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의 창] ‘관람객 500만명’ 상생 기반 돼야

입력 2025-11-07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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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현택 연필뮤지엄 관장

2004년, 경복궁에 있던 국립중앙박물관이 용산으로 이전해 이듬해 새로 문을 열었다. 이전에는 다른 용도로 지어진 건물을 개보수해 사용했지만, 용산에서 비로소 박물관 목적에 맞는 독립 건물을 갖게 되었다. 가로 403m에 달하는 이 건물은 당시 박물관 종사자들과 국민들에게 큰 자부심을 안겨 주었고, 언론에는 ‘세계 6대 박물관’이라는 표현까지 등장했다. 그러나 건물의 크기가 박물관의 위상을 결정하지는 않는다.

개관 이후 ‘오픈 효과’로 관람객이 급증했고, 이후 매년 증가해 연 300만 명 시대를 열었다. 영국 ‘아트뉴스페이퍼’는 관람객 수 기준 세계 주요 박물관 순위를 발표하는데, 국립중앙박물관이 ‘세계 9위’에 올랐다는 보도도 있었다.

그 무렵 나는 중국 진시황릉박물관을 방문했다. 인파에 밀려 전시실을 스치듯 지나갔고 유물을 차분히 살펴볼 여유도 없었다. 그곳은 관람객 수를 적극적으로 홍보하지 않지만, 이미 연간 1000만 명이 넘는다. 압도적인 숫자가 성공의 기준이라면, 그 속에서 관람객은 ‘감상’이라는 경험을 어떻게 확보할 수 있을까.

국립중앙박물관은 현재 연간 관람객 500만 명을 넘어섰다. 개관 80년 만의 성취이자, 세계 5위권 수준이라는 보도가 이어진다. 그러나 잠시 멈춰 질문해볼 필요가 있다. 이 숫자가 박물관의 본질적 가치를 설명하는가. 이제 많은 이들이 전시 감상보다 셀카에 더 집중한다. 전시실이 감상의 장소라기보다 관광지의 풍경에 더 가까워지고 있다.

최근에는 K팝과 K드라마를 넘어 K국방, K푸드, K컬처 등 ‘K’라는 수식이 범람한다. 박물관 관람과 문화 체험은 이러한 경향과는 구분되어야 한다.

일각에서는 외국인 관람객 비율이 4%에도 못 미친다며 글로벌 경쟁력 부족을 지적한다. 그러나 이는 한국을 찾는 외국인 규모 자체를 고려하지 않은 평가다. 국립중앙박물관의 첫 번째 사명은 국내 관람객, 즉 96%의 내국인이다. 자국민이 역사와 문화유산을 체험하며 자부심을 갖는 것만으로도 충분한 의미가 있다.

오히려 문제는 국립중앙박물관이 국내 박물관 예산과 인프라 상당 부분을 흡수하는 ‘블랙홀’이 되고 있다는 점이다. 그 성과가 군소 박물관이나 지역 문화유산으로의 지원으로 확산되지 못하면 문화 자원의 불균형과 지역 소외는 더욱 커질 수 있다. 관람객 500만 명은 이 구조의 결과이자 과도한 중심 집중의 효과이기도 하다.

국립중앙박물관의 목표는 ‘세계적 수준의 건물 규모와 관람객 수’가 아니라, ‘모든 박물관의 본보기가 되는 것’이어야 한다. 숫자 경쟁보다 협력 기반의 상생이 중요하다. 과밀한 관람 환경 해소, 시간당 입장객 제한, 최신 유물 보존 기술과 전문 인력 양성, 지역 박물관과의 연계 전시 등, 질적 관람 환경과 지역 문화의 가치를 함께 높이는 플랫폼이 되어야 한다.

국립중앙박물관의 성장은 국가 문화정책의 성과다. 그러나 단일 기관의 성취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그 경험과 노하우가 지역으로 확산될 때 우리 문화유산 관리의 균형적인 발전이 가능하다. 건물 크기와 관람객 수만으로 ‘세계적’이라는 수식어를 붙이던 시대는 지나갔다. 군소 박물관과의 동반 성장을 이끌어 가는 리더십이 중요하다. 그럴 때 비로소 ‘세계적 박물관’이라는 이름이 자연스러워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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