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공지능(AI)이 한국 행정 시스템을 바꾸고 있다. 단순 반복 업무를 자동화하고 데이터를 사전 분석해 위기 징후를 포착하는 등, '사후 처방'에서 '사전 예방'으로의 진화가 한창이다. AI 도입이 행정 서비스의 질적 도약을 이끌고 있다는 평가다.
서울시가 13일 발표한 '지능형 행정 자동화' 성과는 뚜렷하다. AI와 로봇프로세스자동화(RPA)를 결합, 5개 신규 과제에 적용한 결과 월 1130시간이 소요되던 업무가 538시간으로 줄었다. 약 52%의 시간이 단축돼 공무원 3명 몫의 업무를 AI가 대신하는 셈이다.
핵심은 '비정형 업무'의 자동화다. 생성형 AI가 RPA와 결합해 판단과 분석까지 맡는다. '청소년 가출 게시글 대응 시스템'이 대표적이다. RPA가 징후 게시글을 자동 수집하면, AI가 감정·상황을 분석해 맞춤형 상담 문안을 생성한다. 24시간 모니터링으로 위기 청소년 조기 발견율이 높아졌다.
서울시는 2026년까지 총 2064억 원을 투입해 AI 행정 혁신을 가속화한다. 강옥현 서울시 디지털도시국장은 "AI는 인력 대체가 아닌, 공무원이 창의적 업무에 집중하게 하는 디지털 혁신의 기반"이라고 밝혔다.
중앙정부 차원의 AI 도입 속도도 빨라졌다. 국민권익위원회는 6월부터 범정부 민원 포털인 '국민신문고'에 생성형 AI 기술을 전면 도입해 운영 중이다. 연간 1000만 건이 넘는 민원 데이터를 처리하기 위해 도입된 이 시스템은 민원 답변 작성과 번역 업무에서 두각을 나타내고 있다.
새로 도입된 '민원 답변문 작성 지원 서비스'는 AI가 민원 요지를 파악해 담당자에게 답변 초안을 제공함으로써 업무 처리 속도를 높였다. 특히 주목할 점은 '다국어 민원 번역 서비스'다. 국내 거주 외국인이 16종의 자국어로 민원을 제기하면, AI가 이를 자동으로 감지해 한국어로 번역해 주고 답변까지 해당 언어로 변환해 발송한다. 별도의 외부 번역 용역 없이도 즉각적인 민원 처리가 가능해져 예산 절감과 보안성 강화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았다는 평가다.
기술 도입에 따른 부작용을 막기 위한 제도적 안전장치도 마련됐다. 행정안전부는 3일 공공부문 AI 활용 확산에 발맞춰 '공공부문 인공지능 윤리원칙'을 제정했다. 이는 AI 확산에 따른 편향성 문제나 개인정보 침해 우려를 해소하기 위한 조치다.
이번 윤리원칙은 공공성, 투명성, 안전성 등 6대 원칙을 기반으로 하며, 일선 공무원들이 실무에서 즉시 활용할 수 있도록 90여 개의 세부 점검 리스트를 포함했다.
윤호중 행정안전부 장관은 "정부 효율성을 높이면서도 국민의 기본권을 지키기 위해 윤리원칙은 필수"라며 "공공부문의 AI 전환이 국민에게 신뢰받는 서비스로 정착되도록 하겠다"라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