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국내에서 세운 4구역 재개발 고층 건물 계획을 두고 논란이 지속되고 있으나 해외 주요 도시는 각국의 법제도에 맞춰 문화유산 보존과 도시 개발의 조화를 모색하고 있다. 우리도 세계유산 주변 고도나 경관을 어떻게 관리할지에 대한 명확한 기준을 세워 심의마다 판단이 달라지고 갈등을 유발하는 구조를 깨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24일 건설업계에 등에 따르면 프랑스 파리는 도심 전체 경관 관리를 강화하면서 37m 이상 신축을 원칙적으로 금지하는 한편 파리 리브고슈 등 일부 지역은 고도제한을 37m에서 137m로 완화해 지역별 차등 규제를 두고 있다.
일본 도쿄는 보존과 개발을 병행하는 방식을 채택했다. 황궁 일대가 국가 지정 특별사적임에도 도시재생특별지구 제도를 통해 민간이 역사 건축물 복원, 녹지·보행공간 확충 등 공공기여를 약속하면 용적률과 높이 제한을 유연하게 조정한다. 지난 4월 황궁 앞 오테마치–마루노우치–유라쿠초 일대에서는 노후 빌딩 36곳이 150~200m급 빌딩으로 재개발됐다.
로마는 기존 역사 건축물을 박물관·학교·사무공간으로 재활용하는 방식으로 시대에 맞는 활용에 중점을 두고 있다. 로마 캐피톨린 정부, 문화유산부, 라치오 지역, 로마 교황청 대사관이 서명한 협약을 통해 ‘로마 캐피탈레’를 세계유산 관리의 주요 주체로 지정하고 기술·과학 위원회를 통해 개발과 보존의 균형에 대한 전문적 조언을 제공하고 있다. 관련 관리계획은 개발과 보존 원칙, 전략적 계획 구역, 관광 지속성, 젠트리피케이션 방지 등 다양한 요소를 포괄한다.
영국 런던에서는 세계유산인 런던 타워(Tower of London) 인근에 72층 규모의 초고층 ‘더 샤드(The Shard)’가 건립되는 과정에서 갈등이 발생한 적이 있다. 유네스코는 영국 정부에 여러 차례 경관영향평가를 요구했고 건설은 허용됐지만 “추가 고층 개발이 이어지면 시각적 완전성(integrity)이 훼손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이후 영국은 세계유산 주변 고도 관리 기준을 한층 강화했다.
해외 사례와 달리 국내에서는 분명한 기준이 없다. 종묘가 세계유산임에도 주변 고도와 경관을 어떻게 관리할지에 대한 규정이 법령으로 명확히 마련돼 있지 않아 사업별로 심의 결과가 달라지는 구조가 이어지고 있다.
국가유산청에 따르면 유네스코는 서울시의 종묘 앞 고층 개발과 관련 세계유산영향평가(HIA) 실시를 권고했으나 서울시는 회신하지 않았다. 유네스코의 권고가 법적 구속력이 없어 응하지 않은 것으로 풀이된다.
지난해 11월 시행된 세계유산법은 세계유산의 탁월한 보편적 가치에 영향을 미치는 개발 사업에 대해 세계유산영향평가와 문화유산위원회 심의를 거치도록 규정하고 있지만 이 법의 적용 범위와 절차를 구체적으로 정하는 시행령은 계류 중이다.

이은형 대한건설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주요 문화재 인근은 원칙적으로 저층 위주로 관리하는 게 바람직하다”면서도 “세운 일대처럼 노후도와 낙후가 심한 구역은 도시 전체 경관과 경쟁력, 미래상을 고려해 어느 정도 정비가 필요한 것은 사실”이라고 말했다. 이어 “해외도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기 전에 한 번은 대규모 정비와 명확한 규칙 설정을 거쳤듯이 한국도 ‘아무것도 하지 말자’와 ‘무조건 개발하자’ 사이에서 현실적인 기준을 세울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법적 의무를 떠나 서울시가 이번 논란 해소를 위해 전향적으로 나서야 한다는 견해도 있다. 최은영 한국도시연구소장은 “세계유산 주변 개발을 지금 서울시가 추진하는 방식으로 허용하는 사례를 거의 보지 못했고 유네스코의 영향평가를 요구도 국제적으로 통용되는 기본 절차”라며 “서울시는 요구사항이 무엇인지 정확히 파악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