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부가 한 달여 사이 세 차례에 걸쳐 주요 건설사 최고경영자(CEO)를 불러 건설현장 안전 강화를 주문했다. 고용노동부와 국토교통부가 앞다퉈 안전대책 논의와 책임 강화를 주문하면서 정작 경영진들은 현장 점검보다 회의 참석에 더 많은 시간을 쏟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김영훈 고용노동부 장관은 23일 오후 서울 로얄호텔에서 국내 20대 건설사 CEO들과 간담회를 열고 “정부가 과징금과 영업정지를 언급하는 것은 기업을 옥죄려는 게 아니라 그런 조치가 필요 없는 환경을 만들기 위한 것”이라며 “산업재해를 줄이는 것이 궁극적 목표”라고 밝혔다.
그는 “추락사고 같은 중대 재해는 집단지성을 모아 근절해야 한다”며 “최소한 올해 말까지는 추락사고가 획기적으로 줄어드는 계기가 되길 기대한다”고 덧붙였다.
그나마 다행인 점은 그 동안의 강경기조에서 한풀 꺾였다는 점이다. 김 장관은 "최근 발표한 ‘노동안전 종합대책’에는 과징금, 영업정지 등이 포함돼 있어 기업들이 걱정이 많은 것으로 안다”며 “그러나 적정 공사비·기간 보장 등 업계가 요구해온 지원책도 함께 논의됐다. 과거의 숫자만으로 미래를 단정하는 것은 과도한 우려”라고 설명했다.
이어 “이 자리에 있는 대표들 중 직원이 다치거나 죽길 원하는 이는 없다. 정부 역시 기업을 문 닫게 할 생각은 전혀 없다”며 “안전은 이제 기업의 브랜드이자 경쟁력이다. 외국인에게 대한민국을 알릴 때 K-문화와 민주주의뿐만 아니라 ‘안전한 나라’가 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럼에도 업계 내에서는 볼멘 소리가 나오고 있다. 실제 이번 모임은 한 달여 사이 세 번째다. 지난달 14일 고용노동부가 도급순위 20위 이내 건설사 대표들을 불러 ‘중대 재해 근절’을 주문한 데 이어 이달 1일에는 국토교통부가 시공능력평가 상위 10대 건설사 대표와 비공개 간담회를 갖고 정부의 건설안전 정책 방향을 설명했다.
두 자리 모두 장관 주재로 진행됐고 업계 애로 청취와 현장 안전 강화가 공통 의제였다. 오늘 간담회까지 더하면 정부의 건설사 대표 소집이 한 달여 사이 세 차례 이어진 셈이다.
잇단 소집의 배경에는 끊이지 않는 산재가 있다.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소속 정준호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국토교통부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최근 5년(2020~2024년) 10대 건설사에서만 사고 사망자 113명이 발생했다. 여기에 올해에만 16명이 추가로 숨졌고 중대재해처벌법 시행(2022년) 이후에도 뚜렷한 감소세가 확인되지 않았다.
중대 재해는 이달 들어서도 이어졌다. 6일 경남 김해의 아파트 현장에서 작업자가 굴삭기 버킷에 맞아 숨졌고 9일에는 경기도 시흥의 현장에서 사망사고가 발생했다. 두 회사는 사고 직후 전 현장 특별점검과 작업 중지 등 후속 조치에 나섰다.
다만 업계 안팎에서는 소집 방식에 대한 피로감도 감지된다. 장관 주재 회의는 특성상 불참하기 어려운 데다 짧은 간격으로 반복되면 CEO들이 현장을 챙길 시간은 줄어들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다.
한 건설사 관계자는 “현장은 여전히 바쁜데 소집은 연달아 이어진다”며 “보고용 회의가 반복되면 결국 형식적 논의에 그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전문가들은 회의실 논의와 현장 실행 사이의 괴리를 줄여야 한다고 강조한다. 간담회에서는 대책과 원칙이 논의되지만 실제 사고는 현장의 작업 공정, 하청 구조, 장비 사용 같은 미시적 요인에서 발생한다는 것이다.
본지 자문위원인 최명기 대한민국산업현장교수단 교수는 “장관이 건설사 대표를 소집하는 것은 안전에 대한 정부의 경고성 메시지를 분명히 보여준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면서도 “진짜 중요한 건 현장의 목소리를 직접 듣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CEO들은 큰 방향을 공유할 수 있지만 실제로 위험을 감지하고 대응하는 주체는 현장의 소장과 근로자들”이라며 “장관들이 불시에 현장을 찾아가 관리자와 작업자들을 만나야 책상 위 보고서에 담기지 않는 생생한 문제와 개선책을 알 수 있다”고 덧붙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