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사청에 산업 관점 소요기획 허용
민간기술 수혈로 방산 도약 꾀해야

2025년 11월 4일, 이재명 대통령은 국회 시정연설에서 “인공지능(AI) 기술은 방위산업의 판도도 바꾸고 있다”며 “첨단기술을 보유한 스타트업 발굴과 연구개발(R&D) 투자를 통해 방위산업을 AI 시대의 주력 제조업으로 육성하고 방산 4대 강국의 발판을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불과 보름 전인 10월 22일, 안규백 국방부 장관은 “방위산업은 단순한 수출 산업이 아니라 한국 경제를 책임질 미래 성장동력”이라며 인공지능과 유·무인 복합체계 등 첨단기술의 국방 적용을 핵심 과제로 제시했다. 이러한 발언은 정부의 ‘국정과제 44: 첨단전력과 방위산업 강국 실현’과도 맥을 같이 한다. 정부는 방위산업을 군의 무기생산을 넘어 민간 기술혁신과 산업생태계 확장의 연결축으로 보고 있다.
그러나 현행 제도는 여전히 과거의 틀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현재 무기체계 소요기획은 군, 특히 합동참모본부 중심으로 이뤄진다. 합참이 군사력 건설상 필요성을 판단하고 각 군이 이에 맞춰 소요를 제기하는 구조다. 이 체계에서는 방산 산업 전반이 군의 작전 요구에 종속될 수밖에 없다. 문제는 이 구조가 중소기업과 스타트업의 참여를 제도적으로 막고 있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국내 기술로 개발된 소형 FPV 드론이나 민간 스타트업의 무인기 체계는 군의 작전소요 기준에 포함되지 않으면 ‘군수품’으로 인정받지 못해 실전 적용과 시장 진입이 모두 가로막힌다. 결과적으로 방위산업 생태계가 군 중심, 대기업 중심, 조달 중심의 닫힌 구조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이제는 제도적 전환이 필요하다. 방위사업청이 산업육성용 소요결정권을 일부 보유해야 한다. 군의 작전 중심 소요결정만으로는 기술혁신과 산업육성을 병행하기 어렵다. 방사청이 산업 관점에서 별도의 소요기획을 수행하면 중소기업과 스타트업이 참여할 통로를 마련할 수 있다. 물론 합동성이나 전력통합성이 중요한 대형 무기체계는 군 중심의 소요결정 구조를 유지해야 한다. 그러나 소형 무인체계나 모듈형 플랫폼, 전술 보조장비처럼 합동성이나 중기재정에 미치는 영향이 제한적인 분야는 방사청이 직접 소요를 결정할 수 있도록 제도를 보완할 필요가 있다.
실제로 ‘국방전력발전업무훈령’은 합참이 각 군에 소요결정을 위임할 수 있는 근거를 두고 있다. 다만 위임의 구체적인 기준은 명시되어 있지 않으며, 합참은 통상 합동운용성에 미치는 영향이 크지 않고 중기재정에 부담이 되지 않는 사업을 위임 대상으로 운영하고 있다. 현실적으로 이들 사업조차 최종 승인 단계에서 합참의 동의가 필요하다. 방사청이 이 ‘위임 영역’을 산업육성형 소요로 전환할 수 있다면, 혁신기술의 시험과 검증, 양산으로 이어지는 경로를 열 수 있다.
각 군과 합참의 절차적 동의는 유지하되, 방사청이 산업적 판단을 내릴 수 있는 구조로의 보완이 필요하다. 이렇게 되면 방사청이 산업 관점에서 소요를 기획하고 중소기업과 스타트업의 신기술 기반 무기체계를 군의 작전 수요와 연계하는 선순환 체계가 구축된다. 지금처럼 군 중심의 조달 구조로는 민간의 기술 역동성이 방위산업으로 흘러들기 어렵다. 이제는 산업 중심, 개발 중심의 소요기획 체계로 바꿔야 한다.
결론적으로 산업육성용 소요기획의 제도화는 단순한 행정절차 개선이 아니라 국가 전략의 방향 전환이다. 방사청과 지자체, 공공기관이 추진해 온 많은 방산 R&D 과제가 일회성으로 끝나는 이유는 그 결과가 실제 군수 수요와 연결될 제도적 통로가 없기 때문이다. 중소기업이 만든 기술이 군사적 필요성과 결합해 실전화되려면 산업육성형 소요기획이라는 제도적 다리가 반드시 필요하다. 무기체계 영역에서 이 다리가 놓일 때, 한국 방위산업은 조달시장에 머물지 않고 자생적 산업생태계로 성장할 것이다. 이는 정부가 제시한 ‘첨단전력 획득체계 혁신’, ‘방산 생태계 활성화’의 방향과도 일치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