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예산·법안 등 국회 협상이 교착상태에서 벗어나지 못하면서 ‘정치발 리스크 프리미엄’이 확대되고 있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는다. 자본시장은 변동성이 커졌고 외환시장이 흔들리면서 기업·가계의 조달비용에도 상방 압력이 형성됐다. 관세 협상 발표 지연 등 대외 변수와 맞물리면 연말까지 불확실성이 계속 높아질 수 있다는 경고가 나온다.
12일 한국개발연구원(KDI)에 따르면 지난해 계엄령과 탄핵 정국으로 급등했던 경제정책불확실성(EPU) 지수는 한때 472.29까지 치솟은 뒤, 올해 6월 새 정부 출범으로 안정세를 보였다. 하지만 최근 다시 상승세로 돌아서 10월 들어 214.08로 반등했다. 한미 관세 협상 결과의 최종 발표가 지연되고, 국내 주식시장 변동성도 연중 최고 수준으로 커지는 등 연말까지 한국 경제의 불확실성이 확대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어서다.
지난달 말 경주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를 계기로 다시 만난 한미 정상이 관세 협상을 마무리 짓기로 했지만 양국의 ‘조인트 팩트시트(공동 설명자료)’ 발표가 늦어지면서 불확실성은 여전하다.
국내 증시는 새 정부 출범 직후 4000선을 돌파했지만, 최근 변동폭이 커졌다.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11월 초(3~7일) 코스피 하루 평균 변동률은 2.36%로 연중 최고 수준을 기록했다. 한 달 전 1%대 초반에 머물던 수준에서 두 배 넘게 확대된 것이다.
외국인 투자자들은 불확실성을 이유로 급격히 자금을 회수했다는 게 전문가들의 시각이다. 11월 첫째 주(3∼7일) 외국인 순매도액은 7조2640억 원으로 사상 최대 규모였다. 같은 기간 원·달러 환율은 28.5원 급등해 1461.5원을 돌파했다. 글로벌 자금이 한국 자산에 요구하는 위험 프리미엄이 높아졌다는 의미다.
정치 불안의 충격은 이미 기업과 소비 심리에서도 확인됐다. 한국경제인협회에 따르면 매출액 기준 600대 기업을 대상으로 기업경기실사지수(BSI)를 조사한 결과, 10월 전망치는 96.3을 기록했다. 비상계엄 사태가 발생한 지난해 12월(97.3) 보다 낮은 수준이다. BSI는 3년 7개월 연속 기준치 100을 밑돌고 있는 중이며, 특히 제조업과 비제조업이 최근 3개월 연속 동반 부진을 나타냈다.
새 정부 출범 후 한때 안정세를 보였던 소비자심리지수(CSIㆍ한국은행 10월 소비자 동향조사)는 10월 기준 109.8로 여전히 기준선(100)을 웃돌고 있다. 그러나 정치적 불확실성이 다시 커지면서 제조업 BSI는 3분기 80대에서 4분기 들어 74로 하락 전환했다. 미국발 고율 관세, 글로벌 공급과잉, 내수 부진이 복합적으로 얽히며 기업이 투자 계획을 축소하는 흐름이 뚜렷하다.
이재명 정부는 출범 이후 ‘예측 가능한 경제운영’을 강조하며 정책 신뢰 회복에 주력해왔다. 재정확대와 민생안정 중심의 기조가 명확하다 보니 시장에서는 “정책 일관성은 분명하다”는 평가도 있었다. 그러나 최근 발생한 정치 이슈가 예산안과 법안을 둘러싼 강경 대립 기조로 이어지면서 정책 추진력이 약화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한 재계 관계자는 “내년 경기전망도 불투명한데 국회의 대립까지 겹치며 투자심리가 다시 얼어붙고 있다”고 말했다.
다만 연말 정국을 고비로 정치 리스크가 안정세에 접어들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금융투자업계 한 애널리스트는 “한국 경제의 기초체력은 여전히 튼튼하다는 게 대체적 평가”라며 “정치 리스크 변수만 해소되면 기업 이익과 소비 심리도 제 궤도에 올라설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어 "예산·법안 교착이 길어질수록 환율·금리·스프레드를 통해 기업과 가계가 부담을 나눠 떠안는다"며 "연말 국회는 ‘정쟁 비용’을 낮추는 신호를 시장에 보내야 한다. 시한 있는 합의와 정보 공개가 가장 값싼 안정화 정책"이라고 덧붙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