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소벤처기업부가 추진했던 '소상공인 정책금융 전문기관' 신설이 사실상 무산됐다. 이재명 대통령의 대선 공약으로 국정기획위원회에 보고까지 올라갔지만, 국정 아젠다로 채택되지 못한 데다 기관 간 기능 조정의 복잡성, 공공기관 구조조정 기조 등이 부담으로 작용한 결과다. 중기부는 대신 기존 소상공인시장진흥공단의 정책금융 기능을 강화하고 업무 효율화를 추진하는 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21일 본지 취재 결과 중기부는 소상공인 정책금융 전담기관 신설을 더이상 논의하지 않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중기부 관계자는 “전문기관 설립 계획은 따로 검토하고 있지 않다”고 밝혔다. 또 다른 관계자 역시 “현재 (금융 기관 신설 같은) 큰 틀의 변화를 주는 계획은 없다”고 전했다.
앞서 중기부는 가칭 ‘소상공인 정책금융원’ 신설안을 국정기획위원회 업무보고로 올린 바 있다. 당시 중기부가 제출한 공약이행계획서엔 소상공인 정책금융원 신설과 소상공인시장진흥공단(소진공)의 완전한 직접대출 전환, 원스톱 대출 서비스 제공 등의 내용이 담긴 것으로 알려졌다. 금융권 역시 소상공인에게 필요한 대출·보증·컨설팅 서비스를 종합적으로 제공하는 기관 설립 요청안을 국정위에 보고했다. 다만 두 요청 모두 국정과제에 포함되지 않았다.
중기부가 전문기관 신설안을 논의 테이블에 올리지 않기로 한 건 이번 사안이 국정과제에 오르지 못하면서 추진 동력을 상실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여기다 소진공으로부터의 금융 기능 분리와 타 기관과의 기능 통합 등에 대한 논의가 쉽지 않았던 것으로 전해진다. 현재 중기부 산하기관 중 소상공인을 대상으로 정책자금이나 보증 업무를 수행하는 대표적인 기관은 소진공과 지역신용보증재단(지신보) 등이다. 중기부는 소상공인 금융 전문 기관을 설립할 경우 소진공의 금융업무만 떼어내는 건 전문성이 떨어지는 만큼 지신보의 기능을 통합해야 기관 신설의 취지를 살릴 수 있다고 봤다. 문제는 지신보가 정부와 금융권의 재원 출연으로 운영되지만 설립 주체가 지자체라는 점이다. 중기부 관계자는 “지신보의 거버넌스 체계는 광역·지자체장에 있는데 이를 중앙정부로 끌어오는 건 쉽지 않은 문제다. 어떤 형식, 어떤 거버넌스 체계를 갖고 가는 게 맞는지에 대한 논의가 더 필요하다”라며 “지신보 기능을 통합하지 않으면 사실상 효율성이 떨어진다고 봐야 한다”고 설명했다.
또 금융위 산하 서민금융진흥원이 소상공인 지원 정책을 가진 만큼 이를 아우르는 전문기관이 나오지 않을 경우 기능 중복으로 옥상옥이 될 수 있다는 점, 기관 신설이냐 기능 전문화냐를 두고 명확한 정리가 이뤄지지 않은 점도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현 정부가 공공기관 통폐합과 구조개편을 본격화하는 상황에서 새 기관을 신설하는 데 대한 부담 역시 작용했다는 해석도 나온다.
결국 중기부는 전문기관 신설이 아닌 기존 소상공인 정책금융과 지원 체계를 강화하는 쪽으로 가닥을 잡고 검토에 들어갔다. 고물가와 경기 불황 등으로 소상공인의 경영난이 지속하는 상황에서 장기적인 논의가 필요한 전문기관 설립보다 촘촘하고 효율적인 지원체계가 시급하다는 판단이 깔려 있었던 것으로 분석된다. 코로나19 이후 업무 과중에 시달려온 소진공의 부담을 완화해야 한다는 목소리 역시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이에 이번 검토는 △소상공인 경영 및 금융 현황 분석을 통한 금융지원 필요성 △소상공인 융자 수요 규모 추정과 타당성 △정책자금 공급 처리 기간 및 구조적 문제 △서류 제출 간소화 및 자동화 도입 등 전방위적으로 이뤄진다. 앞서 한성숙 중기부 장관은 취임 30일 기자회견에서 지원사업 신청 서류 간소화와 공공기관 발급 서류 자동제출 등 업무 효율화 구상을 전한 바 있다. 또 일본정책금융공사(JFC), 대만 신탁형 창업자금, 유럽연합(EU) 스마트 대출 사례 등에 대한 국외 정책금융 사례 역시 이번 검토안에 포함된다.
소상공인 정책금융 전문기관 신설안이 사실상 무산되면서 소상공인 업계의 아쉬움은 더 커질 전망이다.
이미 업계에선 제4인터넷전문은행(제4인뱅)을 신청했던 컨소시엄 4곳(소소뱅크·한국소호은행·포도뱅크·AMZ뱅크)이 예비인가 불허 결정을 받은 이후 실망감이 역력하다. 소상공인연합회(소공연. 소소뱅크 컨소 참여)는 그간 소상공인의 금융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특화은행 설립을 주장해 왔지만 결국 인가 문턱을 넘지 못했다. 특히 제4인뱅 추진의 백지화 가능성이 거론되는 상황에서 전문기관 신설안마저 무산돼 업계의 불만은 더 커질 것으로 예상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