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인 1닭’. 치킨을 향한 격한 애정을 표하는 한국인에게 닭다리 양보는 진정한 사랑입니다. 애정의 척도는 닭다리와 날개(윙과 봉)으로 이어지는데요. 맨 마지막에 남는 것이 목과 가슴살 정도죠. 사람마다 개인의 취향은 있겠지만, 그래도 닭가슴살에 대한 애정도는 낮은 게 사실입니다. 이는 순살에서도 마찬가지인데요. “순살 치킨은 곧 닭다리살” 이건 쉬이 거역할 수 없는 전제죠.
그런데 이 붙박이 전제가 요즘 흔들리고 있는데요. 교촌치킨의 순살 메뉴 변화가 거센 반발을 불러오고 있습니다.

교촌치킨은 9월 순살 메뉴의 조리 전 중량을 기존 700g에서 500g으로 줄였는데요. 무려 30% 가까운 축소였죠. 간장순살, 레드순살 등 기존 메뉴는 물론, 새로 출시한 마라레드순살과 허니갈릭순살 등 신메뉴 10종도 모두 500g 기준으로 출시됐습니다. 그러나 가격은 변함없었죠.
꼼수 가격 인상에 더 불을 붙인 건 재료 변화였는데요. 그간 교촌 순살은 닭다리살 100%를 강조했지만 이번에는 단가가 낮은 닭가슴살이 일부 섞였죠. 여기에 소스를 붓으로 바르는 전통 방식을 버리고 버무리는 방식으로 바꿨다는 사실까지 알려지자 비난이 쏟아졌습니다.

굽네치킨도 한때 원가 절감을 위해 닭가슴살 혼합을 검토했는데요. 하지만 7월 가맹점주 간담회에서 ‘보류’ 결론을 내리고 기존 방침을 유지했습니다. 현재 굽네치킨은 모든 순살 메뉴에 국내산 닭다리살 100%만 사용하죠.
굽네치킨 관계자에 따르면 순살 메뉴에 닭가슴살을 섞는 방안을 검토한 것은 사실이지만 소비자 기대를 저버릴 수 없었다고 밝혔는데요. 대신 가슴살은 별도 건강식 신메뉴 개발에 활용한다는 계획입니다. 특히 대표 메뉴 ‘고추바사삭 순살’의 충성 고객층을 지켜내려는 전략이 작동했다는 평가가 나왔는데요.

노랑통닭 또한 잠시 외도를 했죠. 브라질산 닭다리살 수급 불안으로 한때 국내산 닭가슴살과 50:50 혼합해 순살 메뉴를 판매했죠. 그런데 직전 가격 인상까지 겹치면서 “값은 올리고 품질은 낮췄다”는 비판을 받았습니다.
이후 수급 안정이 되자 노랑통닭은 9월 중순 “순살은 다리살 100%”라는 원칙을 다시 천명했는데요. 매장별 안심살 재고 소진 뒤 전면 다리살로 전환하겠다고 발표했죠. 공교롭게도 앞서 교촌치킨의 ‘슈링크플레이션’ 비난과 맞물리며 여론이 갈렸는데요. 비판과 신뢰로 말이죠.
2022년 고병원성 조류인플루엔자 전국 확산 당시, 지코바 치킨 역시 인기 메뉴인 순살양념치킨에 닭가슴살을 섞어야 했는데요. 홈페이지 공지를 통해 “다리살 수급이 원활해질 때까지 한시적 조치”라고 설명했죠. 불만은 있었지만 AI라는 외부 요인이 명확했기에 소비자 반응은 지금보다 수용적이었습니다.

