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근 한국 드라마와 영화의 캐스팅을 보면 일본 배우들의 참여가 눈에 띄게 늘었습니다.
글로벌 시장을 겨냥해 제작사와 플랫폼이 다국적 배우를 기용하는 건 자연스러운 흐름인데요. 온라인 동영상 서비스(OTT) 시대, 국적의 경계가 옅어지고 다양한 얼굴들이 등장하는 것도 이미 보편적인 전략이 된 셈이죠.
하지만 시청자들의 반응은 단순히 '신선하다', '기대된다'는 호평에만 머물지 않습니다. 일각에서는 불편한 기색이 감지돼 눈길을 끄는데요. 언어 장벽과 시청자들의 몰입 문제, 국내 배우 일자리와의 충돌 우려도 제기돼 엇갈린 시선을 보여줍니다.
여기에 일부 배우들의 과거 행보와 논란이 회자되면서 일각에서는 분노까지 표출하는 상황. K-콘텐츠 산업의 글로벌 전략과 시청자 정서가 정면으로 맞부딪히는 지점일까요?

지난해에는 일본 인기 배우 사카구치 켄타로가 쿠팡플레이 오리지널 드라마 '사랑 후에 오는 것들'에 출연하며 한국에 공식적으로 첫 발을 디뎠습니다. 일본 유학 중이던 홍(이세영 분)이 준고(사카쿠치 켄타로)를 만나 애절한 사랑과 이별을 겪은 후 5년 만에 한국에서 다시 재회하면서 펼쳐지는 운명적인 사랑에 관한 이야기를 그린 작품인데요. 사실 사카구치 켄타로는 그 전부터 한국과 연이 있습니다. 한국과 관련 있는 작품에 출연한 바 있고요. 한국으로 무대 인사를 오기도 했죠. 지난해엔 한국에서 팬미팅을 개최한 바 있습니다. 그는 부산국제영화제(BIFF) 게스트 인터뷰로 취재진과도 만날 예정이었지만, 최근 불거진 사생활 논란으로 일정을 취소했습니다.
디즈니 플러스 코리아는 2026년 공개 예정인 오리지널 시리즈 '킬러들의 쇼핑몰 시즌2'의 최종 캐스팅 라인업을 공개, 오카다 마사키, 현리의 출연을 공식화했습니다. 오카다 마사키는 인기 드라마 '리갈 하이'로 한국에도 잘 알려진 배우인데요. 제48회 일본 아카데미상을 수상하며 연기력을 입증했죠. 현리는 재일한국인 배우로 4월 HB엔터테인먼트와 전속계약을 맺었는데요. 올해 말 공개되는 넷플릭스 ‘이 사랑 통역 되나요?'에도 출연합니다.
넷플릭스에서는 가수 성시경과 배우 마츠시게 유타카가 예능 '미친맛집: 미식가 친구의 맛집'을 통해 손잡았는데요. 한일 양국의 맛집을 찾아 두 나라의 식문화를 체험하는 예능입니다. 한국에서도 인기를 끈 '고독한 미식가' 시리즈로 잘 알려진 마츠시게 유타카는 쿠팡플레이 예능 '직장인들'에도 게스트로 출연하며 반가움을 자아냈죠.
SBS 인기 예능 프로그램 '골 때리는 그녀들(이하 '골때녀')'에는 배우이자 프리스타일 축구 선수 마시마 유가 합류해 눈길을 끌었습니다. 그는 앞서 '골때녀' 한일전 2차전에 일본 대표팀 공격수로 출전해 뛰어난 실력을 선보이며 국내 시청자들에게 강한 인상을 남긴 바 있는데요. 현재 FC원더우먼의 에이스로 맹활약하는 중입니다.
향후 베일을 벗을 작품도 많습니다.
