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쌀·쇠고기 등 추가 개방 전혀 없어”…절차 개선 부담은 불가피
시장 접근성 확대 가능성 놓고 통상·농업계 해석 엇갈려 파장 커져

한미 정상회담 공동 설명자료(팩트시트)에 포함된 농식품 분야 조항을 두고 해석 충돌이 거세지고 있다. 미국산 농식품의 한국 시장 접근성이 확대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커지는 반면, 정부는 “쌀·쇠고기 등 민감 품목의 추가 시장개방은 단 한 줄도 없다”며 차단에 나섰다.
16일 정부 등에 따르면 이번 팩트시트의 농식품 관련 조항에는 △농업생명공학제품(GMO) 승인 절차 효율화 △한미 검역당국 간 소통 강화를 위한 ‘U.S. 데스크’ 신설 △미국산 치즈·육류의 일반 명칭 사용 재확인이 포함됐다.
농림축산식품부는 14일 설명자료에서 “정부는 이번 한미 통상협상에서 농산물 추가 시장 개방이 없도록 철저히 방어했다”고 밝혔다. 이어 “식품 및 농산물 관련 비관세장벽 논의를 위해 양국이 협력한다는 내용이 담겼으며, 한미 검역당국 간 소통 강화를 위한 U.S. 데스크 설치도 기존 검역 8단계 절차를 단축하거나 생략하는 조치가 아니고 관세 철폐나 시장 개방과도 무관하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문구 자체가 미국산 농식품의 실제 시장 진입 속도를 높일 수 있다는 점에서 논란은 가라앉지 않고 있다. 미국은 그동안 한국의 GMO 승인 지연을 지속적으로 문제 삼아왔고, 이번 합의문에 ‘효율화·지연 해소’ 표현이 명문화되면서 미국 요구가 상당 부분 반영됐다는 해석도 나온다. 검역 소통 창구를 일원화하는 U.S. 데스크 또한 정부 설명과 달리 실무 처리 속도를 높이는 효과를 낳을 수 있다는 지적이 있다.

쟁점은 크게 다섯 가지로 정리된다. △절차 효율화가 실질적으로 시장 접근성을 높일 수 있다는 점 △GMO 승인 지연 해소가 미국 측 요구 수용으로 비칠 수 있다는 점 △U.S. 데스크가 절차 단축은 아니라도 처리 속도 개선으로 이어질 가능성 △치즈·육류 명칭 사용 재확인이 미국산 가공식품 확대로 연결될 가능성 △‘비관세 협력’ 명문화로 행정·심사 부담이 농식품부에 집중될 수 있다는 점이다.
국내 농업계의 경계심도 커지고 있다. 정부는 “시장개방 조치가 아니다”라고 강조하지만, 절차·승인·명칭 등 비관세 영역의 변화는 결국 수입 증가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다. 과일·치즈·가공식품·육류 등 민감 품목은 절차가 한 단계만 빨라져도 체감 수입량 변화가 즉각 나타날 수 있어 불안이 더욱 크다. 더불어 미국의 상호주의(reciprocal trade) 원칙이 향후 한국 농식품의 대미 수출 규제 강화로 되돌아올 가능성도 거론된다.
이에 대해 농식품부는 절차 효율화가 곧 시장 개방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라는 점을 재차 설명했다. 농식품부는 “농업생명공학제품 관련 위해성 심사 절차에 대한 가이드라인을 마련해 객관적·과학적 심사를 진행하겠다”며 GMO 승인 속도와 시장 확대는 별개라는 입장이다. 또 “체다치즈·살라미 등 일반 명칭 사용 재확인은 기존 관행 유지에 불과하며, 관세 철폐 등 추가 개방을 의미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그럼에도 농업계는 이번 조치가 형식적으론 ‘비관세 협력’이지만 결과적으로는 사실상 시장 개방 효과를 낳을 수 있다고 보고 있다. 절차가 한 단계만 빨라져도 미국산 과일·치즈·가공식품·육류 등 민감 품목의 수입이 즉각 늘어날 수 있기 때문이다. GMO 승인 지연 해소와 U.S. 데스크 설치가 실무 처리 속도를 끌어올린다면 제도적 문턱이 유지돼도 실질적 시장 접근성은 확대되는 구조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익명을 요구한 농업계 전문가는 “비관세 협력이라는 공식 문구와 실제 제도 개선 부담 사이에 해석 차이가 존재하는 만큼, 절차 변화가 향후 시장에 미칠 영향을 예측하고 대비하는 것이 정부의 역할”이라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