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산율 하락, 손자ㆍ손녀 위한 소비↑
여행 패키지도 고령층 중심으로 대전환

일본 고령층의 씀씀이가 꾸준히 늘어나, 주요 소비 주체로 급부상했다. 급여 저축만으로 재산을 키워온 과거와 달리, 고령층 소비가 일본 전체 경제에서 적잖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특히 여행 경비를 비롯해 손주를 위한 소비에 돈을 아끼지 않는 것으로 조사됐다.
29일 일본 소니생명보험사의 ‘2025 시니어 생활의식 조사’ 결과를 보면 일본 고령층은 이제 ‘절약’이라는 오래된 습관에서 점진적으로 벗어나고 있다. 고물가와 장기 저성장이라는 전반적 환경에도 불구하고, 이들의 지갑은 다시 여행지와 손주들 쪽으로 열리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일본 사회가 맞이한 새로운 고령층 소비의 풍경을 구체적인 숫자로 드러낸다.
지난달 8~9일 온라인 설문으로 진행한 이번 조사에는 일본 전국 50~79세 남녀 1000명이 참여했다. 응답자들이 꼽은 ‘요즘 가장 큰 즐거움’ 1위는 △여행(45.2%)이었다. 뒤이어 △TVㆍ드라마 시청(38.3%) △영화 관람(28.6%)이 뒤를 이었다. 외출과 여가를 회복하려는 시니어의 움직임이 고스란히 반영된 대목이다.
고령층이 쓰는 월평균 여행 관련 지출은 3만4000엔(약 32만 원)으로 나타났다. 2020년 2만4000엔에서 3년 연속 상승했다. 일본 소비지표 전반에서 나타나는 고물가와 소비 둔화 흐름을 고려하면, 고령층의 여행 관련 지출은 오히려 꾸준히 탄력을 보이며 상승 중이다.
여행에 이어 손자와 손녀에게 쓰는 지출도 늘어났다. 최근 1년 동안 손주에게 사용한 지출은 평균 11만3074엔(약 123만 원)으로 전년보다 약 8% 증가했다. 일본 내에서 ‘할아버지ㆍ할머니’가 탄탄한 소비층으로 자리 잡은 셈이다.
시니어 소비의 중심축이 실물 재화보다 경험, 특히 가족과의 관계에서 나오는 정서적 만족감 쪽으로 기울고 있다는 해석도 가능하다. 고령층의 취향과 지출 구조가 더는 과거의 절약형 패턴에 머물러 있지 않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일본 고령층은 과거 ‘아껴야 잘 산다’라는 명제를 철저하게 지켜온 세대다. 이들이 지갑을 열기 시작하면서 일본 정부의 주요 정책도 변환기를 맞고 있다. 일본 정부가 장기 고물가에 대응하기 위해 소비 촉진책을 고민하는 가운데, 시니어들의 지출 경향은 정책적으로도 중요한 단서를 제공한다. 경제적 불확실성이 높아질수록, 생활기반이 안정된 고령층의 소득ㆍ자산은 지역경제 소비를 떠받치는 역할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일본 사회는 이미 전체 인구의 30%가 65세 이상인 초고령 단계에 진입했다. 이 거대한 세대가 어떤 소비를 선택하느냐는 일본 경제의 체력을 좌우하는 요소가 됐다고 소니생명은 분석했다.
모리모토 준타로 소니금융그룹 수석 분석가는 이번 설문조사 결과를 바탕으로 “코로나19 팬데믹 당시, 과도하게 미래를 걱정하던 국면이 조금씩 풀렸다. 지금은 즐거움에 돈을 돌리는 움직임이 보인다”라며 “특히 손주에게 과감하게 쓰는 부유한 조부모층이 무시할 수 없는 소비 계층으로 부상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