넷플릭스는 최근 새로운 시리즈 '로드(가제)' 제작을 확정, 손석구와 김신록, 최성은, 정재영, 나가야마 에이타의 캐스팅을 공개했습니다. '로드'는 사지가 뒤틀린 시체, 의문의 메시지, 국경을 넘어 반복되는 끔찍한 살인사건을 쫓는 두 형사의 이야기를 그린 넷플릭스 시리즈로 한국과 일본의 형사가 이 미스터리한 사건의 실마리를 찾기 위해 공동수사하는 과정을 그립니다. 영화 '괴물', '혐오스런 마츠코의 일생', 드라마 '노다메 칸타빌레', '최고의 이혼' 등에 출연한 나가야마 에이타는 극 중 일본 형사 역할을 맡죠.
카사마츠 쇼는 다음 달 공개되는 넷플릭스 오리지널 '굿뉴스'에 설경구, 홍경과 함께 출연합니다. 그는 SBS 인기 드라마 '모범택시3'에도 얼굴을 비치는데요. '모범택시3'에는 일본 국민 배우 타케나카 나오토도 출연을 확정했습니다.

당초 배우부터 아이돌까지 일본 연예인들은 자국 내 활동에 주력하는 경향이 두드러집니다. 독자적인 대형 엔터테인먼트 시장을 갖고 있는 만큼 현지 팬덤과 시장 중심으로 활동을 전개하는데요. 최근 넷플릭스 등 글로벌 OTT의 등장으로 해외 작품에 얼굴을 비치는 사례도 발견되지만 해외 진출 자체가 '주류'는 아닙니다. 대대적인 드라마와 영화, OTT 오리지널 작품 제작이 이어져 글로벌을 겨냥하는 한국과 사뭇 다른 양상이죠.
그러나 최근 들어선 일본의 떠오르는 신예부터 국민 스타 반열에 오른 인기 배우까지, 현지에서 많은 사랑을 받고 있는 배우들이 일제히 한국 시장을 공략하고 있다는 겁니다. 배우에 한정된 일도 아닙니다. 일본 아이돌 그룹과 인기 싱어송라이터들도 마찬가집니다.
그러나 한국 시청자들의 반응은 호의적이기만 하진 않습니다. 되레 언짢은 반응도 체감돼 눈길을 끄는데요. 캐스팅 발표가 있을 때마다 "신선하다, 기대된다"는 반응이 나오기도 하지만, 동시에 "왜 굳이 일본 배우를 써야 하냐"는 질문도 따라붙습니다.
특히 언어 문제는 빠지지 않는 지적입니다. 발음과 억양, 표현 면에서 차이가 두드러져 대사 전달과 감정 표현에 한계가 있다는 취지인데요. 국내 신인·무명 배우들의 일자리 사정과도 맞물리면서 의문이 커지는 모양샙니다.
여기에 더해 일부 배우들의 과거 행보가 다시 회자되면서 반감을 키우는 경우도 적지 않습니다. 과거 혐한 발언이나 우익 성향 작품 참여 등 논란에 휘말린 이력이 알려질 때마다 캐스팅 소식은 곧바로 논쟁으로 비화하곤 하죠.
일례로 마치다 케이타는 지난달 HB엔터테인먼트와 전속계약 체결 소식을 전했는데요. 이후 온라인상에서는 그가 2012년과 2013년 두 차례 야스쿠니 신사를 참배했다는 논란이 다시 불거졌습니다. 그는 과거 SNS를 통해 '1941년(진주만 공습)의 정신을 배웠다'는 글도 남겼습니다. 진주만 공습 미화 의혹을 받았던 연극 '어택 넘버원'에 출연하기도 했죠.
넷플릭스 시리즈 '이 사랑 통역 되나요?'로 한국 진출을 확정한 후쿠시 소타도 논란 '파묘'를 피하지 못했습니다. 제국주의 일본군을 미화했다는 비판을 받은 후지TV 다큐멘터리 '우리에게 전쟁을 가르쳐주세요'(2015)에서 후쿠시 소타는 카미카제 생존자의 이야기를 들으며 눈물을 흘렸습니다.
