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기자의 눈] 100세 시대, 형벌은 충분히 무거운가

입력 2025-11-13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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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구정책전문기자ㆍ정책학 박사

아동학대 판결 보도를 접할 때마다 한숨이 나온다. 상습·지속적 학대로 아동이 숨져도(학대치사) 형량은 대체로 징역 10~15년, 짧게는 5년 미만이다. 실형 선고율이 과거보다 높아지긴 했으나, 사망으로 이어지지 않은 아동학대는 여전히 처벌 수위가 솜방망이다.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소속 서영교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법원행정처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아동학대 범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위반으로 1심에서 실형이 선고된 비율은 지난해 21.5%였다.

아동학대뿐 아니다. 강력범죄인 살인은 10년 미만 징역, 마약과 성범죄는 집행유예가 흔하다. 사실상 살인인 음주운전 사망사고도 중형이 선고된 사례를 찾아보기 어렵다. 이들 범죄는 대체로 입법보단 사법과 행정의 문제다. 아동학대치사, 마약, 성범죄는 법률상 무기징역까지 선고할 수 있다. 음주운전 사망사고도 ‘특정범죄 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 적용 시 최고형량이 무기징역으로 는다. 관대한 건 법이 아닌 선고다. 형량은 대체로 양형기준 내에서 정해지는데, 살인의 기본 양형기준은 참작 동기 4~6년, 보통 동기 10~16년이다. 선고 형량은 죄질에 비례한다. 가장 죄질이 나쁜 범죄 중 하나인 살인이 이러니 다른 범죄의 형량이 높기 어렵다.

법률 자체가 문제인 경우도 있다. ‘전세 사기’로 대표되는 사기죄는 법정 최고형량이 징역 10년, 2건 이상 사기를 저지른 경합범은 최고형량의 절반을 가산한 15년이다. 수백 명이 피해를 보고, 그중 사기로 가족이 해체되거나 생활고를 못 이겨 자살한 피해자가 생겨도 그렇다.

사실 ‘형법’이 제정된 1953년만 해도 범죄 형량이 낮지는 않았다. 당시 평균수명은 50세 전후였다. 30대에 15년형을 선고받으면 사실상 종신형 선고에 가까웠다. 문제는 법의 경직성이다. 국가데이터처 생명표를 기준으로, 2023년 20세의 기대여명은 63.9년이다. 40세는 44.4년, 60세는 25.9년이다. 생명표가 처음 작성된 1970년과 비교해 20세는 16.3년, 40세는 13.9년, 60세는 10.0년 늘었다. 생명표가 작성되지 않은 1953년보다는 2배 가까이 늘었을 것이다. 이제는 60대에 15년형을 선고받아도 살날이 더 길다. 형량의 상대적 무게가 가벼워졌다.

사기죄를 비롯해 대부분 범죄의 형량은 1953년 제정 형법과 비슷하다. 점진적으로 양형기준이 상향되긴 했으나 법정 최고형량에 크게 못 미치고, 살인·치사를 제외하면 최고형량 자체가 낮다.

법이 따라가지 못하는 건 수명뿐 아니다. 노동력이 귀한 시대가 일자리가 귀한 시대로 바뀌었다. 과거에는 수감의 결과가 누구에게나 평등했으나, 지금은 아니다. 똑같은 실형이 공무원·근로자에게는 ‘생계수단’ 박탈이지만, 면허·자격이 생계수단인 전문직에는 잠깐의 ‘휴업’이다. 여기에 기술 발달로 매년 듣도 보도 못한 신종 범죄가 생긴다. 빌린 돈을 떼먹는 수준이던 과거의 사기는 지금은 개인의 삶과 가정을 파괴하고, 기업을 무너뜨리고, 때로는 누군가의 목숨을 빼앗는 살인이 됐다. 그런데도 최고형량은 제자리이며, 양형기준은 사기 건수·금액을 기준으로 제시돼 있다.

시대가 변하면 법도 변해야 한다. 시대가 두 걸음 나아갈 때 법이 한 걸음 나아가면 처음엔 한 걸음 차이지만, 걸음을 나아갈수록 그 차이는 점점 벌어진다. 더는 감당할 수 없을 때 한 번에 벌어진 차이를 좁히려면 무리가 생기고, 예상치 못한 부작용이 생긴다. 이제는 ‘합당한 처벌’이 무엇인지 진지한 논의가 필요하다. 처벌이 능사는 아니지만, 시대가 달라졌다고 처벌의 무게가 가볍게 느껴져선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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