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무자 협상 계속됐지만...한미 정상회담으로 담판 내

'한미 관세 협상'이 극적으로 타결됐다. 투자 방식 등을 놓고 교착 상태에 빠진 석 달 만이다. 한미 정상 간 '톱다운' 방식의 담판을 통해 이견을 좁힌 게 이번 관세 협상 타결의 핵심 열쇠로 작용한 것으로 분석된다.
29일 대통령실에 따르면 김용범 대통령실 정책실장은 이날 한미정상회담 이후 브리핑을 통해 "대미금융투자 3500억 달러는 현금투자 2000억 달러와 조선업협력 1500억 달러로 구성된다"고 설명했다. 이어 "우선 2000억 달러는 일본이 미국과 합의한 5500억 달러 유사한 구조"라며 "다만 중요한 점은 우리는 연간 투자 상한을 200억 달러로 설정했다는 점"이라고 덧붙였다.
김 실장은 "다시 말해 2000억 달러 투자가 한 번에 이뤄지는 게 아니고 연간 200억 달러 한도 안에서 산업 진척 정도에 따라 달러 투자하기 때문에 우리 외환시장이 감내할 수 있는 범위에 있다"고 설명했다.
한미 양국은 지난 7월 30일 큰 틀의 무역 합의에 도달했다. 미국이 예고한 대(對)한국 상호관세를 25%에서 15%로 낮추고 한국이 총 3500억 달러 규모의 대미 투자를 시행하는 등의 내용이다. 그러나 이행 방안을 놓고는 이견을 보여왔다.
당초 한국은 투자금액 3500억 달러 중 5% 이내 수준만 직접(현금) 투자하고 나머지는 보증 형태로 채우는 방안을 검토해왔다. 그러나 미국은 직접 투자 중심의 '백지 수표' 방식을 계속해서 요구하면서 협상이 더 나아가지 못하고 교착 상태에 빠졌다. 양국은 계속해서 협의를 진행하면서 접점 찾기를 시도해왔다. 미국은 단기간에 대량의 외화를 제공하면 심각한 경제 위기가 닥칠 수 있다는 한국 입장을 부분적으로 수용했다.
그러나 미국은 여전히 한국이 연간 250억 달러씩 8년간 총 2000억 달러에 달하는 대미 현금 투자를 요구하면서 양측의 간극이 큰 상태로 알려졌다. 앞서 우리 측은 미국에 10년 동안 연간 70억 달러씩, 총 700억 달러 규모까지 현금 투자가 가능하다는 견해를 제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은 절반 이상을 현금으로, 한국은 20% 정도를 제시한 상황이라 간극이 컸다.
석 달째 평행선을 달리던 관세 협상이 극적으로 타결된 데는 양국 정상이 '톱다운' 방식의 담판을 통해 이견을 좁힌 게 긍정적으로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통상 관세 등 국가 간 협상은 실무선에서 조율한 뒤 정상회담에서 마무리하는 절차로 진행된다. 그러나 이번에는 두 정상이 직접 큰 틀의 합의를 끌어낸 뒤 실무진이 세부안을 맞추는 톱다운 방식으로 진행됐다. 정상에서 실무로 가는 흐름이 협상 교착을 풀고 극적 타결을 이끈 핵심 동력으로 작용한 셈이다.
지금까지 한국에서는 김용범 정책실장과 구윤철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김정관 산업통상부 장관, 미국에서는 스콧 베선트 재무장관과 하워드 러트닉 상무장관, 제이미슨 그리어 USTR 대표 등 실무자 중심으로 협상이 진행됐다. 그러나 이재명 대통령과 트럼프 대통령이 직접 만나면서 이견을 좁히게 됐다. 특히 트럼프 대통령은 톱다운 형태의 양자 간 빅딜을 선호하는 성향인 점을 고려하면 이번 한미 정상회담이 지지부진했던 관세 협상에 중요한 역할을 한 것으로 보인다.
관세 협상이 극적 타결되면서 한국과 미국 모두 실리를 취하게 됐다. 한국은 기존보다 덜 부담되는 조건으로 협상을 마무리 지었고, 애초 계획보다 현금을 조금 더 내는 대신 위험 분산을 얻어냈다는 평가가 나온다. 또한 관세 협상 타결로 한국 기업들이 미국 시장에 대한 불확실성도 일부 해소하게 됐다. 미국 역시 원하던대로 대미 투자 패키지를 얻어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