中감산 기대했지만...실질적 조절로 이어지지 못해
“철강 짓누르는 요인들, 빠른 해소 어려워”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관세 폭탄·중국발 공급과잉·탄소절감 압박에 고환율까지 겹쳤다. 국가 기간산업 철강업이 벼랑 끝에서 버티는 중이다. 수년 째 이어진 침체가 더 깊어지는 모양새다. 업계에서는 “내년에는 더 쉽지 않을 것”이라며 위기감을 토로하고 있다. ‘K-스틸법’ 입법으로 당장 보릿고개는 넘길 지 몰라도 근본적 해결책이 되기에는 한계가 있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우선 미국 시장의 고관세 리스크는 해소될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현재 한국 철강업계가 미국에 내는 관세는 50% 수준으로, 사실상 가격 경쟁력이 붕괴된 상태다. 이번 한미 관세협상은 물론이고 팩트시트에서 업계가 기대가 높았던 철강 관세 완화는 논의 테이블에조차 오르지 못했다. 미국은 철강이 포함된 407개 제품에 품목별 관세를 부과 중인데, 최근 약 700여개 품목 추가 관세 적용 여부를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의 고율 관세로 포스코와 현대제철은 3월 1150만 달러, 4월 1220만 달러, 5월 3330만 달러, 6월 4260만 달러, 7월 2760만 달러, 8월 2020만달러의 관세를 부담했다. 연말까지 두 회사가 납부해야 할 관세 규모는 총 2억8100만 달러(4114억 원)로 추산된다. 이는 양사 연결 기준 지난해 합산 영업이익의 17.6%에 해당하는 수준이다.
기댈 곳이던 중국 철강 감산도 별다른 효과가 없다. 중국 정부가 올해 들어 철강 생산량 감축을 공식화했지만, 실질적인 공급 조절로 이어지지 못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철강업계 관계자는 “전체 생산량을 줄인다기 보다는 정부가 지역, 업체별로 할당량을 정하는 수준에 그친 것으로 보고 있다”면서 “아무래도 1차 산업 특성상 지역 경제와 밀접하게 연관돼 있다 보니 큰 폭의 감산은 어려울 전망”이라고 말했다.
문제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철강은 대표적인 탄소 다(多)배출 산업으로, 탄소 감축 부담이 크다. 유럽연합(EU)의 탄소국경조정제도(CBAM)가 본격 도입되고, 미국 인플레이션감축법(IRA) 규범이 강화되면서 친환경 공정 도입은 선택이 아닌 필수로 자리 잡았다. 또 정부가 '2035 국가 온실가스 감축 목표(2035 NDC)'를 2018년 대비 53~61%로 정하면서 철강업계는 부담 가중을 호소하고 있다.
엎친데 덮친격으로 1400원을 넘어 고공행진하는 환율 충격까지 더해졌다. 철광석·유연탄 등 주요 원자재는 대부분 달러로 거래된다. 올해 원·달러 환율이 고공행진을 이어가면서 원가 부담은 커졌다. 철강사들은 가격 전가에 나서고 있지만 건설·자동차·기계업계 역시 경기 둔화를 겪는 상황이라 판매가격 인상도 쉽지 않은 상황이다.
철강업계 관계자는 “트럼프 대통령이 촉발한 고관세는 자유무역에서 보호무역으로 넘어가는 완전히 판을 바꾸는 게임”이라며 “철강산업이 제일 먼저 타겟이 됐다”고 말했다. 이어 “기축통화로써 달러의 지위가 흔들리고 재정적자, 무역적자를 해결하기 위한 임시처방으로 고관세 고환율이 시작됐다. 지금 구조로 보면 임시처방이 아닌 장기처방으로 갈 확률이 높다”고 말했다. 중국발 저가 공세도 중국 경기 부진이 근본 원인인데 이 역시 빠르게 해결되기 어렵다고 진단했다.
K-스틸법에 수소환원제철과 같은 탈탄소 철강 기술을 ‘녹색철강기술’로 지정하고 기술 개발·투자에 대한 보조금, 융자, 세금 감면, 생산 비용 지원 등이 포함된 것에 대해 환영하면서도 좀 더 적극적인 지원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한국철강협회에 따르면 포스코가 보유한 기존 고로를 모두 수소환원제철 설비로 전환할 경우 30년간 54조 원이 필요하다. 관계자는 “K-스틸법 제정은 지속가능한 철강 산업을 위한 논의의 시작점에 불과하다. 아직 갈 길이 멀다”고 덧붙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