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유명 연예인의 고백. 관중들은 과거에는 일명 나쁜 학생이었을지라도 현재는 올바르게 잘 컸다며 이를 응원하는 박수를 보냈는데요. 하지만 이상했습니다. 나쁜 길로 가지 않고 그저 착실하고 평범하게 살아온 이들의 삶이 부정당하는 느낌이었죠. 그 불량학생으로 인해 학창시절이 힘든 기억으로 남은 이들은 그저 분노를 삭여야 했는데요. ‘과거 나쁜 짓을 했다’는 것이 어찌 박수받을 일인지 의문은 끝없이 이어졌습니다.
하지만 이 또한 과거가 됐죠. 더는 자신의 ‘과거’가 현재를 만든 자랑거리가 될 수 없었습니다. 정치계·연예계·체육계 모두 ‘학교 폭력’에 격한 잣대를 들이댄 건데요. 당연한 데 당연하지 않았던 일이 이제 겨우 시작된 겁니다.

“과거는 사라지지 않는다” 학폭 가해 학생에게 이 말은 이제 인생의 무게가 됐는데요. 과거에는 유명인의 자녀나 연예인, 운동선수의 학폭 이력이 사회적 파장을 불러일으켰지만, 이제는 평범한 학생들도 대학 진학 단계에서 피할 수 없는 장벽을 마주하게 됐죠.
학폭 대입 제재는 2023년 ‘정순신 사태’가 결정적이었는데요. 국가수사본부장에 내정됐던 정 전 검사장의 아들이 고교 시절 동급생을 괴롭혀 전학을 갔지만, 서울대학교 철학과에 입학한 사실이 드러나자 사회는 들끓었죠. 학폭 가해자가 서울대에 진학했다는 사실은 국민적 분노를 촉발했고 정부는 급히 ‘학교폭력 근절 종합대책’을 내놓았는데요. 그리고 이 대책은 더 발전돼 한국 대학 입시 제도를 바꿔 놨습니다.
2026학년도부터 학폭 기록은 대입에 본격적으로 반영되는데요. 그동안 학폭 조치사항은 주로 학생부 종합전형에서 정성적으로 평가되거나 감점 요소로 반영됐습니다. 수능 위주 정시나 논술, 실기 전형에서는 사실상 영향이 미미했죠.
그러나 이제는 다릅니다. 한국대학교육협의회는 전국 195개 4년제 대학이 참여한 ‘2026학년도 대학입학전형 시행계획’을 통해 학폭 기록 반영을 의무화했는데요. 대교협 집계에 따르면 학폭 조치사항을 전형에 반영하는 대학은 총 290개교(중복 집계). 이 중 정성평가 71개교, 지원자격 제한·부적격 처리 57개교, 혼합평가 236개교에 달합니다.

서울 주요 대학들은 더욱 강력한데요. 연세대 추천형 전형, 고려대 체육교육과 특기자, 이화여대 고교추천, 한국외대 학교장추천은 1호 조치인 서면 사과만 받아도 지원할 수 없습니다. 성균관대와 서강대는 2~9호 처분 시 전형 총점을 0점 처리하고요. 경희대는 최대 100점 감점, 한양대는 1~7호 처분에서 최고 300점 감점, 8~9호는 부적격으로 처리되죠. 중앙대와 이화여대도 8~9호 처분을 부적격 처분하는데요. 그야말로 기록만 있어도 대학의 반 이상이 날아가는 거죠.
2026학년도 조처가 예고편이었다면 2028학년도는 본편인데요. 한국대학교육협의회가 발표한 ‘2028학년도 대학입학전형 기본사항’은 모든 전형에 학폭 조치사항 반영을 의무화했죠. 학생부 교과·종합은 물론이고, 수능, 논술, 실기·실적까지 빠짐없이 적용됩니다. 과거에는 학폭 기록이 있어도 수능 점수만 높으면 정시로 대학에 갈 수 있었고 논술 전형으로도 우회할 수 있었다는데요. 하지만 2028학년도부터는 그 길조차 닫힙니다.
이는 대학이 학업 능력뿐 아니라 인성과 규율 의식을 평가하겠다는 의지를 분명히 한 것으로 풀이되는데요. 이제 학폭 기록은 특정 전형의 불이익이 아니라 사실상 대학 진학 전체를 가로막는 벽이 되죠.
그렇다면 이 기록은 어디까지 기록이 될까요? 모든 사안이 기록으로 남는 것은 아닌데요. 2019년 도입된 ‘학교장 자체 해결 제도’는 경미한 학폭 사건을 피해자 동의하에 종결할 수 있도록 했다죠. 2주 이상 치료가 필요하지 않고, 재산 피해가 없거나 즉시 복구됐으며, 지속적이지 않고, 보복이 아닌 경우에는 학폭위로 가지 않는데요. 이 경우 생활기록부에 기록되지 않습니다.

