맞춤형 진로지도로 자원 활용하고
한국서 정주하게끔 여건 갖춰줘야

지난주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슈퍼위크의 하이라이트 중 하나는 소위 부자보이즈 회동이었다. 엔비디아의 젠슨 황과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이재용·정의선 회장이 함께 만나 치맥을 즐긴 것인데, 엄청난 화제를 불러일으켰을 뿐 아니라 다음 날 젠슨 황이 우리 대통령을 만나는 자리에서 그래픽처리장치(GPU) 26만 장을 한국에 우선적으로 공급하겠다는 약속을 했기 때문이다. GPU 26만 장이 들어오면 미국과 중국에 이어 세계 3위의 GPU 보유국이 될 수 있다는 사실 때문에 우리에게 커다란 희망을 주기에 충분한 숫자였다. 하지만 GPU 확보가 곧 경쟁력은 아니다. 이를 가치 창출로 연결하려면 인재 확보가 반드시 병행되어야 한다.
최근 한국은행이 실시한 2700명의 젊은 과학기술인재 대상 설문에서 무려 70%가 해외 이직을 고려한다는 결과가 있었다. 금전적 이유가 가장 큰 이유로 꼽혔지만, 인재는 돈만으로 움직이지 않는다. 실제로 해외 인력들이라고 모두 금전적으로 만족하는 것은 아닐 것이며, 사람은 금전적 요인만으로 만족하는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최근 출간한 신재용 서울대 교수의 ‘정서적 연봉’이라는 책을 보면, 우리가 금전적으로 계산하지 못하는 조직의 분위기, 자율성, 심리적 안정감 같은 요인들이 연봉 못지않게 중요함을 알 수 있다. 이러한 요인이 충족되지 않을 때 사람들은 연봉을 더 중요하게 느낀다. 이는 11월 4일자 이투데이 분석 기사와도 일맥상통한다. 결국 개인의 경력 개발 요구를 잘 반영하고, 자율성을 존중하는 문화를 정립하는 것이 인재 유출을 막는 길이다.
그리고 이런 획일화의 뿌리는 교육에 있다. 대학에서 교육을 하다 보면 훌륭한 학생들이 적성에 맞지 않는 공부를 하고 있다고 느끼는 경우가 많다. 같은 문과에서도 논리적 사고에 강한 학생이 있는가 하면, 보다 인문학적이고 창의적인 시각을 가진 학생도 있다. 이렇게 서로 다른 성향의 학생들이 자신의 적성을 잘 모른 채 비슷한 진로를 추구하는 것은 개인에게도, 국가에게도 손실이다. 문제는 학생들이 자신의 강점과 직업 세계에 대한 정보를 충분히 얻지 못한다는 점이다.
최근 국제학술지에 중국 항저우대 연구진이 개발한 인공지능(AI)을 활용한 진로 적성 지도 관련 알고리즘이 발표되었다. 이 시스템은 28만여 건의 학습 데이터를 분석해서 학생 개개인의 학습 패턴을 파악하고, 그들에게 맞는 학습 경로를 추천한다. 그 정확도가 85%에서 97%에 달한다고 한다. 모든 전공 분야에서 일관되게 높은 추천 정확도를 보였다는 것이다. 즉 “너는 이런 방식으로 배우면 잘 이해하고, 이런 진로가 맞아”라고 AI가 개인 맞춤형으로 제시해준다는 얘기다. 중국에서는 학생들의 적성을 찾아주고 그들의 진로에 맞는 수업을 제시하며, 이를 통해 한정적인 교육 자원을 효율적으로 활용할 뿐 아니라 개인에게 더 맞는 진로를 제시할 수 있게 AI를 교육에 활용하는 방안을 탐구하고 있는 것이다.
공교육 정상화를 얘기할 때 늘 지식 전달에 초점을 맞춘다. 사교육과 경쟁해서 더 잘 가르치겠다는 것이다. 그런데 지식 전달은 이미 사교육이, 온라인 강의가, 이제는 AI가 더 잘할 수 있다. 공교육은 사교육에 비해 훨씬 광범위한 학생들의 데이터에 접근할 수 있다는 장점을 살려 ‘무엇을 가르칠까’보다 ‘어떻게 배우는가’에 대한 맞춤형 해결책을 제시하는 방향으로 발전할 수 있다. 학생 개개인의 학습 패턴을 분석하고, 어떤 방식으로 배울 때 가장 잘 이해하는지, 어떤 분야에 적성이 맞는지를 찾아주는 것이다. 적성에 맞게 다양한 경로에 대한 정보 제공으로 특정 전공 쏠림 현상이 완화되고 비금전적 만족도가 올라간다면 다른 많은 사회 문제도 완화될 것이다.
이번 APEC에서 다른 면에서 눈에 띈 것은 시진핑 주석이 우리 대통령에게 샤오미 폰을 선물한 것이다. 안드로이드 진영 최강자로 불리는 삼성전자의 나라에 샤오미 폰을 선물한 것은 의미가 남다르다고 보인다. 중국의 기술 성장은 결국 인재 이동과 맞닿아 있다. 우리를 떠난 인재들이 중국과 다른 나라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면, 그들을 탓하기보다 왜 그들이 한국에서 기회를 찾지 못했는지를 성찰해야 한다. 우리 교육과정에서 획일화된 사고, 낮은 정서적 연봉, 적성보다는 사회적 지위를 중시하는 문화 때문에 발생한 문제인지를 돌아보아야 할 것이다.
11월은 입시의 계절이다. AI 학과나 의대를 향한 획일적 경쟁이 아니라, AI의 도움으로 ‘자신’을 발견하는 교육으로 변화해야 한다. 빅데이터와 AI를 활용한 초개인화는 마케팅에만 필요한 것이 아니라 인재 양성에도 필요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