가수 겸 배우 히라노 쇼는 2023년 방송 촬영 차 한국에 방문했다가 각종 망언으로 국내 네티즌들을 황당하게 했습니다. 당시 방송에서 진행자가 히라노 쇼에게 한국어를 아는지 묻자 그는 '워 아이 니', '씨에 씨에' 등 중국어 답변을 내놨고, 자신의 한국 방문을 방한이나 내한이 아닌 내일(來日)이라고 일컬었죠. "의외로 높은 건물도 있다", 한국의 수도가 어디인지 묻자 "바쿠"(성씨 박(朴)의 일본 발음)라고 답하는 등 망언 릴레이를 펼쳤죠. 그는 지난해 한국 화장품 브랜드 모델로 기용돼 한국 네티즌들을 뿔나게 했습니다.

제작사들이 일본 배우 기용에 적극적으로 나서는 배경에는 글로벌 시장 공략이라는 명확한 계산이 깔려 있습니다. 한국 드라마와 영화는 이미 아시아 전역을 넘어 전 세계적으로 소비되는 콘텐츠가 됐습니다. 이 과정에서 현지에서 인지도가 높은 배우를 캐스팅하면 작품의 화제성을 높이고, 동시 방영 시 일본 시청자까지 흡수할 수 있다는 기대가 뒤따르죠.
경제적 요인도 무시할 수 없습니다. 일본 내 주연 배우 출연료는 국내 스타 배우들이 받는 수억 원대 개런티와 비교하면 격차가 매우 큽니다. 오죽하면 야마다 타카유키가 도쿄 넷플릭스 행사에서 '배우들의 출연료를 올려달라'는 취지로 공개 요청했을까요. 한국 배우들의 출연료가 적게는 3~4배에서 최대 10배 높은 것으로 알려진 가운데, 일본 배우들의 한국 콘텐츠 진출은 한류 글로벌화 흐름 속에서 지속될 전망입니다. 제작사 입장에서는 상대적으로 낮은 비용으로 글로벌 팬덤을 지닌 배우를 섭외할 수 있고, 일본 배우 입장에서는 한국 작품을 통해 더 높은 개런티와 해외 진출 기회를 동시에 얻는 구조 덕분이죠.
OTT 시대라는 환경적 요인도 이 흐름을 뒷받침합니다. 한 작품이 제작되면 동시다발적으로 여러 나라에 서비스되는 만큼, 캐스팅 단계부터 다국적 구성을 의도하는 사례가 늘고 있습니다. 한국 콘텐츠가 세계 무대에서 경쟁력을 갖추기 위해 아시아 주요 배우들을 전략적으로 기용하는 건 자연스러운 과정이라는 분석도 나옵니다. 해외 국적 멤버가 꼭 포함된 K팝 아이돌 그룹을 연상케 하는 지점이죠.
다만 무분별한 해외 배우 기용은 자칫 콘텐츠 본질을 흐릴 수 있다는 우려는 지우지 못한 상황입니다. 단순히 화제성을 노린 캐스팅이 아니라, 작품 서사에 일본 배우의 존재가 자연스럽게 녹아드는지가 중요하다는 지적인데요. 한마디로 '설득력'이 관건이라는 겁니다.
무엇보다 일부 국내 네티즌들 사이에서는 '이득은 일본 배우가 다 보고, 한국은 무대만 빌려주는 것 아니냐'는 불만도 감지되는 상황입니다. 사실 한국 제작사는 국내 배우 대비 비용을 절감하면서 일본 시청자와 팬덤 유입이라는 효과를 기대하는 등 산업적으론 서로 득이 있는 구조지만, 시청자들이 이를 체감하긴 어렵습니다. 반대로 일본 배우 개인이 얻는 개런티 상승이나 해외 인지도 확대는 곧바로 부각되다 보니 '일방적 퍼주기 아니냐'는 인식까지 형성되는 거죠.
결국 제작사들의 선택은 비용과 전략, 그리고 시청자의 수용성이라는 세 축 사이에서 균형을 맞추는 문제를 넘어, 산업적 효과와 대중 정서 사이의 괴리를 어떻게 좁히느냐에 달려 있는데요. 유사한 논란이 반복될 경우 자칫 작품의 정체성이나 신뢰도에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점에서 향후 캐스팅 과정은 더 치밀한 검증과 설득력이 요구될 것으로 보입니다.



