다. 라이벌인 미국을 상대로 한 경고임은 물론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위협이 될 수도 있지요.

우리에게도 결코 남의 일이 아닙니다. 중국의 무역흑자가 사상 최고 수준을 향해 치닫는 동안 세계는 다시 벽을 쌓기 시작했거든요.

미국과 유럽은 이미 ‘경쟁’이 아니라 ‘구조적 왜곡’이라는 결론을 내린 듯합니다. 자유무역이라는 말은 여전히 외교 문서에나 남아 있습니다. 실제 정책의 언어는 완전히 달라졌습니다. 중국은 전기차, 배터리, 태양광, 철강, 화학, 전자부품에 이르기까지 거의 모든 전략 산업에서 압도적인 생산 능력을 확보했습니다. 문제는 이 생산이 중국 내수는 물론 세계 수요를 기준으로 설계된 것이 아니라는 점인데요.

중국 내수가 충분히 커지지 않은 상황에서 공급 과잉은 해결점을 못 찾아 고스란히 수출로 흘러나왔습니다. 세계 수출시장이 중국의 완충 장치가 된 셈이지요.

이 지점에서 사상 최대 무역흑자는 무역 상대국의 산업 기반을 직접 압박합니다. 미국과 유럽이 중국을 상대로 관세를 부과하고 무역 불공정 여부를 조사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이들은 단순하게 중국의 가격 경쟁력을 두려워하는 게 아닙니다. 중국식 산업 정책이 자국 산업을 구조적으로 붕괴시킬 수 있다는 가능성을 두려워하는 것이지요.

21세기 들어 시작한 보호무역 확산은 우발적인 국제관계에서 시작하지 않았습니다. 중국의 급부상과 이를 막아내려는 강대국들의 구조적인 힘겨루기인 셈이지요.

세계는 이미 ‘효율의 세계화’에서 ‘안보의 지역화’로 이동하고 있습니다. 공급망은 더는 값싼 곳을 찾지 않습니다. 돈이 조금 더 들더라도 자국 산업을 보호할 수 있는 곳을 찾는 셈이지요. 그리고 중국은 그 기준에서 점점 의심의 대상이 되고 있습니다. 값싼 중국산 원료와 공산품에 대한 의존도를 낮추기 위해 더 비싼 나라를 찾는 것도 이런 맥락입니다.

예컨대 값싼 중국산 리튬 대신 원재료 가격과 물류비가 더 비싼 남미 리튬을 들여오는 것도 같은 맥락입니다. 그뿐인가요. 중국산 요소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우리나라에서 중국산 요소의 점유율은 80%에 가까웠는데요. 중국이 요소 수출을 통제하자 당장 우리나라 디젤차들이 발을 동동 구르는 현상까지 이어진 적이 있습니다. 고작 4년 전인 2021년 11월 이야기입니다. 결국 우리는 서둘러 수입선 다변화에 나섰고, 극단적인 중국산 요소 비율을 낮출 수 있었습니다. 때에 따라 중국은 위험한 동반자인 셈이지요.

이처럼 중국산에 점령당하는 글로벌 정세 속에서 정작 문제는 한국의 위치입니다. 한국은 중국과 경제적 동반자이자 경쟁자입니다. 동시에 중국 공급망의 일부이기도 하지요. 중국이 원재료를 수출하면 한국은 이를 바탕으로 중간재 및 기술 수출을 확대합니다. 그러나 최종 시장에서는 두 나라가 정면으로 충돌하게 됩니다. 전기차, 배터리, 철강, 디스플레이, 석유화학까지 한국이 먹고사는 거의 모든 산업에서 중국은 이제 ‘파트너’가 아니라 ‘가격 파괴 경쟁자’가 된 셈이지요.

더 심각한 문제는 보호무역의 다음 표적입니다. 미국과 유럽이 중국을 겨냥해 쌓은 장벽은 언젠가 다른 나라에도 적용될 수 있습니다. 한국은 중국만큼 크지 않지만, 특정 산업에서는 이미 ‘과도한 수출국’으로 분류될 위험이 있습니다. 전기차 배터리, 철강, 화학제품이 그렇습니다.

중국을 막기 위해 만든 규칙이, 한국을 걸러내는 그물이 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는 뜻이지요. 한국의 수출 구조는 여전히 외부 시장 의존도가 높습니다. 내수는 충분히 크지 않고, 수출이 흔들리면 산업 전체가 흔들리는 구조이지요. 이 구조에서 보호무역의 확산은 단순한 외부 변수에 그치지 않고 존립의 문제로 번질 수 있습니다.

중국의 무역흑자가 커질수록, 세계는 더 거칠게 반응할 것이고, 그 여파는 한국 기업에도 도달합니다. 중국의 사상 최대 무역흑자는 협력의 결과가 아니라, 불균형의 증거로 해석됩니다. 이 간극이 좁혀지지 않는 한, 갈등은 불가피해집니다.

그리고 그 갈등은 관세표와 통계표를 넘어 정치와 외교, 안보의 영역으로 확산될 우려를 키웁니다.

한국은 이 현실 앞에서 더는 모호한 태도를 유지할 수 없습니다. 중국과의 교역을 유지하되 산업 경쟁력의 기준을 다시 세워야 합니다. 가격이 아니라 기술, 규모가 아니라 신뢰, 물량이 아니라 지속성이 관건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한국은 중국과 함께 보호무역의 파도에 휩쓸릴 수 있습니다. 중국의 무역흑자는 거대한 변화의 상징이자 출발점입니다. 세계는 이제 하나의 시장이 아닙니다. 여러 개의 시장, 여러 개의 규칙, 여러 개의 동맹으로 나뉘고 있습니다.

이 변화의 한복판에서 한국은 선택을 미루기 어려운 위치에 서 있습니다. 중국의 흑자를 지켜보는 일은 곧 한국 산업의 미래를 시험하는 일입니다. 무역전쟁은 이미 시작됐고 다음 표적이 어디가 될지는 숫자가 아니라 정치가 결정합니다. 정신을 바로잡아야 합니다. 중국의 ‘사상 최대 무역흑자’는 분명히 우리에게는 경고장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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