그러나 심의위원회로 넘어가면 이야기가 달라지는데요. 이번 대입 학폭 조치사항도 여기서부터 시작이죠. 1~3호(서면사과·접촉금지·교내봉사)와 7호(학급교체)는 졸업과 동시에 삭제되고요. 4~5호(사회봉사·특별교육)는 졸업 후 2년간, 6호(출석정지), 8호(전학)는 졸업 후 4년간 보존됩니다. 9호(퇴학)는 사실상 영구적인 불이익이죠.
그러나 학폭의 실태는 대입 제도만으로 막기엔 훨씬 복잡합니다. 3일 서울경찰청 자료를 보면 신체적 폭력은 줄고 있는데요. 2015년 1586건에서 2024년 1284건으로 19% 감소했죠. 그러나 모욕·명예훼손 같은 정서적 폭력은 같은 기간 65건에서 348건으로 435% 늘었는데요. 딥페이크 성범죄는 192건에서 709건으로 269% 증가했죠.
교육부가 실시한 2024년 1차 학교폭력 실태조사에 따르면 초등학생 학폭 피해 응답률은 처음으로 4%(4.2%)대를 넘어섰는데요. 중학생 1.6%, 고등학생 0.5%도 모두 상승세죠. 성폭력 피해 응답률은 전체 피해의 5.9%로 역대 최고치였습니다. 이처럼 학폭은 더 은밀해지고 더 어려지고 있는데요. ‘대학 진학 문턱’이라는 경고가 닿기 전, 이미 초등학교 교실에서 심각한 피해가 벌어지고 있는 셈입니다.
학폭위로 넘어가는 사건 또한 해마다 폭증하고 있는데요. 2020학년도 2만5903건이던 접수 건수는 2024학년도 5만8502건으로 두 배 이상 늘었죠. 학폭위 회부 건수도 8357건에서 2만7835건으로 3배 이상 증가했습니다. 분쟁은 소송으로 이어지는데요. 가해자 소송은 2021학년도 202건에서 2024학년도 444건으로 늘었고 피해자 소송도 같은 기간 53건에서 96건으로 증가했습니다. 여기에 가해자가 피해자를 역으로 신고하는 ‘맞폭’ 현상까지 더해지면서 사건은 장기화하는데요. 학폭위는 반드시 처분을 내려야 하는 구조라 학생들은 화해보다는 처벌 회피에 몰두하게 되죠. 학업과 관계 회복은 뒷전으로 밀려납니다.

2026학년도 대입부터 시작된 학폭 기록 반영, 2028학년도 모든 전형 적용은 분명한 경고인데요. 그러나 초등학교부터 시작되는 학폭, 온라인에서 은밀히 퍼지는 폭력, 맞폭과 소송으로 꼬여가는 현실을 생각하면 대학 입시 차단만으로는 부족하죠.
한 종합편성채널 트로트 프로그램에서 큰 인기를 끌며 우승 후보로 꼽혔지만 학폭 및 상해 전과 논란이 터지며 하차한 가수. 이후 ‘성실한 삶’, ‘못난 아들 뒷바라지해오신 엄마’ 등의 문구가 담긴 사과문으로 과거 피해자들의 분노를 샀는데요. 더 놀라운 점은 이 가수의 팬들은 “어릴 땐 그럴 수도 있지”, “반성했으면 된 것 아니냐”, “언제까지 과거를 들먹거릴 거냐”, “다 그럴 이유가 있었을 거다”, “과거 일로 재능을 썩히다니 안쓰럽다” 등의 반응을 보였죠. 이들은 학폭을 ‘대수롭지 않은 일’로 치부시켰는데요. 해당 내용을 지적한 기사들에 분노하며 기자에게 폭탄 메일과 전화를 날리는 일에도 거침이 없었습니다.
자신들의 자녀와 손자·손녀가 그런 일을 당했다면 과연 같은 마음으로 돌아봤을까요? 아직도 피해자의 호소보단 가해자의 ‘자기반성’을 감싸주는 풍경이 익숙한 안타까운 현실이죠. 이 시선부터 먼저 돌아봐야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