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병원 현장에서의 인공지능(AI) 도입은 더는 미래의 이야기가 아니다. 대학병원부터 개원의까지 의료AI 활용 사례가 늘어나며 의료 서비스 혁신의 중심축이 기술로 이동하고 있다.
카카오벤처스는 22일 서울 강남구 코엑스에서 ‘KV 인사이트풀데이 2025’를 개최하고 ‘병원 현장에서의 의료AI 도입과 확산’을 주제로 의료계와 스타트업 관계자들이 참여한 패널 토론을 진행했다.
이날 좌장으로 나선 정주연 카카오벤처스 선임심사역은 “의료 AI는 기술의 문제가 아니라 신뢰의 문제다. 의사·엔지니어·환자 모두를 만족시켜야 실제 도입이 가능하다”며 “의사를 고객으로 보느냐, 파트너로 보느냐에 따라 전략이 완전히 달라진다. 결국 의료AI는 데이터를 어떻게 확보하고, 신뢰를 어떻게 설계하느냐가 관건”이라고 말했다.
패널들은 의료 AI 확산의 최대 걸림돌로 현장의 간극을 꼽았다. 차원철 삼성서울병원 응급의학과 교수는 “새로운 솔루션은 흥미롭지만 이를 병원 정책에 반영하고 예산이나 인력을 투입하려면 다른 차원의 결심이 필요하다”며 “환자 정보 보호나 인력 코스트 등 여러 요소가 균형 있게 고려되지 않으면 도입이 어렵다”고 말했다. 이어 “병원 내부에서도 교수와 의료진 간 업무가 세분화돼 상호 이해가 쉽지 않은데 외부 스타트업이 이를 설득하는 일은 더 큰 도전”이라고 덧붙였다.
이승원 한양내과의원장은 국내 의료AI 산업이 처한 구조적 한계를 지적했다. 그는 “우리나라는 사회주의적 의료제도 구조 때문에 스타트업이 매출을 내기 어려운 환경이다. AI 의료기기 기업들이 시장의 필수성을 입증할 ‘킬링 아이템’을 만들지 못하고 있다”며 “미국처럼 AI가 정착한 산업 구조를 국내에서 재현할 만한 기업이 아직 부족하다”고 평가했다.
스타트업 대표로 참가한 허성진 에이슬립 B2H 리드는 의료기기 허가 이후에도 병원 진입 장벽이 여전히 높다고 분석했다. 그는 “병원과 의원의 접근 방식이 다르다. 병원에서는 전자의무기록(EMR) 연동성, 개인정보보호, 수익 구조 등 여러 허들을 해결하지 않으면 도입이 어렵다”며 “대학병원은 폐쇄망 환경이라 클라우드 기반 분석 솔루션을 적용하기가 까다롭다. 이런 기술적 제약을 사전에 해결한 기업이 시장 진입 속도를 높일 수 있다”고 말했다.
또 “1차 의료기관의 경우 시간과 비용 효율성이 중요하기 때문에 환자 설명이 길어지면 사용률이 떨어진다”며 “수익성과 편의성을 동시에 설득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직접 의료AI 솔루션을 사용한 경험에 대해서도 다양한 의견이 나왔다. 이 원장은 “AI 판독을 활용한 심전도와 흉부 엑스레이를 사용했는데 영상의학과 의사보다 가정의학과 등 일반 개원의가 더 도움을 받는다”며 “AI는 환자에게 추가 검사를 권유할 때 환자의 순응도가 높아지는 효과가 있다”며 “의료 이용률을 높이는 측면도 있다”고 평가했다.
차 교수는 “전공의 교육 현장에서는 AI가 정답을 알려주는 존재가 되어 학습 기회를 줄이는 부작용도 고려해야 한다”며 “다만 초심자나 간호사 등 숙련도가 낮은 의료진에게는 실질적인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패널들은 의료AI가 병원 현장에서 일상적인 도구로 자리 잡기 위해서는 기술과 제도, 비즈니스 구조가 함께 변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이 원장은 “EMR 시스템에 AI 기능을 기본 탑재해 여러 스타트업이 쉽게 연동할 수 있어야 한다”며 “의사들이 별도 계약 없이 EMR을 통해 자연스럽게 AI를 접할 수 있는 환경이 중요하다”고 설명했다. 차 교수는 “AI 혁신이 가져온 비용 구조의 변화도 함께 고민해야 한다”며 “새로운 알고리즘을 개발하면 결국 코스트가 발생하는데, 이를 지속 가능한 모델로 전환할 방안을 모색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허 대표는 제약사와의 협력 모델을 새로운 확산 전략으로 제시했다. 그는 “최근 제약사들이 디지털 의료기기나 AI 솔루션에 큰 관심이 있어 직접 개발하기보다는 스타트업 기술을 유통하거나 판권을 확보해 확산하는 방식으로 접근하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이어 “스타트업 입장에서는 제약사의 브랜드 신뢰도를 활용해 병원 진입 장벽을 낮출 수 있다”며 “솔루션 기획 단계부터 제약사가 매력적으로 느낄 만한 포인트를 담으면 시간과 비용을 크게 줄일 수 있다”고 덧붙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