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C, 역내 통신망서 단계적 퇴출 압박
법적 구속력 확보 시 위반 국가에 제재 가능
회원국 간 이견 변수…통신사업자들도 규제 꺼려

중국이 미국과의 무역전쟁에서 ‘1년 휴전’에 합의하자마자 이번에는 유럽연합(EU)과 새로운 충돌 국면에 들어섰다.
EU 집행위원회(EC)가 세계 최대 통신장비업체 화웨이와 4위 중싱통신(ZTE) 등 중국 업체들을 역내 통신망에서 단계적으로 배제하도록 강제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블룸버그통신은 10일(현지시간) 소식통을 인용해 헤나 비르쿠넨 EU 기술주권·안보·민주주의 담당 수석 부집행위원장이 통신망에서 고위험 공급업체 제품 사용을 중단하도록 한 2020년도 권고안을 법적 구속력이 있는 규정으로 격상하는 방안을 준비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현재 EU의 통신 인프라 구축 방침은 각 회원국 정부의 재량에 맡겨져 있다. 하지만 해당 권고안이 법적 구속력을 갖게 되면 회원국들은 보안 지침을 의무적으로 따라야 한다. 이를 이행하지 않으면 EU는 위반 절차를 개시하고 재정적 제재를 가할 수 있다.
EU가 이처럼 안보 규제의 칼날을 벼리는 배경에는 중국과의 무역·정치적 유대 약화가 자리하고 있다. 중국은 EU의 두 번째 교역 상대국이지만 유럽 내부에서는 중국 정부와 밀접한 관계가 있는 기업에 중요 인프라 관리를 맡기는 것은 안보상 이익을 해칠 수 있다는 우려가 확산하고 있다.
특히 독일과 핀란드가 중국 업체들에 대한 규제 강화 방안 검토를 주도하고 있다. 영국, 스웨덴은 수년 전부터 중국 업체 제품 사용을 금지해왔지만 스페인과 그리스 등은 여전히 자국 통신망에서 중국산 사용을 허용하고 있다. EU 내 대중국 강경파들은 “회원국 간 불균형적인 접근 방식이 중대한 안보 위험을 초래한다”고 주장했다.
비르쿠넨 부집행위원장은 5세대(5G) 이동통신망과 초고속 인터넷을 위한 첨단 광대역망에서 중국산 장비의 사용을 제한하는 방안에 대해서 검토하고 있다.
또 EC는 역외 국가에 대해서도 화웨이 제품이 들어간 프로젝트에는 인프라 지원금 지급을 보류하는 등 중국 벤더에 대한 의존을 억제하는 조치를 살펴보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토마스 레니에 EC 대변인은 “5G 네트워크의 보안은 우리 경제에 매우 중요하다”며 “고위험 공급업체를 무선 및 핵심 네트워크 인프라에서 제외하도록 촉구하는 ‘5G 툴박스’를 아직 이행하지 않은 회원국들은 관련 조치를 채택해 위험을 효과적이고도 신속하게 해결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EU 전체가 명백한 위험에 노출된다”고 경고했다. 다만 잠재적 금지 조치에 대해서는 말을 아꼈다.
검토안이 현실화하면 중국 정부가 거세게 반발할 것이 확실하다. 중국 외교부는 화웨이와 ZTE를 고위험으로 분류한 EU의 견해에 대해 “법적·사실적 근거가 부족하다”고 비판해왔다.
회원국 간 이견도 변수다. 각국 정부가 화웨이에 대한 결정권을 EC에 넘기는 것에 대해 오랜 기간 반발해온 만큼 특정 벤더를 대상으로 한 금지 조치가 법제화되면 정치적 대립을 초래할 가능성이 있다. 통신 사업자들 역시 화웨이 제품의 가격 경쟁력과 기술적 측면의 우수성을 강조하면서 규제에 반대할 것으로 보인다고 블룸버그는 짚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