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강·자동차, 관세 이어 이중고
성수기 노린 항공업계 압박받아
국내 산업계가 미국과 중국의 무역 갈등 재점화에 따른 원·달러 환율 급등세에 긴장하고 있다. 환율 상승으로 인해 환차손이 큰 업종들은 손실을 우려하고, 원자재 수입이 많은 업종들은 원가 부담이 급격히 커지고 있다. 기업들은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의 관세 정책에 더해 고환율 장기화로 실적 악화에 직격탄을 맞을 위기에 놓였다.
14일 서울 외환시장에 따르면 이번 주 들어 원·달러 환율은 1430원대를 넘나들며 5개월 만에 최고 높은 수준을 보였다. 미·중 무역 갈등과 미 연방정부 셧다운 장기화 가능성이 겹치며 달러 강세가 지속된 결과다. 외환 당국이 전날 환율 안정을 위해 구두개입에 나섰지만 불확실성은 커지는 모양새다.
국내 기업들은 미국발(發) 관세위기 속 환율까지 급등하면서 한숨이 깊어지게 됐다. 특히 미국의 50% 관세와 중국의 저가 공세, 유럽연합(EU)의 쿼터 축소까지 맞물린 철강업계는 피해가 더욱 커질 전망이다. 철강기업들은 원자재를 대부분 달러로 수입하기 때문에 환율이 오를수록 조달 비용이 급등한다. 정유·석유화학 업계도 장기간 글로벌 수요 부진 속에 고환율이 불확실성을 더욱 키울 것으로 내다봤다.
자동차 산업은 수출 비중이 높은 특성상 환율 상승이 단기적으로는 긍정적으로 작용하지만 무조건적인 호재는 아니다. 현대자동차와 기아는 미국의 25% 관세 부과 속에서 해외 공장 운영비와 부품 수입 비용, 판매보증 충당금 부담이 늘어날 우려가 크다. 자동차 업계 관계자는 “현대차·기아는 고환율로 관세 부담을 일정 부분 상쇄할 수 있다”면서도 “장기화 시에는 부품수입가·해상운임비 상승, 충당부채 증가 등으로 인한 영향을 받게 된다”고 말했다.
항공업계도 보통 성수기로 불리는 4분기를 맞았지만 비상에 걸렸다.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을 중심으로 국제선 여객이 회복세를 보임에도 환율 압박에 부정적 영향을 받게 됐다. 항공사는 항공기 리스비, 유류비, 정비비 등 비용의 상당 부분을 달러로 결제하기 때문에 환율이 오르면 이익이 빠르게 줄어든다. 대한항공의 경우 원·달러 환율이 10원 오를 때마다 약 350억 원의 외화평가손실이 발생하게 된다.
항공업계 관계자는 “4분기에도 고환율, 항공운임 경쟁 등으로 실적이 순탄치 않을 것으로 전망된다”며 “소비자 입장에서도 환율이 높아지면 여행 경비에 대한 부담을 느끼기 때문에 여객 수요도 둔화할 우려가 있다”고 밝혔다.
기업들은 고환율 장기화로 투자 위축과 경쟁력 약화로 이어질 것을 우려하고 있다. 이들은 지난해부터 환율 급등과 관세 여파가 반복되며 이미 여러 차례 투자·고용·생산 계획 조정을 겪어왔다. 일부 기업은 환헤지 확대와 원가 절감, 경비 축소 등으로 방어에 나서고 있지만, 대외 변수의 불확실성이 여전히 크다.
한아름 한국무역협회 수석연구원은 “글로벌 불확실성 확대로 원·달러 환율 변동성이 단기간 급증하면 수출 물량이 위축될 수밖에 없다”며 “정부는 모니터링, 취약 업종 지원, 협상력 제고를 우선으로 삼고 기업들은 선물환, 환변동보험 등 다양한 환 헤지 수단을 적극적으로 활용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