이처럼 ‘닭다리’이란 그저 ‘닭의 한 부위’로 치부하기엔 격하고 열정적인 팬덤을 과시하고 있는데요. 실제 조사 결과도 이를 뒷받침합니다. 푸라닭이 서울 및 5대 광역시 소비자 1500명을 대상으로 한 조사(2023년)에서 응답자의 71.4%가 순살 치킨에서 닭다리살을 선호한다고 답했죠. ‘순살치킨 선택 시 정육 타입이 중요하다’는 응답도 53.3%에 달했는데요. 단순한 식감 문제를 넘어 ‘닭다리=특별 대우’라는 사회적 기억이 소비자의 선택을 지배한다는 것을 보여주죠.
이는 ‘과학’이기도 한데요. 지난해 한국가금학회지에 실린 충북대학교 축산학과 연구팀 논문에 따르면 닭다리육은 닭가슴육보다 보수력이 높고 해동 시 수분 손실이 적어 상대적으로 다즙성(고기에 포함된 육즙의 정도)이 유지됐습니다. 관능평가(사람의 감각기관으로 직접 평가하는 방법)에서도 다리육이 부드러움과 풍미에서 우위를 보였는데요. 다시 말해, 한국 소비자들이 닭다리살을 선호하는 건 단순한 기호가 아니라 실제 육질 차이에 기반을 둔 선택이라는 점이 과학적으로 확인된 셈입니다.
한국인의 다리살 사랑은 해외 소비자들의 시선에선 신기한데요. 프라이드치킨의 본고장 미국에서는 닭다리 인기가 상대적으로 낮고 닭가슴살을 더 즐기기 때문이죠.

식품의약품안전처가 발표한 ‘식품영양성분 데이터베이스(2022)’에 따르면 껍질을 제거한 생 닭고기 기준으로 닭가슴살은 100g당 약 106kcal, 닭다리살은 약 190kcal로 나타났는데요. 이는 닭다리살이 가슴살보다 지방 함량이 높아 열량이 거의 두 배 가까이 높다는 의미죠. 미국 소비자는 기름기 적고 단백질 많은 화이트 미트를 건강식으로 인식해 선호하는데요. 반면 한국은 과거 고기 섭취가 적었고 열량 높고 힘을 낼 수 있는 부위를 귀하게 여겼죠. 기름지고 쫄깃한 식감을 가진 다리살은 자연스럽게 인기 부위가 된 겁니다.
역사적 맥락도 다릅니다. 미국에서는 노예제 시절 백인 농장주가 닭가슴살만 먹고 다리·날개 등은 흑인 노예에게 줬죠. 이들이 목화씨 기름에 튀겨 먹은 음식이 지금의 프라이드치킨의 기원이자 ‘소울푸드’가 됐는데요. 하지만 이 과정에서 닭다리는 버려진 부위라는 낙인이 찍혔고 지금도 일부 백인 사회에서는 치킨을 흑인의 음식으로 여겨 기피하는 인식이 남아 있죠.
이처럼 결코 놓칠 수 없는 닭다리살을 두고 벌어진 치킨 프랜차이즈들의 선택 배경에는 원가 부담이 있는데요. 한국농촌경제연구원에 따르면 5월 육계 산지가격은 kg당 2403원으로 전년 대비 56.8% 급등했습니다. 브라질산 닭고기 의존도도 문제인데요. 지난해 국내 닭고기 수입량 18만3600톤 중 86.1%가 브라질산이었죠. 브라질에서 AI가 발생해 석 달간 수입이 중단되면서 일부 업체는 가격을 올리거나 부위를 혼합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본사와 점주 모두 압박이 컸는데요. 배달앱 수수료, 인건비, 물류비까지 겹치면서 본사들은 중량 축소나 부위 변경 같은 ‘차선책’을 꺼내 든 겁니다. 하지만 소비자들에게 ‘꼼수 인상’으로 비치는 건 피할 수 없었죠.

결국, 한국인들의 뿌리 깊은 닭다리살 사랑을 건드린 결과였는데요. 교촌치킨은 이 기대를 무너뜨리며 거센 반발을 샀고 굽네치킨과 노랑통닭은 원칙을 지키거나 회복하며 반전을 노렸죠. 소비자가 원하는 건 완벽한 원가 방어가 아니라 정직한 고지와 신뢰 유지였을지도 모릅니다. 치킨 한 순살 조각에 담긴 이 민감한 감정은, 한국 치킨 산업의 정체성과 구조적 현실을 그대로 드러낸 셈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