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본은 오랜 제약 강국답게 깊은 연구 생태계를 갖추고 있다. 이번 행사에서도 대학이 직접 부스를 꾸려 후보물질과 기술을 소개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요코하마 바이오 클러스터, 쇼난아이파크 등 대학과 지역 중심의 클러스터는 일본 바이오산업의 토대를 이룬다. 반면 한국은 정부 주도로 클러스터를 조성하고 단기간 성과를 내는 ‘속도형’ 구조에 가깝다. 외형은 빠르게 성장했지만 대학이나 기초연구 기반의 참여는 아직 제한적이다.
문화의 차이도 산업의 결에 스며 있다. 일본은 ‘장인정신’으로 대표된다. 한 가지 기술을 완벽히 다듬고 끝까지 파고드는 집요함이 있다. 반면 한국은 빠른 의사결정과 실행력이 강점이다. 아이디어가 생기면 바로 사업화로 이어지고 스타트업 창업도 활발하다. 이 때문에 일본의 꼼꼼함이 한국에서는 ‘거절의 표시’로 비치는 경우도 있다.
이 차이는 협업에서도 드러난다. 일본 기업은 신뢰를 쌓는 데 시간이 걸린다. 첫 만남은 단순한 정보 교환이지만 꾸준히 접촉하며 2~3년 뒤 주요 파트너로 발전하는 사례도 있다. 일본에서의 ‘신뢰는 곧 퀄리티’라는 말처럼 관계는 느리지만 깊다. 하지만 최근 일본도 변화를 모색하고 있다. 첨단바이오 분야는 기술 주기가 짧아지면서 한국의 속도감과 추진력을 배우려는 움직임이 보인다. 한국 기업 역시 일본의 연구 깊이를 배우며 더 정교한 개발로 나아가고 있다.
한국은 지정학적으로 중국과 일본 사이에 놓여 있다. 산업적으로도 두 강국 사이에서 방향을 모색하는 위치다. ‘고래 싸움에 새우 등 터진다’는 속담이 있지만 요즘의 한국은 오히려 ‘단단한 새우’로 성장하고 있다. 규모보다 효율로, 속도보다 품질로 균형을 잡아가고 있다.
요코하마 현장에서 느낀 건 단순한 기술 경쟁이 아니다. 일본의 깊이와 한국의 속도감이 만나면 새로운 혁신이 가능하다는 점이다. 일본의 장인정신과 신중함, 한국의 추진력과 역동성이 시너지를 이룰 수 있다면 아시아 바이오산업의 새로운 지형이 열릴지도 모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