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케데헌 파도가 세계를 휩쓰는 이때, 정작 ‘문화의 공공성’을 지켜야 할 국립박물관문화재단은 열풍의 바람을 맞이하면서도 길을 잃고 있는 건 아닐까. 최근 재단의 행보를 보면 ‘공공기관의 존재 이유’를 다시 묻게 된다. 자본시장법 위반 혐의로 경찰 수사를 받는 방시혁 하이브 의장과 협약을 체결하고, 비판 여론이 일자 게시물을 삭제했기 때문이다.
게다가 재단의 뮷즈(뮤지엄굿즈) 상품기획팀장은 tvN의 한 유명 예능 프로그램에 출연해 “방탄소년단(BTS) RM 덕분에 반가사유상 미니어처가 품절됐다”고 말했다. 공공기관 담당자의 입에서 ‘감사하다’는 말이 나왔을 때, 시청자들은 국립중앙박물관(국중박)이 국민의 것이 아니라 팬덤의 홍보무대로 전락한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그는 이후 여러 방송과 언론에 등장하며 ‘공공기관의 얼굴’ 역할을 하며, 국중박의 뮷즈를 홍보했다.
그러나 이러한 노출은 박물관의 정체성을 강화하기보다는 오히려 ‘상품 마케팅 기관’이란 이미지를 굳히게 한다. 본래 문화유산의 공적 가치를 지키고 국민의 접근성을 넓히는 것이 임무인 기관이 특정 스타와 케데헌의 영향력에 기댄 상업적 홍보에 앞장서는 모양새는 씁쓸하다. 문화의 확산이라는 이름 아래 진행된 일들이 사실상 ‘문화의 소비화’를 부추긴 셈이다.
이는 단지 하나의 해프닝이 아니다. 한쪽에서는 범죄혐의 기업과 협력하고, 다른 한쪽에서는 아이돌 팬덤의 소비력에 기대는 이중 구조 , 그 사이에서 국중박은 본연의 존재 이유를 잃을 수 있다. 오늘도 국중박 기념품샵은 뮷즈를 사려는 외국인들의 오픈런이 이어지고 있지만, 그들이 국중박의 소중한 문화유산과 전시를 심도있게 이해하고 즐기다 가는 시간은 생각보다 짧다. 공공기관이 시장의 논리와 대중의 열광을 추종하는 순간, ‘공공성’은 자본의 언어로 번역된다. ‘문화의 대중화’는 ‘문화상품의 히트화’로 대체되고, ‘참여의 장’은 ‘소비의 무대’로 변질된다.
물론 시대 변화에 맞춘 콘텐츠 전략은 필요하다. 젊은 세대와의 접점을 넓히려는 시도 자체를 비난할 수는 없다. 그러나 문제는 방향이다. 공공기관이 추구해야 할 가치는 ‘흥행’이 아니라 ‘균형’이다. 스타와 일시적 붐에 기대는 대신 기회조차 얻지 못한 청년·여성·장애인 기업, 지역 기반의 소상공인과 함께 성장의 무대를 만들어야 한다. 국중박이 세계적인 뮷즈 흥행을 기록하는 토대를 만들었다면, 다음 스텝은 보다 많은 K-기업이 참여하는 장으로 만들어야 한다.
이재명 정부가 내세운 국정 철학은 ‘공정과 포용’이다. 공공기관의 운영에서도 이 원칙은 예외일 수 없다. 국립박물관재단이 지금처럼 특정기업의 마케팅 창구 역할에 머문다면, 그 이름의 ‘국립’은 공공의 상징이 아니라 상업의 브랜드로 전락할 것이다. 재단은 다시 고민할 때다. 우리의 목표가 ‘문화의 흥행’인가, ‘문화의 확산’인가. 전자는 소비자의 기쁨에 그칠 뿐, 후자는 국민의 자부심을 만든다. 국중박 역시 사회적 약자와 청년 세대에게 ‘문화적 권리’를 나누는 플랫폼으로 거듭나야 한다. 그럴 때 비로소 ‘국립’이라는 이름이 무게를 되찾을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