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의 창] ‘신데렐라’가 죽어야 하는 까닭

입력 2025-12-12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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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현택 연필뮤지엄 관장

착한 신데렐라는 갖은 고생 끝에 왕자를 만나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았다.’ 물론 언젠가는 죽었을 것이다. 그러나 결혼 이후의 불행이나 죽음은 말하지 않는다. 이 동화는 선은 보상받고 악은 벌을 받는다는 믿음을 준다. 하지만 현실 반영 측면에서는 꽝이다. 아름답지만 공허한 이야기다.

신데렐라는 아직 죽지 않았다. 시대를 건너 여전히 살아 있다. 유튜브의 짧은 영상 속에서, SNS 피드의 어딘가에서, ‘가난하지만 착한 여자’와 ‘재벌 2세 멋진 남자’의 이야기가 끊임없이 부활한다. 이제 그것은 과거의 교훈이 아니라, 현실을 견디기 힘든 청춘들이 피로와 허무를 달래기 위해 소비하는 1분짜리 꿈이 되었다.

이 짧은 영상의 세계에서는 노력도, 좌절도, 기다림도 없다. 현실에서 성실함이 배신당하는 것을 자주 본 세대에게, 사랑은 계급을 뛰어넘는 기적이 되고 돈은 진심을 증명하는 수단이 된다. 클릭 한 번으로 인생이 뒤집힐 것 같은 이 달콤한 판타지는, 결국 삶의 허무를 더 심화시킨다.

전형적인 서사는 이렇다. 착하고 성실한 여자가 정의로운 남자를 만나 사랑에 빠진다. 명품매장에서 가난하다고 무시당하던 그녀 앞에 남자가 나타나 매장을 소유한 기업의 대표임을 밝히고, 매니저를 해고한다. 시청자는 통쾌함을 느끼지만, 이 이야기의 논리는 단순하다. 가난으로 무시당했지만, 더 부유한 사람의 힘으로 구원받는다. 결론은 돈이다.

과거의 신데렐라가 ‘착하면 복을 받는다’는 믿음을 상징했다면, 오늘의 버전은 ‘한 방에 역전할 수 있다’는 환상을 판다. 세상이 공정하지 않다는 사실을 너무 일찍 깨달은 청춘에게 성실은 미덕이 아니라 패자의 변명이 되었다. 믿음이 무너질수록, 가상의 신데렐라는 끈질기게 살아남는다.

현실은 다르다. 기다림과 시행착오를 거치며 조금씩 쌓이는 힘이야말로, 인생에서 진짜 힘이 되는 법이다. 하지만 숏폼 영상은 그 과정을 다 없애 버린다. “일단 성공하면 된다”는 말이 일상이 된 시대, 청춘은 시간을 믿지 않는다. 길게 쌓기보다 빠르게 얻는 길을 택한다. 가상에서는 신데렐라가 단번에 부와 사랑을 얻지만, 현실에서는 그 허상을 좇다 인생을 잃는다.

우리는 너무 오랫동안 신데렐라를 죽이지 못한 채 살아왔다. 여전히 “나도 언젠가”를 되뇌며, 동화의 끝을 현실의 목표로 삼는다. 그러나 동화는 위로를 위한 이야기일 뿐, 현실을 타개하는 도피처가 아니다. 우리가 잃은 것은 교훈이 아니라, 그 교훈을 받아들이려는 마음이다.

미디어는 끊임없이 새로운 신데렐라를 만들어낸다. 화면을 넘길수록 세상은 더 빠르게, 더 자극적으로 우리를 사로잡는다. 그러나 진짜 삶은 그렇게 흘러가지 않는다. 행복은 ‘한 방’이 아니라, 끝없이 반복되는 시행착오와 지난한 노력 속에서 이루어진다. 신데렐라가 왕자를 만나 ‘행복하게 살았다’는 말은 아름다운 마무리를 위한 장치일 뿐이다. 행복도 유한해야 힘을 얻는 것이고, 인간의 한정된 삶도 의미를 가진다.

결국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단번에 사랑과 부를 얻는 신데렐라 신화가 아니다. 중요한 것은 세상의 모든 것이 유한하다는 자각이다. 끝이 있음을 알 때 비로소 삶을 진지하게 바라보고, 순간의 행복이 얼마나 소중한지 깨닫게 된다. 이제는 신데렐라를 죽여야 한다. 닿지 않는 환상을 버리고, 현실의 질서 속으로 깨어나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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