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직연금 장벽…레버리지·인버스도 부담

국내 상장지수펀드(ETF) 시장이 사상 최대 규모로 커졌지만, 상장지수증권(ETN) 시장은 여전히 제자리걸음에 머물고 있다. 두 시장 간 격차는 250조 원 규모로 벌어지면서 증권사들의 고민이 깊어지고 있다.
9일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지난달 기준 ETF 순자산총액은 250조 원으로, 지난해 말(174조 원)보다 44%(76조 원) 늘었다. 상장 종목 수도 900여 개에서 빠르게 증가해 올해 7월 1000개를 돌파, 처음으로 ‘ETF 1000종 시대’를 열었다. 지난달에는 1029개까지 확대됐다.
하루평균 거래대금 역시 지난해 말 3조5000억 원 수준에서 8월 5조 원에 육박할 정도로 불어난 후 지난달에는 5조5000억 원을 넘어섰다. 단기간에 거래 규모까지 커지며 ‘국민 투자상품’으로 자리 잡는 모습이다.
반면 ETN 시장의 성장세는 답보 상태다. 지난달 기준 지표가치총액은 17조7000억 원으로, 지난해 말(16조7000억 원) 대비 1조 원 늘어나는 데 그쳤다. 상장 종목 수는 406개로 오히려 6개 줄었고, 하루평균 거래대금도 1440억 원 수준에 머물렀다. ETF와의 거래 규모 차이만 250조 원에 이른다.
ETF와 ETN은 모두 기초지수 수익률을 추종하는 거래소 상장 상품이지만, 구조와 위험 수준에서 큰 차이를 보인다. ETF는 자산운용사가 실제 기초자산을 펀드 형태로 운용하는 구조로, 자산이 신탁기관에 보관돼 운용사가 부도가 나도 자산이 보호된다. 반면 ETN은 증권사가 자체 신용으로 발행하는 일종의 채권형 상품으로, 발행 증권사가 부도나면 투자금 손실 가능성이 있다. ETF에는 만기가 없지만, ETN은 만기가 정해져 있다는 점도 다르다.
업계에서는 ‘퇴직연금 장벽’이 양 시장의 인기를 가른 핵심 요인으로 지목된다. ETF는 상대적으로 안정성이 높아 퇴직연금 계좌 편입이 가능하지만, ETN은 파생결합증권으로 분류돼 원금 손실률이 40%를 초과할 가능성이 있으면 퇴직연금에서 거래할 수 없다. 이 때문에 대다수 상품이 퇴직연금 계좌에 담을 수 없다.
상품 편중도 문제로 꼽힌다. 전체 ETN의 3분의 2 이상이 레버리지·인버스 상품으로, 변동성이 높아 일반 투자자에겐 진입 장벽이 크다. 이 때문에 시장조성자(LP)의 유동성 공급이 거래를 떠받치는 구조다. 괴리율 관리와 시장조성 비용도 증권사에 부담으로 작용한다.
업계는 제도 개선과 상품 다변화가 병행돼야 한다고 얘기한다. 한 자산운용사 관계자는 “ETF는 이미 공모펀드를 대체할 정도로 시장이 성숙했지만, ETN은 신용 리스크와 구조 복잡성 때문에 외면받고 있다”라며 “퇴직연금 편입 제한 완화, 시장조성 비용 지원 같은 제도적 보완과 증권사도 상품 개발 단계에서 기초자산을 다양화해 단기 투기형 중심상품에서 벗어나야 한다”라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