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 인프라 취약할수록 블록체인 부상
한국, 법안 계류 속 대응 지연

신흥국이 앞다퉈 블록체인 기반의 가상자산 제도화를 추진하고 있다. 아프리카와 동남아시아 국가들에서 움직임이 빨라지는 가운데, 한국은 관련 법안이 계류된 채 제도화 속도가 더디다는 지적이 나온다.
15일 가상자산 업계에 따르면 최근 신흥국을 중심으로 블록체인 기반 가상자산 인프라가 빠르게 확산하고 있다. 금융 시스템이 상대적으로 취약한 국가들이 블록체인을 제도적 신뢰의 대안으로 적극적으로 수용하는 양상이다.
베트남은 9월 정부령을 통해 가상자산 거래소 인가를 허용하는 첫 시범 제도를 마련하고, 자본금 요건·내부통제 기준 등을 구체화했다. 비록 가상자산을 법정통화나 결제수단으로 인정하지는 않았지만, 4차 산업혁명의 핵심 인프라로 블록체인을 육성하려는 의지를 드러냈다. 나이지리아는 올해 새로운 투자증권법을 제정해 비트코인 등 가상자산을 공식적으로 ‘증권’으로 분류하기도 했다.
주요 선진국 밖 지역에서도 움직임이 포착된다. 부탄 정부는 13일(현지시각) 약 80만 명에 달하는 국민의 신원정보를 이더리움 블록체인으로 이전했다고 발표했다. 국가 단위의 디지털 신원 시스템을 퍼블릭 블록체인에 올린 세계 첫 사례로, 블록체인의 불변성과 탈중앙화 특성을 활용해 신원 인증과 행정 서비스를 강화한다는 계획이다. 케냐는 5일 국회에서 ‘가상자산 서비스제공자(VASP) 법안’을 통과시키며 제도적 기반 구축에 착수했다.
이 같은 흐름은 전통 금융 시스템이 미비한 국가일수록 거래의 투명성과 효율성을 확보할 수 있는 블록체인이 새로운 신뢰 인프라로 주목받고 있음을 보여준다. 특히 비(非) 기축통화국에서는 스테이블코인을 통한 외환 안정화 시도도 이어지고 있다. 통화 가치가 불안정한 국가에서 미 달러 등에 연동된 스테이블코인이 인플레이션이나 환율 급등락을 헤지하는 수단으로 활용되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은 금융 인프라가 탄탄해 시급성이 상대적으로 낮은 편이지만, 일본과 홍콩 등 선진국이 이미 가상자산 제도화를 본격화하면서 한국의 대응이 늦어지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온다. 업계는 한국이 비 기축통화국이며 최근 환율 불안정성이 커지는 상황을 고려하면, 가상자산 인프라 구축에 속도를 낼 필요가 있다고 지적한다. 현재 국회에는 ‘디지털자산기본법’을 비롯한 가상자산 관련 법안이 계류돼 있으나 처리 시점은 불투명하다.
한편, 한국은행은 신중한 입장을 견지한다. 올해 6월, 금융안정보고서를 통해 "국내에서 자국 화폐를 외화 기반 스테이블코인으로 전환해 활용할 경우 자금이 은행 등 금융기관을 거치지 않고 해외로 유출되는데, 이 과정에서 정부의 외환 규제나 과세 회피 및 자금세탁 수단 등으로 악용될 수 있다"라며 "스테이블코인 확대 시 정부 및 금융당국은 다각적이고 철저한 점검을 해야 한다"라고 전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