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연금 구조개혁 방안을 논의하는 국회 연금개혁 특별위원회(연금특위) 민간자문위원회가 미적립 부채 인정 여부를 놓고 갈등을 빚고 있다. 미적립 부채는 개별 연금제도의 지속가능성을 보여주는 지표 중 하나지만, 이 지표를 어떻게 해석하느냐에 따라 연금개혁 방향이 달라질 수 있어서다.
19일 연금특위에 따르면, 자문위는 14일 첫 회의를 열어 3월 국회를 통과한 ‘국민연금법’ 개정안을 평가했다. 자문위는 다음 달 5일 2차 회의, 19일 3차 회의를 열어 논의를 이어갈 예정이다. 첫 회의에서 자문위원들은 미적립 부채를 놓고 격론을 벌였다. 자동조정장치 도입을 주장하는 쪽에서 그 근거로 미적립 부채를 인용하자 다른 자문위원들이 집단 반발했다. 연금개혁 의제조차 설정되지 않은 상황에서 지표 하나로 자문위가 전쟁터가 됐다.
◇미적립 부채가 뭐기에….
미적립 부채는 수입을 초과하는 예상 지출액의 총계를 의미한다. 가령, 은행이 고객으로부터 5만 원을 받고 10만 원을 돌려주기로 계약했다면, 이 중 5만 원은 회계상 부채이나 실제 부채가 발생하지 않는 적립 부채이며, 남은 5만 원이 미적립 부채다. 3월 국민연금법 개정에 따른 보험료율 13%, 소득대체율 43%는 가입자에게 6만 원을 받아 10만 원을 돌려주는 구조다.
적립금에서 급여가 지출되는 현시점에서 미적립 부채는 수급·가입자들에게 영향을 미치지 않으나, 적립금이 소진되면 미적립 부채가 추가 비용으로 청구된다. 이런 상황에 직면했을 때 국회·정부의 선택지는 많지 않다. 이 시기 가입자들에게 ‘10만 원을 내고 5만 원을 돌려받는’ 약탈적 연금제도 가입을 강제하거나, 수급자들의 연금액을 대폭 삭감해야 한다. 국민연금법 개정 이후 보건복지부의 참고자료에서 제시된 부과방식 비용률 전망을 기준으로 2079년 보험료율이 20%까지 인상돼도 수급자들은 약정된 연금액의 절반만 받을 수 있다.
이런 상황을 막으려면 보험료율을 더 인상하거나 낸 돈의 2배 이상을 받는 현재 수급자들의 연금액을 합리적으로 조정해야 한다. 다만, 보험료율 추가 인상은 단기적으로 현실성이 떨어진다. 미적립 부채를 근거로 한 연금개혁 논의는 자동조정장치 논의로 귀결될 수밖에 없다.
◇개념 인정하는 순간 개혁 방향도 정해져
‘소득보장론’ 측 전문가들은 미적립 부채라는 개념 자체를 부정하고 있다. 미적립부채를 인정하는 순간 연금개혁 방향이 지속가능성을 중심으로 설정돼서다.
추계모형을 특정 시점부터 수입·지출이 중단되는 ‘폐쇄형’으로 설계하거나, 화폐의 실질가치 변화율(할인율) 대비 기금운용 수익률을 높게 설정하면 미적립 부채가 줄어드나, 아무리 가정·변수를 관대하게 적용해도 800조 원 이상의 미적립 부채가 발생한다. 800조 원이든, 1800조 원이든 천문학적 규모의 미적립 부채가 존재하는 상황에선 소득보장론의 명분이 떨어진다.
‘미적립 부채는 국제적으로 통용되지 않는 개념’이라는 소득보장론 측 주장은 사실과 다르다. 미적립 부채는 암묵적 부채, 미적립 채무 등 다양한 표현으로 국제통화기금(IMF),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등 국제기구뿐 아니라 미국 등 주요국에서 핵심 재정지표로 활용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